새벽 또는 주말에 황급히 응급실로 가야 할 일이 내게 닥칠 거라 생각하며 지내는 이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의외로 응급실을 찾아야 할 경우는 많다. 배가 살살 아프더니 새벽에 더 심해진다거나 주말 산행 중 정강이에 창상을 입었을 때 우리가 찾게 되는 곳은 응급실이다.고령의 부모님이 갑자기 아파도 보호자의 역할로 응급실에 가야 한다. 각종 건강지표에 따르면 해마다 전국적으로 응급실을 이용하는 건수는 늘고 있다. 우리나라의 연간 응급실 이용건수는 약 1000만 건에 이르며 이 중 20%만이 반복적인 진료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시 말하면 대략 한 해 800만 명 이상의 국민이 일 년에 최소 한 번 이상은 환자로서 응급실을 찾게 된다는 것이다. 따라서 올바른 응급의료체계의 확립, 균질화되고 선진화된 응급의료서비스의 구축은 사회적 안전망 확립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아직까지 많은 국민들은 사회적 안전망으로서의 응급실의 역할에 의구심을 가지고 있다. 게다가 급하게 응급실을 방문했던 경험이 있는 사람들은 이러한 의구심과 불만이 더욱 확고한 것 같다.보건복지부는 작년 8월에 응급의료기관의 비상진료체계와 관련해 응급의료에 관한 법률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바가 있다. 오는 8월 5일부터의 시행을 앞두고 이에 대한 시행규칙을 마련하는 과정에서 각 언론사에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간담회를 실시하였다.

그 뒤에 나온 각 언론사의 기사를 보면 앞으로 응급실을 방문하는 경우 모든 진료가 전문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러하지 않을 경우 병원은 과태료를 물게 되며 해당 당직전문의는 면허정지 등의 처분을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과장된 바가 없지 않지만 주 내용이 응급실에서의 모든 진료가 해당 임상과의 전문의에 의해 이뤄져야 하고 또한 그러한 진료시스템이 제대로 가동되지 않을 경우 행정적인 처분을 받을 수 있다는 점에 있어서는 맞다.응급실에 내원한 환자나 보호자는 모두가 급하고 중요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온 것이다. 상태에 대한 정확하고 빠른 설명, 올바른 치료 계획의 수립 및 시행, 오류의 최소화 등은 모든 환자에게 지켜져야 할 권리이다. 따라서 응급의료진료시스템을 선진화 시키는 것은 당연히 필요한 일이고 또한 수익구조에 따라 제한될 수 밖에 없는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정부가 많은 역할을 해야 하는 것 또한 당연하다. 응급실에서의 진료가 경험 많은 의사에 의해 지금보다 훨씬 속도감 있고 명료하게 이뤄진다면 응급의학과 의사 이전에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더 이상 반가운 일이 없겠다.

하지만 불행히도 최근 보건복지부의 계획에는 심각한 내용적인 그리고 절차적인 문제가 있다. 가장 전문의가 많다고 할 수 있는 서울지역의 대학병원 의료기관의 경우를 보더라도 보건복지부의 안을 무리 없이 시행할 수 있는 병원은 거의 없다. 수도권을 벗어나 지방으로 내려간다면 이는 더욱 심각해진다. 상당수의 의료기관이 응급실 당직진료체계의 문제를 떠나 외래 및 입원 환자의 진료를 위한 전문의를 확보하는 것도 어려운 현실이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법안을 마련하고 시행하려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의사소통이 너무 없었다. 최초의 법안 통과 이후 시행규칙을 마련하는 동안 그 내용은 점차 강화되고 그럴수록 현실 상황에서 괴리되었는데 보건복지부는 이에 대한 반론에 전혀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 형식적인 공청회의 자리에서는 소통의 여지가 전혀 없는 벽과 같은 완고함이 느껴졌다.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과연 누구에게 도움이 될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면에 대한 의문이 든다. 8월 5일부터 시행된다고 하는 법령의 시행규칙이 아직 최종 작성, 공표도 되지 않았다.

하지만 모든 언론을 통해 대중에게 널리 알려졌고 포괄수가제 문제로 한바탕 홍역을 치른 의료계는 아무런 대책을 세울만한 여력이 없다. 대부분의 의료기관이 정부가 내세운 계획대로 모든 것이 전문의에 의해 이뤄지는 응급의료당직체계를 운영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보건복지부의 담당자들이 잘 알 것이다. 뿐만 아니라 전문의와 비전문의로 나누어 진료의 질적 향상 여부를 가늠하려 하는 지금의 시도는 발전을 위한 올바른 방향이 아니라고 생각한다.의사의 한 사람으로서 의료계의 현안이 사회적 이슈가 될 때마다 의사라는 전문가 집단이 이기적으로 비춰지는 상황을 자주 겪게 된다. 가끔은 의사들이 시대착오적인 자기주장에 빠져있다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솔직히 사실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부가 너무 심했다. 현실에 대한 고려가 지나치게 결여된 이번 정책이 우리나라 응급의료서비스의 발전을 오히려 더디게 하지는 않을지 걱정된다.

문성우 의과대 교수 의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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