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잘하는 할머니, 커피 파는 총각, 구두 닦는 아저씨. 이들은 모두 KBS 교양프로그램 <강연100℃>의 주인공이다. 어디서 강연 한번 해본 적 없이 700명 앞에 선 주인공들은 목소리가 덜덜 떨리고, 멋쩍은 웃음이 계속해서 터져 나온다. 하지만 이들의 투박하기 만한 이야기가 우리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건 왜일까. <강연100℃> 이경희 작가와의 인터뷰를 바탕으로 강연프로그램의 제작과정을 재구성했다.

▲ 이경희 작가

가장 진솔한 이야기를 찾아
아이템 선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고려되는 건 ‘진솔함’이에요. 강연100℃에선 인생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사실여부의 확인이 가장 중요한 작업이에요. 그래선지 인터넷 게시판의 제보는 한 번도 선정된 적이 없어요. 아무래도 자기 홍보나 과장이 좀 많거든요. 

이야기의 ‘보편성’도 중요해요. 그래서 강연100℃는 전문연사 섭외를 지양하고 있어요. 물론 더 노련하고 재밌는 강연을 볼 수 있겠지만, 조금 투박하더라도 누구나 겪어봤을 만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시청자들의 공감을 불러일으키거든요.

매주 아이템회의를 통해 후보리스트가 정해지면 한 시간정도 전화인터뷰를 가져요. 이 때 처음 리스트에서 반 정도가 걸러지죠. 본인이 못하겠다고 거절하는 경우도 많고, 내용이 사실이 아니거나 과장이 심한 경우 저희가 제외하는 분들도 있어요.

의외로 수줍음을 타면서도 출연을 승낙해주시는 분이 많아요. 저희가 연락하는 분은 대부분 인생의 고비를 한 번씩 넘긴 분들인데, 그 과정에서 깨달은 바를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있는 것 같아요.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에 희망을 주고 싶어 하는 마음이요.

전국 방방곡곡 연사를 찾아 떠난다
전화인터뷰를 통해 압축된 리스트를 가지고 이젠 강연100℃ 팀이 직접 움직이게 됩니다. 출장이 정말 많아요.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과 전화로 하는 것이 또 다르거든요. 3시간 정도의 면담인터뷰를 통해 리스트가 한 번 더 걸러지게 되요.

너무 나이가 많거나, 말씀을 너무 못해 후보에서 제외되는 경우가 종종 있어요. VCR 취재면 나레이션을 넣으면 되요. 하지만 강연100℃는 출연자가 직접 강연을 해야 해 전달력과 목소리의 호감도 역시 꽤 중요하게 고려됩니다.

저희를 처음 보는데도 자기네 과거 얘기를 가감 없이 해주세요. 무슨 얘깃거리가 되냐며 많이 걱정하긴 하는데 좋은 메시지가 많아요. 저희도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 많이 힘을 얻고요. 

어떤 인생에도 메시지는 있다
강연안은 면담인터뷰를 바탕으로 작성돼요. 보통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인생이 무슨 메시지를 담고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저희가 대신 찾는 거죠. 강연안은 이렇게 나온 강연주제의 순서를 정해 놓은 수준이에요.

이렇게 작성된 강연안은 녹화 전 주 목요일 쯤 연사가 받아보게 되요. 자기 얘기기 때문에, 저희가 짠 그대로 강연하는 분들은 거의 없어요. 잘못된 거나 더하고 싶은 것들을 수정한 강연안을 들고 무대에 오르는 거죠.

애정이 가는 출연자일수록 강연안이 잘 안 써져요. 강연100℃ 출연자 중엔 아픈 인생사를 가진 분들이 많아요. 좀 더 조심히 쓰려고 하다보면 많이 오래 걸리죠. 반면에 성공한 분들은 강연안이 술술 써지더라고요.

연습, 연습 또 연습
녹화 때까지 연사분과 매일 같이 통화를 해요. 걱정돼서 저희에게 전화하는 경우도 있고, 저희가 전화 드리기도 하고요. 통화에서 강연안 중에 고치고 싶은 건 없으신지 체크하고, 녹화 때 무슨 옷 입을지, 가족들은 누가 오는지 세세한 것도 얘기해요. 자주 통화를 해서 마음을 놓지 못하게 하는 거죠.

연습을 많이 안 하면 녹화 때 티가 많이 나요. 주제를 정해서 얘기하는 게 아니라, 면담인터뷰 때 하신 말씀 그대로 주욱 얘기하죠. 그럼 강연이 많이 지루해져요. 객석의 반응도 안 좋게 되고요. 

이 와중에 가끔 녹화를 못하겠다고 하는 분들도 있어요. 녹화 전전날에 갑자기 못하겠다고 전화 온 학생이 있었어요. 다단계에 빠져 돈을 날렸다가, 이제는 극복해서 건실하게 살고있는 학생이었는데요. 과거 얘기를 남들 앞에서 하는 게 부담스러웠나 봐요. 급하게 특집으로 녹화를 진행할 수밖에 없었죠. 나중에 담당 작가와 PD는 장문의 사과편지를 받았어요.     

내 생애 첫 강연
700명 앞에 서서 자기 생애 첫 번째 강연을 하는 거에요. 당연히 많이 떨려하세요. 리허설은 안하는 게 원칙이지만, 걱정되는 출연자의 경우 좀 일찍 오셔서 저희 앞에서 먼저 연습을 하시기도 해요. 그래서 강의스킬에 관한 코칭은 안 들어가요. ‘이쪽으로 움직여라’, ‘눈은 여길 봐라’ 이런 코칭이 들어가면 연사 분 정신이 더 없어져요.

녹화 중엔 돌발상황도 많이 생겨요. 예를 들어 잘 얘기하다가 갑자기 다음 할 말이 생각이 안날 때가 있어요. 그럴 땐 잠시 멈췄다가 박수와 함께 다시 시작하죠. 한 번은 연사가 할 얘기는 다 했는데 끝을 못 내서 강연이 삼천포로 빠진 경우가 있었어요. 이럴 경우 저희가 멈춰줘야 해요. 녹화시간도 있고, 방청객들도 집에 가야 하니까요.

의외로 사회적 지위나 학식이 높은 분들도 자기의 얘기를 잘 못해요. 꾸며서 말하려는 경향이 있는 것 같아요. 부하직원들 대하듯 말씀하시는 경우도 있고. 이럴 경우 현장 반응이 별로 안 좋아요.

‘시청자가 강연100℃를 어떻게 보느냐’도 중요하지만, 연사가 강연을 마치고 기분 좋게 가는 것도 저희에겐 중요해요. 감사하게도, 강연이 끝나면 연사 분들이 많이 고맙다고 해주시니까, 저희는 뿌듯합니다.

그리고 전해지는 이야기들
강연100℃에선 모두가 주인공이에요. 전문 강연이 아니라 인생 얘기를 들려주는 강연이기 때문에, 누구나 저희 프로그램에 설 수 있는 거죠. 그래서 현재를 더 뜨겁게 살아야한다는 생각도 들어요. 열정적으로 사는 분들이라면 누구나 <강연100℃>의 주인공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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