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대 서관 귀퉁이의 비좁은 연구실. 수많은 책과 씨름하는 전성기(문과대 불어불문학과) 교수의 얼굴에는 첫 수업을 앞둔 초임 선생님의 열정과 설렘이 서려 있었다. 전 교수는 한국 불어불문학회장, 번역비평학회장 등을 역임하며 한평생 불문학의 새 지평을 여는 데 헌신했다.

전성기 교수는 1972년 정부장학생으로 선발돼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다. 청운의 꿈을 안고 내딛은 유학길이었지만 현실은 고달팠다. 정부보조금으론 생활비를 충당하기 어려워 낮에는 공부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했다. 힘든 순간을 견디게 해 준 것은 오로지 불문학에 대한 애정이었다. “공부를 하면 할수록 불문학의 재미에 빠져들었어요. 또 당시 열악했던 국내 불문학 연구를 발전시키겠다는 사명감이 큰 힘이 되었죠”
8년의 유학생활을 마치고 본교 교수가 된 후에는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매진했다. <어린왕자> 같은 문학 텍스트를 통해 문법을 자연스럽게 습득시키는 전 교수의 교수법은 매 학기 큰 호응을 얻었다. 국내 불어 전공자가 희박하던 시절부터 시작된 그의 강의는 한국 불문학 연구의 초석이 됐다. 그 공로를 인정받아 2009년에는 프랑스 정부로부터 교육공로 훈장 기사장을 받았다. 전 교수는 “오늘날 불문학계를 이끌어가는 제자들을 보는 것이 가장 큰 보람”이라며 웃었다.

인문학이 위기를 맞고 있다지만 전 교수의 생각은 다르다. “학문에 위기가 없다면 매너리즘에 빠지게 됩니다. ‘인문학의 위기’는 곧 발전을 위한 ‘기회’입니다” 그의 지론은 인문학이 인간 생활과 밀접하게 관련돼야 한다는 것이다. 인간생활을 고민하는 학문만이 현재의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전 교수는 인문학과 자연과학, 문화, 예술을 아우르는 학문적 통섭을 강조했다. 불문학에만 치중하면 식견을 넓히지 못한다고 생각해 수사학, 기호학, 종교학 등 수많은 분야에 뛰어들었다. 2007년에는 학문소통연구회를 창립해 다양한 학문 사이 소통의 장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요즘에는 화쟁(和諍)과 조화를 역설한 원효대사의 사상을 공부하고 있다.

정년퇴임 이후의 계획은 무궁무진하다. 전 교수는 번역인문학과 번역비평학 연구저서를 출간할 예정이다. 또한 현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원효대사의 사상을 더욱 깊이 연구할 계획이다. “아직 공부하고 싶은 내용이 무척 많아요. 정년퇴임은 제게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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