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창호 사범대 교수 교육학과
올해는 서양 교육철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루소 탄생 300주년이다. 루소의 등장은 교육철학의 차원에서, 이전의 교육사상에 비해 혁명적이었다. 그가 주창한 자연성은 인간 본성을 새롭게 보는 계기로 작용하였고, 그는 서양 교육철학에서 자연주의의 원조로 인정받는다.  

루소의 교육소설 󰡔에밀󰡕이 일러주듯이, 넓은 의미에서 교육은 인류의 삶과 더불어 시작되었다. 그러기에 교육은 삶의 원현상(原現象)이다. 그만큼 우리 삶에 녹아들어 삶을 추동하고 역동적 생명력을 부여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교육은 인간과 사회의 유지와 혁신이라는 두 축을 기저로 변증법적 생명활동을 지속해 왔다. 그 활동의 바탕에 교육철학이 존재한다. 이때 교육철학은 시공(時空)을 가로지르며 살아온 인간 삶의 풍토와 거기에서 우러나온 사유에 기반한다. 

한국의 경우에도 당연히 전통적 교육철학이 존재했으리라. 내 유년의 기억을 더듬어 보면, 그것은 할머니 품에 안겼을 때의 ‘무르팍 교육’, 가족들과 오손도손 함께 밥 먹을 때의 ‘밥상머리 교육’, 그리고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친구들과 어울리며 희노애락을 경험하고, 집안이나 사회의 어르신께 삶의 가치를 온몸으로 받아들이는 배움과 깨달음의 순간이었다.

그러나 한국의 전통 교육철학은 19세기 말 무렵부터 도입된 서구 근대 교육의 철학적 가치에 자리를 내주기 시작했다. 거기에다 일제 강점기 35년은 일본 제국주의 교육이 횡행했고, 1945년 해방 후에는 미국의 절대적 영향력 아래, 4대 교육운동이라 불리는 진보주의, 본질주의, 항존주의, 재건주의가 교육철학의 구심으로 자리했다. 이후에는 독일이나 영국 등 유럽의 사조들이 한 자리를 차지하며, 현재 한국 교육철학의 다양성을 과시하고 있다.

이처럼 서구 사상이 진리의 기준이 되어 밀물처럼 들어오던 시대 상황에서, 동양의 교육철학은 박제된 유물처럼, 기억의 한 켠에 머물러 있었다. 그렇다고 서구의 교육철학이 온전하게 우리의 교육 풍토에 이식된 것도 아니다. 그것이 지닌 장점이 원용되는 경우도 있지만, 현대 한국 교육철학으로서 자리를 확보하지는 못한 듯하다. 아직도 서구 교육철학은 한국의 교육 풍토에서 투쟁을 벌이고 있다.  

서구 교육철학의 사상전(思想戰)이 벌어지는 사이사이, 20세기 후반 무렵부터, 기억의 저편에 있던 동양의 전통 교육철학이 조금씩 소개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에서 그것은 잊고 있었던 시기만큼이나 낯선 얼굴로 다가왔다. 그들의 명함은 유교(儒敎)와 불교(佛敎)와 도교(道敎), 그리고 무속(巫俗)과 같은 가르침이었다. 그 의미심장한 세계를 반추해보니, 서구 교육철학이 활보하는 상황에서도 그들은 삶의 심연에서 묵묵히 활동하고 있었다.

유교는 수기치인(修己治人)과 내성외왕(內聖外王), 성기성물(成己成物)의 정신으로 개인의 성숙과 사회적 배려를 고려하며 삶의 테크네(technē)와 철학을 구가한다. 불교는 줄탁동시(啐啄同時)의 인연으로 깨달음을 인도한다. 도교는 도법자연(道法自然)과 무위(無爲)의 생명정신으로 존재를 확인한다. 무속은 신과 인간의 사이 세계를 다리 놓으며 진실이 들리는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것은 보이지 않은 듯했으나 가장 많이 노출되어 있고, 들리지 않은 듯했으나 가장 크게 울리고 있다. 말하지 않은 것 같지만, 서구 교육철학과의 교감(交感)과 공명(共鳴)을 통해 우리 사회의 교육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어떤 것은 유사성 혹은 동질성으로 어떤 것은 이질성으로 비교 연구되기도 했다. 그러나 동서 교육철학의 한마당 어울림이 교육활동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효과를 내는지 분명하게 말해 보라고 한다면, 한계에 봉착한다.

한국 교육철학을 공부하고 있는 사람으로서, 대한민국이라는, 지금 여기에서, 교육철학을 거론할 때, ‘서양’과 ‘동양’의 교육철학적 우위를 논의하는 것은 의미가 적다. 왜냐하면 이미 우리의 풍토에는 서양이 자리하고 있고, 동양 전통도 숨 쉬고 있으며, 동서가 삼투되어 창출된 교육의 모습도 존재하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현재 한국의 교육철학이다.

우리 한국인은 어떤 교육을 지향하는가?
그 교육은 우리의 삶을 충분하게 반영할 수 있는가?
교육기본법의 명시처럼, 모든 국민이 인격을 도야하고 민주시민의 자질을 갖추어 국가발전과 인류공영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적합한가?
우리는 현재를 살아가는 한국인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그렇게 소망했던 몸공부와 마음공부를 나름대로 이어 받았다. 그리고 서양의 풍부한 교육적 경험도 받아들였다. 이 모두가 한국 교육철학의 자산이다. 이제 한국 교육철학의 핵심은,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가 그들의 삶을 노래할 수 있도록, 한 톨의 밀알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신창호 사범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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