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동의보감(東醫寶鑑)이 세상에 나온 지 400주년이 되는 해다. 동의보감은 조선 선조 대의 명의 허준이 편찬한 한의학서로 수 세기를 지난 현재에도 ‘한국 한의학의 대표적 고전’으로 여겨진다. 2009년엔 의학서적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돼 세계적으로 가치를 인정받기도 했다.

  동의보감은 질병과 치료법을 단순히 나열한 의학서가 아니다. 25권 25책으로 이뤄진 방대한 서책 안에는 인체관, 자연관, 생명관 등의 사상이 집약돼 있다. 동의보감은 치밀한 동양적 사상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 환경, 질병, 약 등에 대해 논하는 사상서이기도 하다.

하늘과 땅을 닮은 인간

“하늘에 해와 달이 있듯이 사람에게 눈과 귀가 있다. 하늘에 낮과 밤이 있듯이 사람에게는 잠듦과 깸이 있다. 하늘에 천둥과 번개가 있듯이 사람에게는 기쁨과 노함이 있다”

  동의보감은 인간의 형상, 감정 등을 하늘, 땅 등 자연의 모습과 연관시켜 설명한다. 이는 사람과 하늘이 서로 응한다는 천인상응(天人相應) 사상을 바탕으로 한다. 사람을 보면 하늘을 알 수 있고, 하늘을 보면 사람을 알 수 있다는 말이다. 동의보감은 인간을 소(小)우주로 보는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인간의 몸 안에 자연의 모습이 포함되어 있다고 설명한다.

  동의보감 첫 권에는 ‘신형장부도(身形臟腑圖)’가 실려 있다. ‘신형장부도’는 인체 해부도로, 몸 내부의 작용과 기능을 설명한다. 이에 따르면, 머리는 하늘을 상징하고 몸은 땅을 상징하며 척추를 통해 정기가 오르내린다. 정(精)은 기(氣), 신(神) 등과 함께 인체의 핵심적인 요소다. ‘정’은 생명을 태어나게 하고, 척추를 통해 몸을 순환하며 생명을 유지시키는 인간의 근본이다. 따라서 ‘정’을 함부로 흘리지 않고 잘 보존해야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와 함께 ‘기’는 인체를 순환하며 인체 각 부분이 제대로 기능하게 도와주는 몸의 에너지다. ‘신’은 정과 기를 묶어주며 인간의 정신작용과 감정까지 총체적으로 설명한다. ‘신’이 안정되면 기와 혈이 조화롭게 운영돼 건강해진다는 것이다. 이렇듯 동의보감은 인체를 자연과 대응시키며 정, 기, 혈 등의 유기적인 순환에 따라 건강이 유지된다고 상정했다. 경희대 한의과대학 김남일 교수는 “인간을 ‘정’, ‘기’, ‘신’으로 설명하는 것은 허준이 단순한 의술가가 아니라 인간에 대해 깊이 이해하려고 노력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자연에 순응하라
“황제는 말한다. 내가 듣건대 상고시대에 진인이 있었다. 그는 자연법칙을 잘 알아 음양을 잘 파악하였고, 정기를 호흡하여 홀로 서서 정신을 지켜 몸과 기운이 한결같았으므로, 수명이 하늘, 땅과 같아 끝이 없었다. 이는 그가 양생하는 법칙에 맞추어 살았기 때문이다”

  동의보감은 건강하게 살기 위해 일상생활 속에서 양생(養生)할 것을 강조한다. 양생은 오늘날의 ‘웰빙’과 비슷한 개념으로 ‘자연에 순응하며 함께 호흡하는 것’이다. 양생은 질병이 표면으로 드러나기 전에 예방하는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긴다. 이것이 질병이 발생한 후에 나타나는 증상과 치료법 등을 강조하는 현대 의학과의 차이점이다. 대전대 한의대 노석선 교수는 “동의보감에 나타난 양생법은 소원방의 ‘제병원후론’에서 기원한 것으로 의술이라기보다는 도교적 수련에 가깝다”고 말했다. 특히 양생법은 인간이 계절의 흐름에 순응하라고 역설한다. 봄과 여름에는 양기를 보양하고 가을과 겨울에는 음기를 보양해야 대자연의 흐름과 발을 맞추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또 양생법은 육체와 정신을 불가분의 관계로 보고 욕심과 잡념을 없애 정신을 안정되게 하는 것이 육체 건강의 첫 걸음이라고 설명한다. 동의보감에는 “마음을 나의 하늘로 삼아 섬기는 바 하늘과 부합시키면 오랜 후에 결국 정신이 통일되어서 저절로 마음이 편안해지고 성품이 화평해진다”는 구절이 있다. 나쁜 공기를 내쉬고 맑은 공기를 들이쉬는 호흡법인 ‘태식법’, 천천히 침을 아홉 번 삼키는 ‘안마도인법’ 등도 중요한 양생법이다.

청나라 온병(溫炳)학파의 방법론은 배재돼
동의보감은 400년간 수많은 한의학자·한의사에 의해 전승돼 온 역사의 산물이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의학사상, 방법론 등이 첨가됐다. 그러나 허준 사후 조선의 숭명(崇明)사상으로 동의보감 속에 뛰어난 청나라 온병학파의 방법론이 수용되지 못했다. 이는 동의보감의 한계로 지적되기도 한다. 동의보감에 있는 내용만으로는 온병(溫炳)을 효율적으로 다스릴 수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한편에서는 중국과 우리의 풍토가 현격히 달라 무조건적으로 청나라의 방법론을 수용하는 것이 능사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동의보감은 전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수많은 의서를 집대성한 동의보감에는 한 부분을 이야기할 때도 여러 관점이 혼재돼 있다. 김남일 교수는 “동의보감이 전문가 중심의 수준 높은 의학서이긴 하지만 식품, 생활의학, 탐방요법 등은 민간이 이해하고 응용할 내용도 많다”고 말했다.

<참고>한권으로 읽는 동의보감, 신동원 외 2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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