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정한 교수.
 '국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 세월호 참사를 보며 많은 사람들이 던지는 이 질문은 1980년 5‧18항쟁에서도 주요 담론을 구성했다. 세월호의 침몰을 보며 국민의 안전을 지키고 구조해야 하는 정부와 해경이 그 역할을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사욕을 채우고 기만하는 행태에 많은 이들이 분노하고 있듯이, 공수부대의 잔혹한 폭력과 학살을 보며 “국민이 낸 세금으로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존재하는 군인이 국민에게 총을 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라는 것이 사람들이 분노하고 저항한 큰 이유였다. 따라서 5월 27일 새벽에 마지막까지 도청에 남아 시민군이 지키려 했던 항쟁의 대의(大義)는 국가를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데 있었다. 그것은 ‘국가가 어떻게 이럴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응답이었다. 그리고 7년 후에 일어난 1987년 6월 항쟁에서 시민들은 국가의 민주화를 요구하며 전국적으로 거리 시위를 전개하여 5‧18항쟁의 대의를 역사적으로 실현했다.

 하지만 5‧18항쟁의 대의를 실현하는 과정은 험난했다. 1987년 이후 광주 학살의 진상을 밝히고 책임자를 처벌하려는 노력들이 계속되었고, 김영삼 정부 시기인 1995년에 비로소 5‧18 특별법이 제정되어 전두환, 노태우 등 관련자들을 내란죄와 반란죄로 무기징역을 선고했지만, 1997년 김대중 정부에서 곧바로 사면되어 책임자 처벌은 미완에 그치게 되었다. 1997년에는 5‧18항쟁이 공식적인 국가기념일로 제정되었고 ‘5‧18민주화운동’이 국가 차원의 공식 명칭으로 정해졌다. 5‧18항쟁이 민주화운동으로 국가의 승인을 받기까지 무려 17년이 걸린 셈이다.

 그러나 최근에도 5‧18항쟁을 둘러싼 논란을 끊이지 않고 있다. 사실 5․18항쟁에 대한 왜곡의 역사는 항상 그 진상 규명의 역사와 동시대적이었다. 항쟁 당시부터 정부와 군부에서 제시한 폭도(또는 ‘난동자’)론, 불순 정치집단론, 유언비어론들이 대표적인 왜곡의 담론이고, 이것이 오늘날까지도 5‧18항쟁을 왜곡하는 주요 논거로 제시되고 있다. 작년 종합편성채널에서 보도한 ‘북한군 침투 개입설’도 마찬가지이다. 일부 탈북자들과 보수파 인사들의 신뢰할 수 없는 증언과 주장은, 1995년 서울지방검찰청과 국방부 검찰부가 발표한 「5․18 관련사건 수사결과」와, 1997년 국방부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12․12, 5․17, 5․18 사건 조사결과 보고서」에서 이미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진 내용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이너리티 정서’를 가진 10-30대 젊은층 이용자들이 주도한다고 알려진 ‘일간베스트 저장소’(일베) 등 몇몇 인터넷 사이트에서 북한군 개입설을 비롯해 5․18 광주항쟁을 왜곡하고 폄하하는 담론들이 수년 전부터 꾸준히 재생산되는 것은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일베에서 제시하는 ‘팩트’라는 내용은 대부분 인터넷에서 ‘역사학도’로 알려진 김대령의 '역사로서의 5‧18'에 근거한 것인데, 이 책은 저자의 상상력으로 각종 음모론을 유포할 뿐 어떤 사실도 자료를 통해 입증하지 못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5‧18항쟁 후반기에 출현한 이른바 ‘복면부대’에 대해 김대령은 북한군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그가 주로 인용하는 당시 김영택 기자의 진술이 담긴 <5월 18일 광주>라는 책에서는 ‘복면부대’가 오히려 군이나 경찰이 보낸 정보요원이거나 공작요원일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한다. 기본적인 인용조차 조작하여 5‧18항쟁을 왜곡하고 있는 것이다. 더구나 계엄군의 잔혹한 진압과 만행, 학살 등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은 채, 시민들의 죽음이 계엄군 때문이 아니라 시민군의 가해 때문이라고 호도하고, 확인되지 않은 시민군의 선제 발포론을 내세워 계엄군의 집단 발포를 변호하고 있다. 또한 계엄군의 폭력과 학살을 종북이나 좌우대립의 문제로 환원시켜서 정당화하려 한다. 이와 같은 역사 왜곡은 궁극적으로 5․18의 학살자들을 법적으로 제대로 처벌하지 못해서 생겨나는 현상이다. 예컨대 독일에서 유태인 학살에 대한 왜곡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그 학살자들을 분명하게 처벌했기 때문이다.

 30여 년이 지난 오늘날 5‧18항쟁은 서서히 잊혀지고 있다. 이는 자본과 이윤을 우선시하는 풍토에서 민주주의가 점차 후퇴하는 과정과 동시적인 현상이다. 5‧18항쟁은 거리에서 흔히 마주칠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 공수부대 잔혹한 학살에 맞서 싸운 역사적 저항이었다. 그것은 국가가 잘못 행위할 때 바로잡고 새로운 국가를 만들어야 한다는 가르침을 남겼다. 이와 같은 5‧18항쟁의 정신은 세월호 사건을 대하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유효하다. 무능력한 국가, 국민의 안전을 지키지 못하는 국가, 부패한 국가를 새로 만들어가는 첫 걸음은 우선 책임자들을 확실하게 처벌하고, 시민들을 위한 실질적인 정치적 대표자들을 선출하는 데 있을 것이다.

 김정한
 본교 민족문화연구원 HK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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