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라보예 지젝이 24일 경희대학교 평화의 전당에서 강연을 하고 있다.
사진 | 송민지 기자 ssong@

  지젝 교수는 ‘철학계의 엘비스 프리슬리’라 불리는 현대 지성계의 인기 스타지만, 최근 좌파 지성계 스타 학자 노엄 촘스키(Noam Chomsky) MIT 교수와 ‘설전’을 벌였다. 이번 논쟁은 단순한 ‘어려움’의 문제에서 시작됐다.

‘어려움’ 논쟁
  비판의 포문은 촘스키가 열었다. 2012년 12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촘스키는 “나는 다음절(多音節)로 된 화려한 용어를 동원하면서, 이론 같은 것은 전혀 없으면서도 뭔가 이론을 가진 척하는 가식에는 관심이 없다”며 “지젝이 대표적인데 나는 그가 하는 말을 전혀 모르겠다”고 말했다. 지젝 교수의 반격은 반년 만에 이뤄졌다. 그는 7월 초 영국 버크벡칼리지 대학 공개 토론회에서 “촘스키는 실증적이어야 한다고 늘 강조하는데, 난 촘스키만큼 실증적으로 틀린 사람을 알지 못한다”며 자신을 공격하는 촘스키를 비판했다. 지젝 교수는 “크메르 루주에 의한 학살은 웃기는 얘기”라는 촘스키의 과거 발언을 언급하며(일례로 촘스키는 1970년대 크메르 루주의 학살을 부인했지만 학살이 실제로 일어났음이 밝혀졌다) 촘스키가 기본적인 사실도 파악하지 못한다고 주장했다.

‘경험론 vs 합리론’?
  ‘어려움’으로 시작한 이번 논쟁은 현상을 바라보는 두 사람의 차이에서 비롯됐다. 영국 <가디언> 등 여러 언론은 이번 사건을 지젝으로 대표되는 유럽의 합리주의 철학과 촘스키로 대표되는 영미 앵글로색슨 경험주의 철학의 충돌로 바라보기도 한다. 그러나 이 같은 시각은 확대해석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촘스키가 미국인이지만, 촘스키를 ‘경험주의적’ 철학자라고 부르기는 무리가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두 사람의 대립은 근본적으로 직업상 차이에서 비롯된다는 것이 다수 의견이다. 양운덕 전 본교 철학연구소 연구교수는 “지젝은 철학자고 촘스키는 언어학자”라며 두 사람의 차이를 설명했다. 예를 들어 자본주의를 논할 때 지젝 교수는 철학자로서 보편적 ‘이론’을 먼저 떠올리는 반면 촘스키는 철학에 있어선 ‘지젝에 비해’ 비전문가적 입장이기에 이론보다 사례 중심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양 전 교수는 “지젝 교수 강연 내용 전반의 핵심이 되는 라캉 이론 자체가 특히 난해해 두 철학자의 의견이 미묘하게 갈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23일 대치동에서 이뤄진 이택광(경희대 영어영문학과) 교수와의 대담에서 촘스키의 ‘미제국주의 비판’에 대해 재비판한 점이 대표적인 예다. 지젝 교수는 촘스키의 비판에 “미국의 잘못만 지적한다”며 “촘스키의 주장은 이데올로기를 잘못 이해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이데올로기’라는 차원에서 설명하는 지젝 교수와 ‘미국’의 사례를 들어 설명하는 촘스키의 차이라고 볼 수 있다. 양 전 교수는 이에 “이는 단순한 핀트의 차이일 뿐, 누가 옳다고 딱히 설명할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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