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47대 총학생회 선거 당시 학내 선거관리위원회장과 특정 선본 간에 결탁이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중운위 회의록에 의하면 홍보물의 제작을 도와주고 정해진 수량을 넘어선 홍보물의 인쇄를 묵인하였다는 것이다. 당시 당선된 문제 선본의 후보들은 아예 학교를 떠나버렸다. 이에 지난 13일 전체학생회대표자회의(이하 전학대회)에서 제47대 총학생회 선거를 무효로 한다는 취지의 안건이 가결됐다. 전학대회에서 나름의 치열한 논의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논의 과정에 학내 선거관리위원회(이하 선관위)나 중앙운영위원회(이하 중운위)에 학생들이 직접 참여한 선거를 무효로 돌릴 권한이 있는지 여부에 대한 심층적인 분석이 있었는지는 의문이다.

   전학대회에서 선거 무효화 안건에 찬성한 41명의 대의원들은 선거과정에 부정행위가 있었으니 선거는 무효이고, 선거가 무효인 이상 전학대회에서 그 무효를 선언하는 것에 무리가 없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물론 선거에 부정행위가 개입된 것이 잘못이라는 점에 의문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그러한 잘못이 선거 자체를 아예 없던 일로 만드는 것인지, 선거가 아예 없던 일이라고 판단하는 주체가 누구인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원래부터 무효인 선거와 무효로 정한 선거
 
우선 구분해야 할 것은 ‘객관적으로 애초에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무효인 선거와 비록 효력이 있었더라도 ‘이제 우리 사이에 없던 일로 하자’고 정하는 무효로 정한 선거이다. 전자에 해당하는지 여부는 법률적으로 비법인사단에 해당하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에 관한 법률문제의 전속적 판단권한을 가지는 법원이 정할 사항이다. 법원이 법률에 근거하여 효력을 가진다고 여기는 행위를 선관위나 중운위에서 효력이 없다고 우겨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후자와 같이 우리 사이에서 무효로 정할지 여부는 고려대학교 총학생회의 몫이라고 본다. 우리 일을 우리가 정하는 것은 강행법규(그에 반하는 행위를 무효로 하는 효력을 가지는 법규)에 위반되지 않는 한 자유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대표자인 선관위나 중운위가 정할 수 있다고 볼 여지도 있다. 하지만 주체가 엄밀히 누구인지는 여전히 밝혀보아야 알 일이다.

 회칙에 없으면 그냥 아무나 하면 되나?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 고려대학교 총학생회는 비법인사단에 해당하고, 비법인사단에는 성질상 법인격(회사 등 법인은 사람이 아니지만 법률이 법인격을 부여하여 사람과 같이 권리의 주체가 된다)을 전제로 하는 것을 제외하고 사단법인에 관한 민법의 규정이 적용된다. 
 
  민법 제68조는 비법인사단의 사무를 정관으로 이사 또는 기타 임원에게 위임한 사항 외에는 총회의 결의에 의하도록 정하고 있다. 이는 미리 대표자가 정할 수 있도록 권한을 부여한 사항 외에는 우리가 직접 정하라는 의미이다. 고려대학교 학생회의 정관인 학생회칙은 선거무효에 관하여 침묵을 지키고 있다.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선관위나 중운위에게 이를 정할 권한을 부여하기로 합의한 적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결국 선거를 무효로 돌릴지 여부는 원칙으로 돌아가 총회의 결의, 즉 고려대학교 학생회의 경우 총투표에 의한다고 볼 수밖에 없다.

 무효를 무효라고 하지도 못하는 것인가
 
이렇듯 ‘이제 우리 사이에 없던 일로 하자’는 것은 선관위나 중운위가 할 일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객관적으로 애초에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을 무효라 할 수도 없냐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다. 애초에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객관적으로 확실하다면 그럴 수도 있다 여겨지고, 나름의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역사적으로도 선언의 법적 근거나 효력은 차치하고서라도 3.15 부정선거에 대하여 민주당이 선거의 불법, 무효를 선언한 사례가 있다.

  하지만 선거가 효력을 가지는지 아닌지 객관적으로 잘 모르겠다면? 물론 이 경우에도 선관위나 중운위가 자신의 견해를 표명할 수는 있다고 본다. 그렇지만 단순한 ‘중운위의 견해 표명’은 가능해도 ‘중운위의 선거 무효화 의결’은 개념상 있을 수 없고, 있더라도 아무런 효력을 가질 수 없으며 오해만 남길 뿐이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객관적으로 애초에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지’ 여부는 법원이 판단하는 사항이기 때문이다. 결국 법원이 제47대 총학생회장 선거를 무효로 볼 것이 확실한지 여부에 따라 관점이 달라진다.

 어떤 선거가 애초에 아무런 효력을 가지지 못하는 선거일까
 
각자의 생각이 다를 수 있다. 실제로 본 건에 관심을 가지는 학우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한 것으로 보인다. 대법원은 단체의 대표자 선거의 절차에서 법령 또는 내부규정을 위반한 사유가 있는 경우, 그 사정만으로 당해 선거에 의한 당선이 무효가 되는 것은 아니고 ①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고, ②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에 한하여 선거가 무효라 보고 있다(2009다100258). 선거의 자유와 공정을 ‘현저히’ 침해하였는지는 특히 의견이 다를 수 있는 부분이다. 이에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경우’를 주로 논하겠다. 여기에서의 선거의 결과란 단순한 득표수의 차이가 아닌 당락을 의미한다. 한편 민사소송법상 입증부담의 법리에 따르면 위 두 가지 요건은 무효를 주장하는 당사자가 증명하여야 한다. 이 때 증명의 정도는 원칙적으로 법관의 확신이 들 정도이다(본증).

  제47대 총학생회 선거에서의 부정행위는 홍보물의 제작을 도와주고 정해진 수량을 넘어선 홍보물의 인쇄를 묵인한 것이다. 그리고 문제 선본의 후보자는 1,119표 차이로 당선되었다. 혹자는 회칙에 3회의 경고를 받으면 후보자는 자격을 상실하도록 정하였고 3회 이상의 규칙위반이 있었으므로, 후보자의 자격이 없는 자가 당선된 것이라서 당연히 선거에 영향을 미친 것이라 한다. 하지만 경고를 받은 사실과 규칙위반사실은 다르다. 현실적으로 1회의 경고를 받은 선본의 후보자가 자격을 상실하였다고 볼 수는 없다. 나아가 선관위와 결탁관계가 없어 추가경고를 받았다 가정하더라도 2회의 경고를 받은 문제의 선본이 감히 규칙위반에 나아가리라 상정하기도 어렵다. 따라서 규칙위반을 묵인한 행위 자체가 선거의 당락을 확정하였다고 보기 어렵다. 이는 홍보물의 제작을 도와주고 정해진 수량을 넘어선 홍보물의 인쇄를 묵인한 행위와 더불어 1,119표 이상의 차이를 발생시킬만한 부정행위가 있었는지 여부를 판단하는데 고려할 요소가 될 뿐이다. 그러한 차이를 발생시킬만한 부정행위인지 여부에 대한 판단은 어려운 문제이다. 위에서 언급한 입증부담의 법리에 비추어, 스스로를 법관이라 여기고 ‘과연 홍보물의 제작을 도와주고 정해진 수량을 넘어선 홍보물의 인쇄를 묵인한 결탁행위가 1,119표의 이상의 차이를 발생시켰다고 확신할 수 있는가?’ 에 대한 답을 내려 보는 것이다. 필자는 개인적으로 ‘확신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홍보물의 제작은 선관위의 도움이 없었어도 결국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있었을 것이라 보이며, 규칙상 홍보물을 10,000부까지 인쇄하기로 하고 12,000부를 인쇄하였지만 실제로 배포한 홍보물은 10,000부도 되지 않은데다 나머지는 버리기도 하였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영향력이 미미하다고 판단되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법원이 제47대 총학생회 선거를 무효라고 판단할지 또한 확실하다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판례의 법리에 따라 법원이 선거가 무효라고 본 사안들은 ①규칙상 허용되지 않는 방법으로 허위의 사실을 적시한 명예훼손 행위를 하였고 득표차가 22표인 사례(2003다11837), ②당선인이 선거인에게 금품을 제공하였고 득표차가 2표인 사례(95다50196), ③1명의 선거권을 부당하게 박탈한 상태에서 선거가 시행되었는데 득표차가 1표인 사례(2013나2011216 판결) 등 부정행위의 반사회성이 현저하여 범죄행위의 정도에 이르거나, 부정행위 그 자체로 선거의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비교적 명확했다.

  반면 ①선거 당일 투표소 입구에서 조합원들을 상대로 선거운동을 하고, 조합원들에게 음식을 제공하거나 이권을 미끼로 득표활동을 부탁하는 등 불법선거운동을 하였다고 주장하였으나 이를 충분히 증명하지 못한 사례(2009다100258), ②대의원에 의한 대표자 선거에서 적법한 선출절차를 거치지 아니한 대의원이 참석한 사례(94다23982) 등 법률 위반의 경우라도 선거의 결과에 영향을 미친 것이 명확하지 않은 사안에서는 선거를 무효로 보지 않았다.

 명분이 모든 것을 누를 수는 없다
 
어찌 보면 가능할 것도 같은 일이다. 근래 고려대학교 학생회에 유례없는 선거단계에서의 부정행위가 적발되었다. 나쁜 짓을 했는데 문책할 여지도 없이 고려대학교에서 도망가 버렸다. 탄핵도 못하니까 전학대회에서 선거라도 무효로 하자. 이해는 된다. 하지만 이는 뒷일을 전혀 생각하지 않은 결정이다. 이와 같은 선례를 만들면 후일 정상적으로 이루어진 선거를 선관위나 중운위의 의결만으로 무효화할 여지도 있다. 선관위가 선거를, 대표자들이 학생들의 의사를 간단히 뒤엎을 수 있는 해괴한 광경이 펼쳐진다.

  그렇다고 의결에 찬성한 대의원들을 비난하거나 탓하자는 것이 아니다. 전학대회를 회상해보면 회의가 길어지고 무슨 논의를 하는지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도 있고, 간혹 목소리 큰 게 장땡인 경우도 있다. 같은 대학생인 대의원들이 짧은 시간 내에 완벽한 결정을 하리라  기대하기도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적어도 본 건과 같이 중대한 사안은 충분한 의견수렴과 논의가 선행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울 뿐이다. 이 글의 또한 앞으로의 논의를 상정한 필자의 개인적인 소견이다. 앞서 말했듯 고려대학교 학생회의 일은 고려대학교 학생들이 정하는 것이다. 다만 이 글을 통하여 화두를 던져주고 싶을 뿐이다. 대의원들이 부디 본 건의 정당성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고, 앞으로 대표자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경계(鏡戒)로 삼길 바란다.

하헌웅 (본교 법학전문대학원 4기) (제44대 법과대 부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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