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이러면 안 되는 거잖아요.” 인터뷰 도중
▲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 사진|조소진 기자 sojin@
한홍구 교수의 허탈한 웃음은 사회에 대한 안타까움을 담은 듯 다소 슬펐다.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한 시민사회의 대응 움직임이 한결 적극적으로 바뀌었다. 노란 봉투 캠페인 외에도 노동자에 가해지는 손해배상·가압류 문제 해결을 위한 모임 ‘손배·가압류를 잡자! 손에 손을 잡고(손잡고)’가 2월 26일 출범했다. 모임의 공동제안자 한홍구(성공회대 교양학부) 교수를 만나 ‘손잡고’가 나아갈 방향과 추구하는 가치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 단체형성 배경에 관해 이야기해 달라.
 “손해배상·가압류에 대한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돼 있었지만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명확하지 않았죠. 우리는 ‘적어도 그걸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라는 생각이 강했어요. 故 최강서 한진중공업 노조원의 유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노조원들에게는 태어나 ‘듣도 보도 못한 손해 배상·가압류 158억’이에요. ‘며칠간 노동을 하지 않고 파업하는 게 이렇게나 잘못된 건가’ 하는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모였고, ‘손잡고’는 그렇게 탄생했어요. 그리고 현재 교수·언론인·변호사·시민단체 등 500여 명 정도가 뜻을 함께하고 있습니다.”

 - 어떠한 계기로 단체에 참여하게 된 건가.
 “‘정말 이건 아니다’ 라는 생각이 나를 참여하게 했어요. 쌍용자동차의 경우 이미 24분의 소중한 목숨이 희생됐는데 여기에 또 손해배상·가압류로 47억 원이 떨어진 것을 본 순간 ‘얼마나 더 죽으라고 이러는 건가’ 이런 생각이 들었죠. 한국사회의 노동자들은 벼랑 끝에 매달려 있는 상황이에요. 사회가 잘못돼도 너무 잘못됐어요. 자본가와 노동가의 힘의 불균형이 극에 달했죠.”

 -현재 단체의 상황은 어떤지
 “많은 논의가 오가는 중이에요. 공동 제안자를 모아, 회의를 소집하며 최소한의 조직체계를 갖추고 나아갈 방향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있어요. 예상치 못한 큰 돈이 모였기 때문에 저 고통받고 있는 분들에게 이를 어떻게 나눌 것인가 등의 실무적 논의가 오가고 있습니다.”

 -앞으로 ‘손잡고’의 목표는
 “ 외국의 사례에 비추어볼 때, 노동자에게 손해배상·가압류를 가하는 나라는 우리나라뿐이에요. 우리나라만이 야만적으로 노동자를 압살하는 것이죠. 더군다나 정부까지 손배소를 매기고 있어요. 하위 법(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 일부 개정 법률안) 개정을 통해 이런 잘못된 관행을 고쳐나가는 것이 가장 큰 목표입니다.”

 - 법 개정이 쉽지만은 않아 보이는데
 “현재 국회의 분포나 정치상황을 고려했을 때는 좀 어려울 수 있어요. 하지만 다음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손해배상·가압류나 노동문제가 쟁점이 됐으면 좋겠어요. 20대 국회의 첫 번째 법안이 손해배상·가압류 관련 건이었으면 하는 게 바람이에요. 이를 위해선 노동자에게만 호소하는 것이 아닌, 국민들에게 호소했으면 해요. 지금 이 문제에 대해 ‘이건 아니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점차 많아지고 있어요. 이런 사회적 분위기가 형성된다면 국회에서도 무시 못하지 않을까요.”

 - 사회적 담론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이 있다면
 “국회의원들이 ‘아, 이건 정말 해야겠다’ 이렇게 느낄 정도로 사회적 담론이 형성되어야 해요. 그중에서도 시민사회에서 분리된 노동자에 대한 인식변화가 시급하다고 생각해요. 1990년대부터 시민사회가 노동사회와 떨어져 독자적인 영역을 만들기 시작했어요. ‘두건 매고, 조끼 입고, 손을 들며 구호를 외치는’ 이 모습에서 멀어졌죠. 사실, 시민사회에서 노동자를 배제하는 것은 말도 안 돼요. 이런 ‘노동자 없는’ 시민운동은 ‘시민 없는 시민운동’이라는 비판과 함께 힘이 약해졌죠. 7~80년대 민주화 운동이 지녔던 힘은 단순히 머릿수가 아닌 ‘가치’의 힘이었어요. 함께 지켜나가야 할, 공유하고 있는 가치가 있었기 때문에 영향력이 컸던 거예요. 따라서 이제는 시민사회와 노동사회의 분리를 넘어선 ‘가치’의 공유가 필요합니다.”

 -한국 노동계가 처한 현실은 어떠한가
 “직관적으로 우리 같은 비(非)노동자에겐 바닷물이 허벅지까지 차있는 느낌이죠. 그렇기에 파도가 쳐도 숨을 못 쉴 정도의 위협은 아니죠. 하지만 노동자에겐 바닷물이 입 바로 밑까지 차있어요. 조그마한 파장, 잔물결에도 노동자들은 짜고 쓴 바닷물을 마셔야 하는 게 한국 노동계의 현실이에요.”

 - 이번 노란 봉투 캠페인에 의의를 둔다면
 “노동법을 전공으로 하지 않는 사람들, 노동문제와 전혀 관련 없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제기했기 때문에 더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노동자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만연한 사회에서, 정부의 노동자 탄압에 대해 비판적인 인식을 지니게 된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이죠. 근로노동자의 일선 상황, 실제 그 노동자의 삶의 현장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커졌죠.”

 - 법원이 지나치게 사용자 편을 든다는 지적에 대해
 “노동3권을 헌법에 명시한 데는 다 이유가 있어요. 노동자의 최소한의 권리를 보장하는 법마저 없으면 노동자가 너무 밀리게 되죠. 이렇게 한없이 밀리면 노동자들의 생산 자체가 불가능해지고, 생산 메커니즘이 불가능해지면 사회가 유지될 수 없어요. 그렇기에 법에 명시하고 국가, 즉 사법부가 균형을 잡는 역할을 해야 하는데 현재 그 역할을 제대로 못 하고 있어요. 노동자의 삶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법률가가 없는 것 같아요. 노동 문제에 대한 인식이 옅어지고 점차 법률가의 머릿속에는 ‘손해를 끼쳤으면 당연히 배상해야 한다’는 민법적 사고방식이 만연해 지고 있습니다.”

 - ‘손잡고’의 앞으로의 계획은
 “노동과 시민사회의 재결합이 가장 장기적인 목표라고 할 수 있어요. 지금 당장은 우리 사회에 SOS를 보내는 것이에요. 다행히도 현재는 그 신호 소리에 많은 사람이 반응을 하고 있어요. 그러나 단발적으로 문제 제기에 그칠 게 아니라 현실 개선을 위해 힘쓸 거에요. 노란 봉투에서 더 나아가 릴레이 1인 시위, 전시회, 언론 기고, 토론회, 공청회 등 현실적인 쟁점으로 만들기 위해 많은 방안을 고려 중이에요. 사실 노사관계는 양자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지, 국가가 개입해야 하는 문제는 아니에요. 오히려 국가의 개입은, 자본가가 협상에 성실하게 임하지 않는 문제점을 야기해요. 국가가 개입할 때까지 노사교섭·단체교섭에 적극적으로 임하지 않고, 협상을 질질 끄는 거죠. 교섭에 성실히 이행하지 않으면 자본가가 손해 보는 방향으로 시스템을 고쳐야 단체교섭에서 노동문제를 해결할 여지가 있는데 국가는 노사관계 이해관계에 있어 자본가 편을 들어왔어요. 그걸 다시 가운데로 균형 맞추는 것이 목표에요.”

 - 고대생들에게 한마디 해준다면
 “이번 손해배상·가압류 문제를 떠나 자신이 직접 보고 느낀 바를 다른 사람들과 공유했으면 해요. 직접 경험해보지 못했으니 다른 학생들이 관심을 안 갖는 거에요. ‘안녕들하십니까’가 시작된 고려대의 학생인 만큼 자기를 돌아보고 타인의 고통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져보세요. 내 삶의 안녕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들의 안녕도 고려해봤으면 좋겠어요.”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