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 4월 15일(양력 5월 13일), 강릉 단오제의 서막 중 하나인 대관령 산신제, 국사성황제와 봉안제가 열렸다. 단오제위원회 해설 자원봉사자 허규연 강원도 SNS 서포터즈는 “강릉단오제는 크게 굿, 재례, 관노가면극으로 구성됐다”며 “네 가지 요소인 유교(재례), 불교(국사성황신인 범일국사), 도교(신), 무속신앙이 어우러진 특이한 축제”라고 설명했다.
 강릉 단오제는 우리 조상의 삶이 녹아있으며, 축제의 시원(始原)인 신화의 공간이 가장 잘 보전되고 있는 점에서 특별하다. 인간이 자연과 오롯이 마주했던 인류 초기의 정착문화에서, 인간 내면의 순수하고 나약한 본성이 축제로 표현된다. 강릉단오제위원회 김동찬 상임이사는 “역사의 흐름에 따라 형식은 조금씩 변하지만,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질이나 삶의 애환’은 총체적인 집단행위인 축제 형태에서 잘 드러난다”며 “전통의 명맥을 잇고 있는 강릉단오제에서 이러한 형태가 가장 잘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강릉 단오제를 △축제와 원형적 세계관 △일탈 △나눔과 소통 △웃음의 미학을 중심으로 살펴봤다.

사진허규연 강원도 SNS 서포터즈, 이지민 기자, 강릉단오제위원회 사이트
참고문헌| 유럽사회문화연구소 <축제와 문화적 본질>, 안광선<강릉단오제가 유네스코로 간 까닭>

 1. 축제와 원형적 세계관


 강릉 단오제는 ‘우리는 어디서부터 왔으며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에 축제의 원형적 세계관의 제시를 통해 해답의 일부를 제시한다. 달의 절기를 따르는 한국의 농경문화에서 달은 대지의 모신(母神)으로 풍요의 상징이다. 달은 생명의 근원인 물의 이미지와도 밀접하게 연결돼 있어, 달, 물과 여성은 삼위일체를 구성한다. 강릉 단오제의 기원인 국사성황신의 탄생은 인간과 물, 태양의 만남을 바탕으로 해 이러한 원형적 세계관을 잘 나타낸다. 하루는 학산 마을에 어여쁜 처녀가 바가지로 ‘석천’이라는 우물에서 물을 떴는데, ‘태양’이 물바가지에 떠있었다고 한다. 물을 계속 새로 떠도 태양이 그대로 떠있기에 마셨는데, 13개월 후 아기를 낳았다. 이 아기가 바로 국사성황신으로 모셔지는 범일국사다. 허규연 강원도 SNS 서포터즈는 “신화적인 이야기지만, 현실에 실제로 학산 마을에 굴산사 터나 부도탑 등 범일국사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의 흔적이 남아있어 재미가 더해진다”고 말했다.
 인간은 나약하다. 인간의 이러한 근원적인 본성은 자연과 직면했을 때 가장 잘 드러난다. 인간은 어렵고 힘든 삶을 극복하기 위해 특정한 대상에게 ‘의탁’하게 된다. 전통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단오제에서 이러한 특성이 굿과 제례를 통해 잘 나타난다. 김동찬 상임이사는 “단오제에서 사람들은 신에게 의탁해, 신의 세계를 나의 세계와 만나보게 하는 경험을 한다”고 한다. 인간과 신의 만남은 제사 후 신이 먹은 음식을 나눠먹는 ‘음복’을 통해서 드러난다. 단오제는 국사성황신이 내렸다는 나무 ‘신목’을 모시고 내려가 국사여성황사에 합사해 모신 일주일 동안 열려, 인간과 신의 만남과 결합을 통한 신성화과정을 가능케 한다.

 2.일탈과 파괴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간은 누구나 일탈을 꿈꾼다. 윤선자 연구교수는 “축제는 일상에서 우리를 억압하는 것, 단순하게는 집안, 학교에서 넓게는 정치적인 권력까지 포함하는 모든 것을 풀고 본연의 근원적인 인간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축제에서는 일탈을 통해 억압을 파괴하고 새로운 일상의 탄생을 가능케 한다. 본래 갖고 있던 ‘나’의 모습과 다른 내면에 꿈틀거리는 또 다른 ‘나’의 모습들은 축제를 통해 드러난다. 서양에는 사순절을 앞두고 벌어지는 카니발이 이런 역할을 했다. 근대적 개념은 모든 현상에 대해 단 하나의 고유성만 있다고 규정하지만, 카니발은 이러한 이분법과 배타성에서 벗어나 다양한 많은 것을 이해할 수 있게 한다. 탄생은 죽음을 전제로 한다. 이러한 일탈과 파괴로 부활이라는 창조가 가능했다. 또한 한국 단오제에서의 일탈은 굿과 제례를 통한 신의 보호 속에서 이뤄졌다. 사람들은 신을 모셔와 축제 기간 동안 기존의 질서에서 벗어나 일탈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인간은 인간이기에 신과 계속 살 수 없다. 김 상임이사는 “일탈은 돌아오는 것을 전제로 한다”며 “단오제를 지낸 후에 신이 내린 나무 ‘신목’을 태워 인간은 신을 보내고 다시 인간의 세계로 돌아온다”고 설명했다. 축제가 끝난 후 사람들은 신을 보내고 다시 축제가 열릴 때까지 1년간 열심히 살아갈 수 있었다. 이렇게 제례의식은 전통 한국 축제에서 ‘일탈’을 가능하게 한 중요한 부분이었다. 김 상임이사는 “1996년도에 문화관광부에서 축제를 ‘문화예술행위로 치루는 제사행위’로 규정할 만큼 제례의식은 축제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3.나눔과 소통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축제는 ‘이윤’을 위한 장으로 변질돼 기존 축제가 지닌 나눔과 소통이 결핍돼고 있다는 지적받는다. 윤 교수는 “축제가 자본의 시장으로 느껴질 정도”라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화폐를 주고받는 것이 유일한 교환형식으로 규정되지만, 축제에서 공짜를 베풀면 그에 답해 또 베풀어줬던 사회도 있었다”고 말했다. 단오제에서는 강릉시민이 제사에 올리는 술과 수리취떡을 위한 쌀인 신주미를 자발적으로 제공하면서, ‘나눔’을 실현하고 있다. 김 상임이사는 “올해는 5500세대가 자발적으로 신주미를 냈는데, 그 쌀가마가 200가마 가까이나 된다”며 “이렇게 받은 쌀로 만든 술과 수리취떡을 단오에 참가한 사람들에게 나눠주며 ‘나눔’의 축제를 열고 있다”고 말했다. 이는 세금납부를 통한 ‘제도적 나눔’보다 더 큰 나눔의 효과를 제시한다. 세금을 납부해 복지제도로 다른 사람을 도울 때, 행복을 느끼긴 어렵다. 공동체적 가치를 함께 향유하며 상대를 알고 고통과 기쁨을 나눌 때, 행복의 관계가 형성될 수 있기 때문이다. 김동찬 상임이사는 “같은 공간과 시간을 둘러싼 아우라를 형성하는 축제에선 진정한 나눔을 바탕으로 한 행복의 관계가 이뤄질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나눔은 소통으로 이어진다. ‘빚쟁이도 단오장에서 만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강릉 사람들은 단오 때 다들 어떻게 사는지 궁금해 단오장에 모인다고 한다. 김 상임이사는 “소통은 언어적인 것만을 뜻하지 않는다”며 “평소에 못 만났던 사람을 보면서 느낀 감정과 같은 뒤따른 느낌과 감성이 소통의 진정한 의미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러한 축제에서의 나눔과 소통을 바탕으로 공동체 결집력은 강화된다.

 4.웃음의 미학
 단오제에서 웃음의 미학은 크게 풍자미와 안녕감을 바탕으로 드러난다. 앙리 베르그송에 따르면, 웃음은 기성의 경직된 의미를 전복시키고 억압에서 해방시키며 새로운 삶의 의미를 창출한다. 단오제에서 양반사회의 학풍을 풍자하는 가장 큰 공연인 관노 가면극에서는 이러한 웃음의 미학이 잘 드러난다. 관노가면극은 사랑하는 여자를 자신의 권위 때문에 내치는 양반의 허무맹랑한 가식을 벗겨내고 화해를 이끌어내는 내용을 골격으로 한다. 김 상임이사는 “관청 노비들이 양반을 빗대어 골려먹는 내용의 연극을 함으로써 웃음을 준다”고 말했다. 전통 사회에서 이러한 축제에서의 웃음은 권력과 권위의 억압에 대한 저항과 기존 신분제 질서를 전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웃음은 또한 굿이나 제례, 관노가면극에서 ‘해피엔딩’으로 결말을 맺으면서 가슴을 졸이던 관객이 안도하고 위안을 얻으며 나오기도 한다.
 단오제 난장(亂場)에서 공동체의 사람들이 서로 만나면서 이뤄지는 기쁜 만족감과 편안함이 또한 웃음을 자아내게 한다. 김동찬 상임이사는 “일본인이나 중국인 기자들이 단오제 취재를 올 때마다 가장 놀라는 것이 ‘어떻게 단오장에서 사람들이 무더운 날에도 인상을 쓰지 않는지’였다”며 “단오장에 오면 사람들은 누군가 나를 돌봐주고 있다는 편안함을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단오제에서 단 하나의 폭력 사건도 없었다며, 별의별 사람이 다 모여도 ‘편안’의 웃음의 미학이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강릉단오제(중요무형문화재 제13호)는 전국에서 가장 역사 깊은 축제 중 하나로 2005년 11월 25일 유네스코 세계인류구전 및 무형문화유산걸작에 등록된 후, 2008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에 통합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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