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 경제대) 교수

토마 피케티(Thomas Piketty, 파리 경제대) 교수는 1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진행된 ‘1%대 99% 대토론회 : 피케티와의 대화’에서 경제적 불평등과 자본주의의 미래에 대해 강연했다. 피케티 교수는 “경제 불평등의 극복 포인트를 알아내기 위해 한국을 포함한 많은 나라들의 과거 데이터를 분석해야 했다”며 “미래 예측보다는 과거를 살펴서 소득의 분배에 대해 심층적으로 알아보고자 했다”고 말했다.

  강연 후 이어진 토론에선 피케티 교수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의견이 오갔다. 로렌스 코틀리코프(Laurence Kotlikoff, 미국 보스턴대) 교수를 비롯해 전 청와대 경제수석인 조원동(중앙대 경영학과) 석좌교수, 유종일(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신관호(정경대 경제학과) 교수가 토론 패널로 참여했다. 좌장은 차기 한국경제학회장으로 내정된 이지순(서울대 경제학부) 교수가 맡았다.

 ‘r > g’ 부등식이 보여주는 불평등
  피케티 교수는 높은 자본소득율에 대해 미국, 영국, 독일 등 8개 국가의 데이터를 반영한 그래프를 제시하며, r과 g의 차이가 커질수록 불평등은 커질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근본적인 불평등을 의미하는 ‘r>g’ 부등식은 피케티 교수의 주장을 한마디로 압축한 것이다. r은 ‘return on capital(자본수익률)’의 약자이며, 자본에서 얻는 이윤, 배당금, 이자, 임대료, 기타 소득을 자본총액에 대한 비율로 나타낸 것이다, ‘growth rate(경제성장률)’의 약자인 g는 소득이나 생산의 연간 증가율을 의미한다. 피케티 교수는 “지난 300년간의 자본주의 역사를 되짚어 볼 때, 자본수익률은 늘 경제성장률을 웃돌지만 경제성장률은 보통사람의 소득 증가율과 평균적으로 같은 속도를 보인다”며 “부의 불평등이 노동 소득의 불평등보다 심해 경제불평등은 심화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패널로 참석한 로렌스 코틀리코프 교수는 “피케티의 주장처럼 부유층이 자본수익률을 쌓는다고 부의 불평등이 반드시 심화되진 않는다”며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부의 불평등을 따질 땐 정부가 제공하는 사회보험과 연금, 복지 혜택 등 경제적 불평등을 완화시키는 요소도 감안해야하며 r의 크기가 경제적 불평등의 척도라는 결론을 섣불리 낼 순 없다는 것이다. 이어 코틀리코프 교수는 “소득 불평등을 야기하는 요인은 다양하며 최상위층의 거액 기부처럼 소득 불평등을 완화하는 또 다른 방식들도 고려해야한다”고 말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자신의 저서에서도 소득 불평등의 원인을 r과 g의 차이로만 제한하진 않지만 실증적인 데이터가 r과 g의 차이가 상위층으로의 부의 집중을 야기함을 무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부의 집중, 개입이 필요하다
  피케티 교수는 1910년부터 2010년까지 미국의 소득불평등을 보여주는 그래프(자료1)를 토대로 경제 불평등에 대한 설명을 시작했다. 그래프에 따르면, 불평등이 많이 완화된 시점은 1950년대부터 1970년대이며, 1980년대부터 급작스럽게 불평등이 증가한다. 피케티 교수는 “국민의 10%가 국가 소득의 50%를 차지하는 것은 국가의 경제 발전에 따른 혜택 중 상당수를 소수가 독점한다는 의미”라고 분석했다.


  피케티 교수는 소득불평등이 생기는 요인에 대해 ‘부유층 생산성의 급격한 증가’라고 분석했다. 예를 들어, 최고위 경영자의 능력과 생산성이 다른 계급의 노동자에 비해 갑자기 높아졌으며 이들 경영자가 대개 그들 자신의 보수를 결정할 힘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피케티 교수는 이를 보여주는 근거로, 포브스가 1987년부터 2013년까지 억만장자의 부 성장률을 정리한 표를 제시했다. 표에 따르면 최상위 계층의 부는 계속 증가해 억만장자의 부의 성장률이 6.8%대를 보인다. 이는 세계 경제성장률인 3.3%, 세계 부 증가율인 2.1%, 그리고 세계 인구 소득 증가율인 1.4%를 훨씬 웃돈다. 피케티는 이를 ‘19세기 세습 자본주의로의 회귀’라고 말했다. 축적되고 세습된 자본에 의한 부가 더 중요한 가치를 갖게 돼, 점점 불평등의 체제로 사회가 구조화된다는 것이다. 그는 “현대사회는 일부 최상층에게만 부가 집중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해있다”며 “누진세 도입과 시장조정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신관호 교수는 피케티 교수가 제시하는 불평등의 원인에 대해 완전히 동의하긴 어렵다고 말했다. 신관호 교수는 “피케티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1차, 2차 세계대전과 대공황 등의 큰 사건을 겪으면 자본의 총량이 크게 줄고 자본수익률이 감소하면서 소득불평등은 감소한다고 말하지만 한국의 경우는 다르다”고 말했다. 한국은 1997년에 IMF를 겪으며 재벌이 해체되고 부동산 가격이 하락한 이후 오히려 불평등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신 교수는 “한국의 경제상황을 충분히 반영한 한국만의 원인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며 그 예시로 중산층의 감소, 비정규직 비율 증가 등을 언급했다.

 누진세, 불평등의 해법 될까
  피케티 교수는 부의 불평등의 해결책으로 조세 개혁을 제시했다. 현실적으로 경제성장률을 크게 끌어올리기 어려운 상황에서 기업의 역동성과 국제적인 개방경제를 보호하는 동시에 상류층의 자산이 급격하게 성장하는 것을 민주적으로 통제하는 유일한 방법이 세금이라는 것이다. 피케티가 제안한 세금은 누진세와 글로벌 자본세다. 개인의 소득세에 적용하는 세율을 최대 70% 수준으로 설정하고 부유층의 토지, 주택, 특허, 금융자산 등 소득 이외의 재산 전체에 매년 5~10%의 글로벌 총자산세를 부과해야한다는 것이 핵심이다. 피케티 교수는 “어느 시점에서 불평등 격차가 지나치게 벌어지면 이를 조정할 개입이 필요하다”며 “소득수준별로 누진적인 자본세를 매김으로써 새로운 자본축적을 촉진하면서도 불평등의 악순환을 피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최부유층의 세율보다 중요한 것은 부유층이 성장의 분배를 형평성 있게 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외에도 피케티 교수는 개인의 부가 이전되는 단계에서의 상속·증여세 강화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교육이 인적 자본으로서 소득과 부의 불평등도를 결정하는 원인임을 지적하며 교육정책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한국에 필요한 처방은
  피케티 교수의 이론을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지에 대해 국내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한계가 있다’고 말했다. 신관호 교수는 “피케티 교수가 선진국 중심으로 진행한 조사를 개도국에 적용하기엔 한계가 있다”며 “한국의 경우 r을 줄이기보단 g를 높이는 것이 우선이며, 규제 완화는 오히려 사회적인 갈등을 야기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조원동 교수는 “피케티 교수가 언급하는 성장이론에서 부동산은 자본에 포함되지 않는다”며 “한국에선 전체 가구 자산에서 비금융자산의 80%가 부동산”이라고 말했다.

  이에 피케티 교수는 “한국과 같은 성숙한 개도국에선 장기적으로 저성장이 이뤄질 수밖에 없다”며 “자본에 대한 수익률이 일반적인 성장률보다 빠르게 오르고 있는 것에 균형을 잡기 위해선 누진적 부유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국이 그동안 빠르게 경제성장을 이뤄냈지만 앞으로의 경제 성장률은 더뎌질 수밖에 없기에, 상대적으로 큰 폭으로 증가할 자본 수익률을 어느 정도 완화할 장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덧붙여 그는 “일반 소득세와 누진적 부유세는 부의 이동성을 원활하게 할 것”이라며 “경제불평등을 해소하기 위한 정책적 제언들은 양자택일할 것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으로 이뤄져야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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