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 학문의 영역은 세분화를 거듭하고 있다. 근대 이후 급격히 팽창한 과학, 철학, 예술 제 분야의 학문적 성취는 이따금씩 세계를 전혀 별개의 영역 속으로 포섭하는 듯 보인다. 하지만 일각에서 분야를 뛰어넘은 연구의 장이 마련되고 있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부설 고등과학원(KIAS)은 올해 초학제연구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꾸준한 노력과 협력으로 초학제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넓혀갈 예정”이라는 고등과학원은 초학제연구 출범을 기념해 ‘빛’이라는 주제로 8월 27, 28일 학술대회를 열었다. 

빛, 맥스웰, 그리고 우주 엿보기

고등과학원 이필진 박사는 ‘빛, 맥스웰, 그리고 우주 엿보기’란 주제로 학술대회의 시작을 열었다. 맥스웰은 전자기파에 대한 일련의 방정식으로 뉴턴 이후, 아인슈타인 이전 시기의 가장 위대한 물리학자로 꼽힌다. 이필진 박사는 발표에 앞서 “유한하고 일정한 빛의 속도가 어떻게 발견됐고, 상대론이라는 시공간에 대한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이어졌으며 인간원리로 이어질 수 있는지 살펴보고자 한다”고 말했다.

“빛은 전자기파”
현대물리학에서 ‘빛’은 전자기파의 특정한 영역으로 규정된다.
근대 과학에서 전·자기 현상에 대한 연구는 ‘광학’과 별개로 이뤄졌다. 피조(Fizeau)는 1849년 움직이는 거울을 이용한 실험을 통해 빛의 속도가 초속 315,000km라는 값을 측정했다. 이는 초속 299,792,458km인 실제 속도보다 5%가량 큰 수치다.

비슷한 시기, 전기현상과 자기현상에 대한 연구 역시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 1830년대, 가우스, 암페어, 패러데이 등은 전하와 전류가 어떻게 전기와 자기를 만드는지를 수학적으로 밝혔다. 특히 패러데이는 자석을 흔들면 자기장이 시간에 따라 변하면서 전기를 발생시킨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1861년 맥스웰은 패러데이의 발견을 역으로 적용해 전기장을 흔들면 자기장이 생긴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를 종합해 수학적으로 정의한 것이 맥스웰 방정식이다. 맥스웰 방정식은 뜻밖의 발견으로 이어졌다. 방정식에 의해 도출된 전자기파의 속도는 당시 측정된 빛의 속도와 일치했고 맥스웰은 이를 통해 빛이 전자기파라는 사실을 유추했다.
이필진 박사는 “이 사례는 과학적 발견은 때때로 우연히 이뤄진다는 것을 잘 보여준다”고 말했다. 

“빛의 속도는 불변한다”
맥스웰이 빛의 실체와 속도를 밝힌 이후, 20세기 초 뉴턴역학과 맥스웰의 전자기이론 사이의 모순은 물리학의 큰 문제였다. 갈릴레이, 뉴턴에 의해 정립된 운동 속도 측정의 개념은 ‘관측대상 속도-나의 속도’라는 상대속도로 규정됐는데 맥스웰의 전자기이론에 의하면 전자기파의 속도는 상수로써 관측자가 빛에 대해 어떻게 움직이는가에 관계없이 동일한 광속을 관측하게 된다.

뉴턴역학과 맥스웰 방정식 사이의 양립불가능해 보이는 모순은 1905년 발표된 아인슈타인의 특수상대성이론을 통해 해결됐다. 특수상대성이론은 시간과 공간 개념을 현격히 구분하는 뉴턴 역학과 달리 시·공간의 관계를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빛에 가까운 속도로 달리는 관측자’는 특수상대성 이론에 의해 공간이 짧아지고 시간은 늘어나면서 여전히 동일한 광속을 관측한다.

빛, 세계의 비밀을 여는 열쇠
빛의 상대론적 성질을 가장 직접적, 효과적으로 사용하는 학문은 우주의 생성에 대한 연구다. 빛의 일정한 속도는 과거를 들여다보는 일방통행 타임머신의 역할을 한다. 지구에서 100만광년 거리의 은하에서 오는 빛은 100만 년 전에 만들어진 빛이기에, 이를 관측하는 것은 먼 과거를 관측하는 셈이다. 일부 과학자들은 광속의 유한함과 일정함을 바탕으로 우주의 기원을 직접 보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WMAP, Planck 등의 위성은 지금을 기준으로 137억년 전의 우주를 직접 관측한다. 이는 우주 나이가 40만 년경에 불과한 시기에 발산된 빛들이다.

유한하고 일정한 광속의 성질을 바탕으로 일부 초끈이론가, 우주론자는 ‘다중우주론’을 제기했다. 다중우주론은 우주가 충분히 넓다면 빛을 포함한 어떤 정보도 나누지 못한 다른 차원의 우주가 있음을 의미한다. 다중우주들은 동일한 물리학적 원리를 따라 진화하지만 중력상수, 입자의 종류와 질량, 힘의 종류와 세기 등은 전혀 다를 수 있다.

이런 다중우주론은 과학자 사이에서 ‘지적생명체의 존재를 어떻게 볼 것인가’라는 철학적인 의문을 낳았다. 법칙이 다른 수많은 우주가 존재한다면 이 우주의 물리법칙, 지구의 온도, 태양과 지구의 거리, 중력 등 지적생명체의 탄생을 가능하게 한 조건들을 과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왜 하필 지구에서 인류가 발생했는지’에 대한 대답은 인간 자신에게서 구할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필진 박사는 최근 10년 사이 이런 관점에서 대두된 생각을 새로운 의미의 ‘인간 원리(Anthropic principle)’라고 밝혔다. 이는 인간이 의문스러운 물리법칙을 밝히는 기존의 연구과정과 달리, 질문할 수 있는 인간이 우주에 존재한다는 사실로부터 거꾸로 물리법칙을 유추하는 철학적 사유를 말한다.

한 예로 고전역학은 지구가 왜 태양으로부터 1억 5000만km 떨어져 있는지 설명하지 못한다. 인간원리는 이에 대해 지구가 그보다 더 멀리 있거나 더 가까이 있다면 지구상에 생명체가 태어나 인간 같은 고등지식을 가진 생명으로 진화하지 못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한다.

진리의 빛: 과학과 예술의 변증법

김혜숙(이화여대 철학과) 교수는 ‘진리의 빛: 과학과 예술의 변증법’이란 주제로 발표했다. 뉴턴이 근대과학의 시작을 연 이후, 과학은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서 현상세계를 설명하는 단일한 진리 체계로 자리잡아갔다. 하지만 김 교수는 발표에 앞서서 “과연 불완전한 인간이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있는가” 하는 철학적인 의문을 제기했다.

진리를 인식할 수 있는가
빛은 철학 안에서 진리나 진리 인식의 상징으로 받아들여진다. 플라톤은 ‘동굴의 비유’를 통해 태양을 진리로, 빛을 이성으로, 동굴 안에 비친 그림자를 인간의 인식 세계로 표현하며 이데아의 세계를 설명했다.
인간은 빛(이성)을 통해서 태양(진리)을 볼 수 있다. 하지만 빛은 굴절을 겪을 수 밖에 없다. 헤겔은 ‘굴절의 원리’를 밝히는데 치중한 칸트를 비판했다.

“만약 우리가 한낱 매개물로 여기는 인식 작용의 시험을 통해서 바로 그러한 인식에서 비롯된 광선의 굴절의 법칙을 터득하게 되었다고 할 때 이러한 결과 자체로부터 굴절 현상을 제거하거나 삭제해버리는 것은 터무니없는 노릇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한낱 법칙적인 결과로서 얻어진 광선의 굴절보다도 오히려 우리로 하여금 진리를 접할 수 있도록 해준 광선 그 자체가 곧 인식의 생생한 활동을 뜻하는 까닭에 만약 이러한 의미를 가진 인식 활동 자체가 배제돼버린다면 그것은 다만 아무런 지표도 없는 단순한 방향이나 공허한 장소만을 표시하는데 그칠 것이기 때문이다”

- 헤겔 ‘정신현상학’
헤겔은 굴절의 원리를 알아낸 것과 굴절 현상을 제거해서 진리가 적나라한 모습으로 드러나게 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라고 파악했다.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사태를 왜곡 없이 봐야하지만 무엇이 왜곡이고 아닌지는 우리가 사태의 진상을 제대로 알아야 판단할 수가 있다. 김 교수는 “사태의 진상을 그 누구도 알 수가 없다면 인간은 어쩔 수 없이 진리에 관한 아포리아(aporia, 대화법을 통해 문제를 탐구하는 도중에 부딪치게 되는 해결할 수 없는 어려운 문제)에 갇혀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상황 속의 인간
인간의 문제의식은 상황, 이론, 문화적 문맥 안에서 형성된다. 농사를 짓겠다는 의도나 목적은 농사를 지어야 하는 필요성과 그 필요성이 대두되는 문제 상황과 연결된다. 과학적, 예술적 문제 상황도 미분화된 인간 삶의 영역 안에 공존한다. 김 교수는 “우리는 처한 상황 속에서 세계를 인식할 뿐 세계의 진상을 한꺼번에 전부 드러낼 수는 없다. 이 세계는 결국 인간에게 주어진 세계이고 우주이다”고 말했다.

예술은 감각을 중심으로 순간적, 직접적 경험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문제상황에 대응한다. 예술로 탄생된 상상, 허구, 새로운 감각은 인간 경험과 의식, 개념을 확장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런 인간 정신의 활동은 새로운 과학적 문제 의식, 과학적 문제 상황의 설정, 과학적 의제 설정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참과 거짓을 넘어
서양 지적 발전의 역사 안에서 예술은 허구의 세계를, 과학은 실제의 세계를 다룬다고 여겨졌다. 플라톤은 그의 저서 <국가>에서 예술가들에 대해 ‘이들은 거짓말쟁이들로서 공화국에서 추방되어야 한다’라고 했다.
하지만 예술과 과학 체계를 거짓, 참으로 판정하기 위해서는 전체 세계의 진상에 대한 앎이 있어야 하고 그 앎을 둘러싼 동일한 지식생태계 안에 판단 주체가 있어야 한다. 인간은 신(神)적 관점을 소유하고 있지 못하기 때문에 절대적 의미의 참과 거짓을 판단할 수 없다. 

예술과 과학이 서로 소통할 수 있다는 것은 예술가의 물음과 문제의식에 과학이 답을 줄 수 있다거나, 과학의 물음에 예술이 답을 줄 수 있다는 말과는 다르다. 예술가들의 물음에 대한 답은 예술안에서 예술의 형태로 주어질 수 밖에 없고, 과학의 경우 또한 마찬가지다. 누구도 세계의 진상을 알 수 없기에 과학이나 예술은 한계를 가진다.

김 교수는 예술과 과학의 영역을 ‘광활한 세계를 더듬는 지팡이’에 비유했다. 인간이 지향하는 진리의 세계는 넓은 세계라 지팡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지팡이들이 인도하는 곳은 거짓과 참의 세계가 아니라 그 광활한 곳의 다른 차원들이다. 김 교수는 “태양을 보기 위해서는 무수히 쏟아지는 빛을 통해 보아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가진 지팡이들이 많을수록 그 광활한 곳을 더듬을 수 있는 우리의 정신력은 커지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괴테, 뉴턴, 그리고 빛의 본질

김태호(서울대 ) 교수는 ‘괴테, 뉴턴, 그리고 빛의 본질’이란 주제로 발표를 했다. 뉴턴이 백색광이 빛살의 혼합임을 밝힌 이후 괴테는 <색채론>을 저술해 낭만주의적 입장에서 뉴턴의 발견을 반박했다. 그의 저술은 당시 예술가들에게 큰 환영을 받았다. 김 교수는 발표에 앞서 “아직도 일부 예술가들이 괴테를 찾고 있다. 왜 예술가들이 과학적 설명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괴테를 찾는지는 여러 가지로 생각해 볼 문제”라고 말했다.

뉴턴의 ‘결정적 실험’
뉴턴은 1704년 저서 <광학>을 통해 백색광이 여러 색깔의 빛살의 혼합이며 이 빛살들을 다시 합쳐 백색광을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뉴턴의 발견 이전까지 서양에서는 빛(백색광)과 어둠이 만나 다른 색깔들이 생겨난다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이 통용되고 있었다. 뉴턴은 프리즘을 이용한 ‘결정적 실험(대립되는 두 개의 가설 또는 일반적인 가설의 참과 거짓을 결정하기에 충분한 실험)’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이론을 뒤집었다.

<광학>이 발표된 이후 뉴턴은 빛의 본질에 대한 논쟁을 종결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색의 본질에 대한 논쟁은 이후에도 계속됐다. 많은 예술가는 과학자가 색을 이성적 분석의 대상으로만 봤던 것과 달리 색을 감성, 영성과 뗄 수 없는 것으로 보고 뉴턴의 이론이 색의 본질 일면만을 설명한다고 여겼다. 빛과 안료에 의한 색 구별이 확립되지 않았던 상황에서 뉴턴의 이론이 실제 미술 창작자들의 경험을 제대로 설명하지 못했던 것도 예술가의 불신에 힘을 보탰다.

괴테, <색채론>
괴테는 1810년 <색채론>을 저술했다. 괴테는 빛과 자연현상 전반에 대한 뉴턴의 접근 방식은 ‘어떻게’는 설명할 수 있지만 ‘왜’를 설명하지는 못한다고 비판했다. 그는 자연 탐구의 본질은 추상적 이론으로 자연을 재단하는 것이 아니라 현상의 안에 들어가 그것을 더 깊이 경험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색채론>에서 괴테는 여러 색깔의 빛살들이 존재하고 이들의 굴절률이 달라 프리즘을 거쳐 분리되는 것이라는 뉴턴의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는 ‘원현상(原現像, Urphänomen)’이라는 개념으로 빛을 설명했다. 원현상은 ‘다양한 현상들의 밑바탕이 되는 가장 간단하고 근본적인 현상’을 말한다. 괴테는 원현상과 ‘양극성’, ‘상승’, ‘총체성’의 개념을 빛에 적용해 “밝음과 어두움이 반투명 매질을 통해 대조되면, 거기에서 색채가 비롯되는 것”으로 모든 색채의 생성과 변화를 설명했다.

괴테가 생각한 자연은 뉴턴과 데카르트처럼 인간과 구분돼 객관적 대상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인식이 그 한 부분을 이루는 것이다. 김 교수는 “괴테가 생각한 자연 탐구의 목표도 단순한 사실의 파악이 아니라, 대립과 조화를 바탕으로 자연의 총체성을 인식하고 자연의 총체성을 통해 자유로 나아가는 것”이라고 말했다.

괴테의 색채론은 당시 시대상을 반영한다. 나폴레옹군이 독일을 점령한 이후, 독일에는 반계몽주의적 낭만주의가 일었다. 독일 낭만주의자들에게 뉴턴주의의 과학은 계몽주의와 마찬가지로 이성의 횡포, 전제를 상징한다. 그들은 뉴턴주의자들이 기득권을 형성해 뉴턴주의와 맞지 않는 연구 성과들을 묵살했다고 주장했다. 과학의 전문화에 대한 낭만주의적 반발은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 여러 곳곳에서 나타났던 흐름이다.

여전히 살아있는 ‘색채론’
괴테의 색채론은 과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지 못했다. 그러나 미술계에서는 괴테의 이론이 꾸준히 영향을 미쳐 왔으며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이 이를 바탕으로 활동한다. 라파엘전파(Pre-Raphaelites), 칸딘스키, 터너 등은 괴테의 영향을 받았다는 평을 듣는다. 터너(William Turner)는 <대홍수>연작을 비롯한 여러 작품에서 빛과 어둠의 중첩을 통해 색채를 표현함으로써 괴테의 이론을 그림으로 구현하고자 했는데 그의 작품 중 ‘Light and Colour(Goethe's Theory)’는 직접적으로 괴테의 영향을 드러내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신비주의 사상가 슈타이너는 괴테의 철학에 바탕을 둔 자연철학 체계를 확장시켜 독특한 철학 체계를 구축했고 이에 바탕을 둔 교육 운동을 펼쳤다. 발도르프(Waldorf) 교육으로 불리는 이 교육 프로그램은 현재 60개국 1000여개 학교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그 교육 과정에서 예술과 과학의 통합 교육을 중시하며 괴테 색채론에 바탕을 둔 색채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 이번 학술대회 참가자들이 고등과학원 앞에서 단체 사진을 찍었다.


괴테의 오류는 한갓 소동일 뿐일까. 괴테의 오류가 과학적으로 규명된 이후에도 괴테의 이론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이들의 형편에 맞게 모습을 바꾸어가며 새로운 역할을 해왔다. 김태호 교수는 “괴테의 독특한 색채론이 어떤 배경에서 나왔는지 이해하고, 그것을 통해 과학 이론이 어떤 과정을 거쳐 형성되고 성장, 변용되는지 살펴보는 것은 과학과 예술의 관계에 대해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볼 계기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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