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기치 못한 불청객으로 올해의 긴 추석 연휴는 연일 어수선했다.‘매미’라는 친숙한 이름에 웃음을 터뜨릴 때만 해도, 우리는 어린 시절 장난삼아 잡던 매미처럼 호락호락한 대상이 아니라는 것에 무관심할 뿐이었다. 그 결과는 어떤가. 사망·실종 130명, 피해액은 무려 4조 7천억 원에 달하는 상황이다. 연휴 동안 대구에 있었던 나는 미약하게나마 태풍의 위력을 느꼈는데, 창문을 부숴버릴 태세로 몰아치는 비바람은 공포 그 자체였다.

전쟁터가 되어버린 마을, 지붕까지 잠겨버린 집과 일주일 째 고립생활을 하는 사람들, 쓰레기 더미가 돼버린 농작물. 영화 속한 장면처럼 느껴지는 이 것이 바로 같은 한반도 땅에서 일어난 상황이다. 신문 지상을 덮고 있는 참혹한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가슴이 먹먹해진다. 가재도구를 말리고 쓰러진 벼를 일으키는 사람들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나에게 저런 상황이 닥쳐왔다면 저 분들처럼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까. 이런 상황에서 이유 없이 숙연해지는 요즘이다.

하지만 한 쪽에서는 차라리 외면해버리고 싶은 현실이 귀에 들려온다. 경기도 소방재난본부 직원들이 선진 재난관리 시스템을 둘러본다는 명목으로 관광성 해외 출장을 나갔다.‘범시민 태풍피해 복구’를 외치는 부산에서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 예매가 28분만에 매진됐다고 한다.

비록 직접적인 관계의 사람들은 아니지만 같은 땅에 살고 있는 국민으로서 우리는 수재민들에게 예의를 갖춰야 한다. 생각 없이 하는 행동 하나 하나가 일어서려는 사람들을 다시 짓밟을 수도 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된다.

박노해 시인의 <사람만이 희망이다>라는 시에 이런 구절이 있다.‘참 좋은 사람은 그 자신이 이미 좋은 세상이다’좋은 세상을 만드는 법, 자신부터 시작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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