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충동 2가에 위치한 ‘인권연대’ 사무소, 김보미(여·28)

▲ 오전 업무를 보는 인권연대 사무소 풍경. 연이어 전화벨이 울려 쉴 틈이 없었다.

간사가 수화기를 손에 든 채 무언가를 종이에 바쁘게 받아 적는다. 오전 9시 반에 문을 연 사무소에서는 월간 <인권연대>의 막바지 교열과 민원업무가 겹쳐 5분에 한 번씩 전화벨이 울렸다. 오늘(2월 20일)까지 ‘43199 캠페인’ 자료집 자료 수집도 끝내야 한다. “2009년 기준으로 환형 유치(벌금 대신 노역을 대신하는 제도) 처벌을 받은 사람 수가 4만 3199명이에요. 소득차이를 고려하지 않는 벌금제는 개선돼야 합니다.” 기자에게 짧은 설명을 남기고 김보미 간사는 자리로 돌아갔다. 곧이어 비상벨 같은 전화벨 소리가 울렸고 그녀는 바짝 수화기를 귀에 댄다.

 북경대 공공정책학과 졸업 후 ‘화려함 보다는 화사함’이 좋아 인권 활동가의 길을 택한 지 2년이다. “평소엔 인권 자료집을 만들어 홍보하고 세미나 강연을 하고 다녀요. 인권 관련 저서를 내기도 하죠. 수입은 소정의 강연비, 출판 저작권료, 단체 회원들의 후원금으로 이뤄져요. 기본적인 삶을 영위할 정도라고만 말씀드릴게요.”

 격렬한 시위 현장에서 뛰어다니는 모습은 통념에 갇힌 인권 활동가다. 그녀는 시위가 인권보호 활동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인권연대는 상황에 따라 시위 활동을 벌이기도 해요. 하지만 보통의 인권보호 활동은 자료집 발간과 강연 등의 사업이 더 많습니다.”
 
▲ 미얀마 법률가 초청 국내 NGO 간담회에서 발언하는 김보미 간사.

 오후 2시, 김보미 간사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2층에서 열린 미얀마 법률가 초청 국내 NGO 간담회에 참석했다. 이는 민주주의 실현을 위해 2008년 개정된 미얀마 헌법이 미얀마 정부의 폭정을 막지 못한다는 데서 비롯된 간담회다. “인권이라는 큰 틀 안에서는 국적에 상관없이 인권유린을 당한 사람 모두가 보호 대상입니다. 인권 활동을 국내에만 국한해야 할 이유가 없는 거죠.”

 우찌민(U Kyee Myint) 미얀마 변호사가 미얀마 시민들이 탄압받는 과정을 설명한다. 인권 변호사 단체 ‘희망을 만드는 법’의 김동현 변호사가 미얀마 헌법에 명시된 처벌 조항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을 요구한다. 동시통역으로 짧은 질의응답이 오고 간다. 김보미 간사는 메모장에 무언가를 꼼꼼히 적는 데 여념이 없다.

 잠시 후, 김보미 간사가 침착하게 질문을 시작한다. “미얀마는 단체 등록법이 엄격해 비등록 시민단체들이 많습니다. 정부에 반하는 운동을 할 수 있다는 이유로 공식적 인정을 받지 못해 이렇다 할 원조를 받지 못한 채 탄압을 피해 음지에서 활동하고 있죠. 그 단체들에게 도움을 줄 방안을 듣고 싶습니다.” 우찌민 변호사는 “국제 사회에서 미얀마의 현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미얀마 정부에 지속적으로 보여주면 길이 열릴 것”이라는 넓은 해답을 제시했다.

 오후 5시 30분, 그녀는 지하철을 타고 사무소로 돌아가 월간 <인권연대>의 교열 잔업을 마쳐야 한다. 가톨릭대에서 들어온 강의 요청에 맞춰 일정을 조정해야 하는 일도 남았다. 일상적인 퇴근 시간은 오후 8시 정도다. 잠시 틈을 낸 그녀와 사무소 근처의 카페에서 커피 두 잔을 시켰다. “만약, 이곳 아르바이트생이 손님에게 모욕적인 대우를 받는다거나 반대로 손님이 불쾌한 경우를 당한다면 어떨까요. 아니면 대학 생활에서 교수님께 불합리한 차별을 당하는 경우도 있죠. 이런 것들이 인권 문제로 이어져요. 인권은 우리 생활에서 아주 가까운 곳에 있고 그런 민원 업무들을 다루는 것이 인권 활동가의 임무입니다.”

 그녀는 인권 활동가로서 힘든 점은 꼽기 어렵다고 강조한다. “일에 대한 보람으로 버티는 직업입니다. 인권 활동을 하면서 개인적으로 힘든 기억은 없어요.” 일하는 중에 그녀의 눈시울을 젖게 한 경험도 고난이 아닌 보람이었다. 그녀는 올해 2월 10일부터 5일간 교도소 강연회를 진행했다. “교화 목적으로 화성 교도소의 여성 제소자를 위한 강의를 진행했어요. 처음에는 사회인인 저를 어색해하면서 눈앞의 다과도 못 드시는 분들이 많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강연 마지막 날인 14일, 제가 소감 발표를 하는 데 몇 분이 우시더라고요. 덕분에 마음이 따뜻해졌다고 말씀하시면서 손을 잡아주기도 하셨어요. 사회인과 제소자의 입장을 떠나 인간적인 공감을 나눴다는 생각에 눈물이 났습니다. 제 생애 가장 행복했던 밸런타인데이였어요.” 그녀의 따뜻한 기억이 두 잔의 커피잔 사이에서 모락모락 피어올랐다.

 그녀는 인권 활동가를 꿈꾸는 대학생을 향해 행복을 위해서 용기 있게 전진하라고 말한다. “경쟁사회 속에서 남을 짓밟고 싸우는 일이 싫다면, 따뜻한 마음을 전하면서 더불어 살아가고 싶다면, 마지막으로 ‘사람’을 좋아한다면, 망설이지 마세요. 당신과 주변 사람 모두 행복해지는 직업입니다.”

 미얀마 정부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언론 자유를 보장하는 내용을 담은 ‘미디어법’을 제정했다는 소식이 전해지고 얼마 지나지 않은 21일, 전화로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이번 미얀마 법률 개정이 ‘미얀마의 봄’이 오는 초석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하는 그녀에게서 성큼 다가선 봄내음이 풍겼다. 남의 행복을 위해 살지만 자신이 더 행복해지는 직업, 인권 활동가의 향기를 맡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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