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은 휴전 60주년을 맞았지만 전쟁과 그 여파는 여전히 상처로 남아있다. 전쟁이 발발하던 순간부터 현재까지 당대 화가들은 캔버스에 그림으로 전쟁을 기억했다. 이들의 그림은 단순한 회화를 넘어 당시 시대상이 반영돼 굴곡진 대한민국사를 나타내는 상징이기도 하다. 전쟁과 전쟁의 상처를 그려낸 작품들을 시대별로 살펴보았다.

전쟁기간: 절망 속에 피어난 예술혼

한국전쟁 시기 그려진 전쟁회화의 소재는 △성전(聖戰)화 된 전쟁 △전투장면과 폐허 △피난길과 피난민의 삶 △가족 구성원의 상실과 가정의 소중함 등으로 분류된다. 혼란스러운 시기였기에 특정한 화풍이 존재하지는 않았지만 전쟁 중 화가들이 실제 겪은 사건을 바탕으로 한 그림이 많다. 

성전화 된 전쟁을 그린 회화는 전쟁의 정당성을 옹호하고 사기를 진작시킨다는 점에서 국가의 적극적 지원을 받았다. 당시 부산시청 외벽에 걸린 들라크루아의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은 당대 화가들에게 주요 모티브를 제공했다. 이들은 작품 한가운데 그려진 프랑스 혁명정신을 상징하는 여성 ‘마리안느’처럼 민주주의 수호를 위한 ‘성스러운 전쟁’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화폭에 담았다. 

조덕환의 <이승만과 아이젠하워 그 참모들>은 한국전쟁 당시 전선을 시찰하던 이승만 대통령과 미국의 아이젠하워 대통령을 그린 작품으로 한미 정상의 전방 시찰을 그려 군대의 사기를 진작시키려는 의도를 내포한다. 김두환의 <야전병원> 또한 치료를 받으면서도 아이에게 젖을 물리는 강인한 여성과 그녀를 치유하는 미화된 한국 군인을 묘사해 한국인의 생명력과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의 성스러움을 강조했다.

전투장면과 폐허를 나타낸 작품들은 주로 화가의 혼란스러운 심리상태를 표현하며 본격적인 ‘전쟁기록화’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철이의 <학살>은 한 마을에서 일어난 학살 장면을 강렬한 색채를 통해 그려냈다. 이 작품은 화가가 직접 학살 장면을 보고 그린 그림으로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그렸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받는다. 이수억의 <폐허의 서울>은 사람이 한 명도 살지 않는 페허가 된 서울을 허무하고 비참하게 표현했다. 하지만 이런 전쟁회화들은 현실을 추상적으로 묘사해 작품에서 전쟁의 심각성이 자세히 드러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전쟁으로 인한 피난생활은 화가들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쳤다. 화가들은 피난길의 고통과 피난처에서의 슬픔을 자신만의 기법으로 풀어냈다. 장욱진의 <자갈치시장>은 부산으로 피난을 간 화가의 삶을 반영한 그림으로 자갈치 시장의 떠들썩한 모습이 밝은 색채로 표현돼 피난지를 역설적으로 그려냈다. 반면 양달석의 <피난촌>은 피난지의 모습을 차가운 색채로 표현해 피난의 고통과 허무함을 표현했다.

가족 공동체를 중시하던 한국인에게 전쟁은 끔찍했다. 한국전쟁 당시 화가들은 대부분 한 가정의 가장이었고 이들은 전쟁으로 인한 가정의 파괴를 역설적으로 표현해 가족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박고석의 <가족>은 한국 특유의 가족애를 느낄 수 있는 작품으로 화가는 따뜻한 색감의 물감과 투박한 터치를 통해 끈끈한 가족을 형상화했다. <황소>로 유명한 이중섭 역시 가족의 소중함을 담은 작품을 다수 그려냈다. <서귀포의 환상>은 서귀포로 피난을 간 이중섭의 삶이 반영된 그림으로 서귀포를 낙원으로 묘사해 아내와 두 아이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던 이중섭의 심적 부담을 미화시킨 작품이다.

60~70년대: 전쟁의 트라우마에 대한 추상적 묘사

박수근 <노상>

1960~70년대 시기의 작품은 추상적 기법을 통해 그려졌다. 투박한 붓질, 단순화된 형태와 현실과는 동떨어진 색채 표현 등이 이 시기 작품에 나타나는 주요 특징이다. 이는 군부독재정권의 집권과 이념 논쟁 등으로 전쟁에 대한 사실적 표현이 금지된 사회 현실이 결부된 결과이다.

박수근의 <노상>은 행상을 하며 가정을 이끌어나가는 여인의 모습을 묘사해 한국전쟁 이후 서민들이 겪었던 삶의 모습을 그려냈다. 그의 작품에서는 일하는 남성이 거의 그려지지 않는데 이는 전쟁 이후 남성들의 일자리 부재라는 사회적 문제를 드러낸다. 하지만 이 시기 한국전쟁회화는 전쟁의 참상을 부각하는 것만 중시해 과거 지향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또한 사실적 묘사를 도외시한 채 추상적 표현에만 치중해 표현기법에 한계를 지녔다는 평을 듣는다.

80년대 이후: 전쟁의 유산을 통해 전쟁을 돌아보다
1980년대는 1960~70년대에 대한 자성으로 한국전쟁의 유산과 민족의 남겨진 과제를 표현하는 사실적 묘사가 유행했다. 화가들은 전쟁의 참사만을 묘사하는 과거 지향적 회화에서 벗어나 전쟁이 오늘날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고민했다.

혼혈아 문제는 1980년대 한국전쟁회화의 대표적 소재였다. 전쟁 시기 외국 군대들과 전후 미군들을 상대로 매춘을 하던 ‘양공주’가 낳은 혼혈고아 문제는 1980년대 들어 과감하게 표현되기 시작했다. 손장섭의 <기지촌 인상>은 미군기(美軍旗)에 덮여 능욕당하는 여인의 모습을 절망적으로 그려내 혼혈아 문제를 형상화했다.

이산가족 역시 이 시기 한국전쟁회화의 대표적 소재다. 화가들은 주로 개인적 경험을 형상화해 전쟁으로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묘사했다. 임옥상의 <6.25전 김씨 일가>와 <6.25후 김씨 일가>는 이산가족문제를 여과 없이 보여준다. <6.25전 김씨 일가>에 그려졌던 인물이 <6.25후 김씨 일가>에서 실루엣으로 표현되는 등 두 작품은 이산가족이 된 김씨 일가를 사실적으로 그려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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