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는 개교기념 특집으로 교수와 학생이 밥 약속을 통해 고민을 상담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학생들에게 사전 신청을 받아 4명을 선발했으며, 학생의 고민에 대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교수를 초빙했다. 학생들은 ‘교수와의 밥약’을 통해 진로, 인간관계 등 여러 분야에 걸친 고민을 털어놓고 조언을 구했다.

 

두려움이야말로 '도전을 돕는 신호'

감다원(경영대 경영15) 씨에게 세상은 재미있는 것으로 가득하다. 전공인 경영학 공부를 비롯해, 심리학, 뇌 과학, 밴드활동, 인간관계까지. ‘하루라도 일찍 목표를 정해 달려가라’는 조언은 무엇도 포기하고 싶지 않은 감 씨에게 어려운 이야기다. 진로에 대한 고민과 요즘 느껴지는 무기력감으로 고민하던 그는 지난 4월 6일, 최기홍(문과대 심리학과) 교수의 연구실을 찾았다. 문과대 1층에 자리한 최 교수의 연구실에서, 김이 나는 따뜻한 커피 잔을 사이에 두고 교수와 학생이 마주앉았다.

“선택하지 못한 것에 항상 미련이 남아서 힘들어요.” 노트북에 띄운 미리 준비한 질문 항목을 보며 감다원 씨는 차분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최 교수는 선택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도 연습이 필요하다며 다독였다. “잃는 게 있어야 얻는 것도 있는 법이죠. 또 잃는 것을 나쁘게만 보지 마세요. 두려운 것을 시도해보는 용기니까요.” 요즘 학생들이 스스로에게 너무 가혹하다 며 최 교수는 고대생을 위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여유가 없으니 선택을 잘못했을 경우의 결과를 지나치게 파국적으로 상상하는 거예요. 하지만 살아보니 실패해도 그게 끝은 아니더라고요. 두려움이야말로 ‘도전을 도우려는 신호’니 이를 꺼릴 필요가 없습니다.”

김 씨는 좋아하는 것을 찾으라는 말이 마치 해내야 하는 ‘미션’이 된 것 같다는 마음에 대해서도 설명했다. 그는 “경영심리에 관심이 있었지만 분야의 정체성이 모호하다는 말이 있어 걱정”이라며 “파고들만한 분야를 어서 찾지 못하면 추구하던 행복에서 멀어질 것 같아 불안하다”고 말했다. 최 교수의 조언은 불안을 해결하려기보다 불안과 친해지라는 것이었다. “불안하다는 것은 얻고 싶은 것과 잃고 싶지 않은 것이 있다는 의미예요. 그 감정을 들여다보면 자신이 추구하고 있는 가치를 알게 될 겁니다.” 이어 그는 본교 심리학과에는 다양한 세부전공이 있다며, 감 씨의 관심사인 ‘소비적 광고심리’ 전공도 개설돼있다는 설명을 덧붙였다.

“1학년 때와는 달리 무언가를 추진할 열정이 약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 이유는 뭘까요?” 커피가 식어가는 동안 긴 이야기를 나눴지만 마무리 즈음까지 질문을 던지는 감 씨의 얼굴이 진지했다. 최 교수는 일반화를 경계하며 조심스럽게 심리학에서 다뤄지는 두 가지 열정을 소개했다. 사랑하는 것을 추구하는 ‘조화로운 열정’과, 주위 사람들이 가치를 두는 것을 추구하는 ‘강박적 열정’ 중 후자는 지속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구분이 쉽지는 않겠지만 강요된 열정이 아닌지 생각을 해 보는 것만으로 도움이 될 겁니다. 고민을 진지하게 바라보고, 대화의 기회를 잡으려 노력하는 다원 학생에게는 문제를 헤쳐 나갈 힘이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칭찬을 건네는 최기홍 교수의 얼굴에서 진심어린 격려가 엿보였다.
 

올바른 경제 가치관 위해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보라

 

조대현(정경대 경제14) 씨는 공무원이 되고 싶어 다른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던 중 5급 공무원 시험을 2개월 정도 준비했다. 하지만 행정고시의 경제학 과목은 주류경제학에 기반한 답안을 요구하는데, 조대현 씨는 시장의 기능을 중시하는 주류경제학에 회의감을 갖고 있었다. 결국 그는 경제를 바라보는 자신의 틀을 확립한 후 다시 시험을 준비해야겠다는 생각에 올해 본교 경제학과에 편입학했다. 그가 경제현상, 정부의 역할 등에 대한 생각의 틀을 만드는데 도움을 주기 위해 비주류경제학을 전공으로 하며 현재 교무처장을 맡고 있는 박만섭(정경대 경제학과) 교수와 만났다. 4월 12일 법대후문의 양지설렁탕에서 그들의 ‘밥약’이 진행됐다.

“경제학에 대한 가치관을 어떻게 확립할지 모르겠어요. 먼저 가치관을 확립한 분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박만섭 교수는 자신의 경험을 얘기하며 배우는 모든 것을 비판적으로 받아들이라고 조언했다. 박 교수는 학부생 시절 자신이 공부하던 내용이 옳다고 생각해 그대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정답이라고 생각하며 공부하던 내용에 회의감이 들었고 그 때부터 비주류경제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비주류경제학에서는 주류경제학을 비판하고 대안을 제시하는데, 항상 지금 강의하고 있는 이 수업내용조차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라는 이야기를 해요. 본인의 가치판단을 바탕으로 수업내용을 받아들이는 방식뿐만 아니라 사회를 바라보고 학문을 연구하는 방식을 배워야 해요”

그들은 사회보장제도와 정부의 역할에 대한 이야기도 나눴다. 조대현 씨는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에 대해 질문했다. “사회보장제도가 어떻게 이뤄져야 하는지를 잘 모르겠어요. 미국처럼 사회보장제도도 시장에 맡겨 기부제도를 활성화하는 것이 맞는지, 정부에서 적극적으로 나서 사회보장을 해줘야 하는 것인지 궁금합니다.” 이에 박 교수는 자신은 정부가 개입해야한다는 입장이지만 결국 어떤 관점을 지니고 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답했다. “정부가 도와주게 되면 정부 재정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사회보장제도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입장이지만 부유한 사람들에게 조세를 통해 재원을 충분히 이끌어내면 돼요. 하지만 이 부분도 결국 정답이 없어요. 어떤 정치적, 경제적 관점을 갖는지에 달라지죠.”

조대현 씨는 마지막으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 겪게 될 ‘영혼 없는 관료’ 문제에 대해 질문했다. “시험 보는 것부터 제가 생각하는 바와는 다른 내용을 기계적으로 써야 하는데, 공무원이 되도 제 신념과는 다른, 그런 일을 할까봐 걱정돼요” 이에 박만섭 교수는 현실적인 대안을 내놓았다. “말단일 때는 위에서 시키는 지시사항을 따라야 하죠. 말단인데. 하지만 중요한 것은 실제로 정책을 세우고 계획하는 지위의 공무원이 됐을 때예요. 말단일 때에도 속으로는 자신의 소신을 지켜야 해요.”
 

한국인 친구에게 먼저 다가가는 용기를 내야

 

주가영(朱文佳, 미디어15) 씨는 중국에서 온 유학생이다. 그는 외국인으로서 한국 학생과 어떻게 잘 어울릴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있다. 그를 위해 제프리 할러데이(Jeffrey Holiday, 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와의 자리를 마련했다. 할러데이 교수는 2001년 처음으로 한국에 온 후 한국어에 매력을 느껴 작년 2학기부터 본교 국문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그들은 4월 7일 미스터국밥에서 ‘밥약’을 했다.

“다른 외국인보다는 친하게 지내는 한국 친구가 많지만, 언어적, 문화적으로 완전히 친하게 지내기 어려워요.” 주가영 씨의 고민은 동기들과의 관계다. 그는 미디어학부 15학번에서 유일한 중국인 학생이다. 그는 다른 한국인 동기들과 친하게 지내기 힘들었다고 고백했다. 이에 할러데이 교수는 주 씨의 고민을 이해해주고 공감해줬다. “그것은 되게 어려운 고민이에요. 제가 해줄 수 있는 말은 별로 없어요. 가영 씨의 고민을 이해한다는 말 밖에는... 사실 모든 사람과 친하게 지낼 수는 없어요. 한국 학생이 먼저 다가오지는 않아요. 먼저 다가가려해도 모두가 반응하지는 않을테지만 그래도 용기를 내야 친구를 사귈 수 있어요.”

서로는 외국인으로서 강의를 진행하고 수강하는 것에 대해 공감하기도 했다. 주가영 씨는 상대평가를 하는 몇몇 과목에서 한국 학생들과 같이 시험 보는 것이 부담돼 한국어 강의를 듣지 않고 절대평가를 하는 영어강의만 듣고 있다. 할러데이 교수는 주가영 씨의 고민에 충분히 공감했다. 할러데이 교수는 한국어 강의에 부담을 느낄 수 있는 외국학생을 위해 국어국문학 강의를 영어로 진행한다. “한국어를 배우고 싶어도 한국어를 못해 배우지 못하는 교환학생들에게도 공부할 기회를 주고 싶었어요.”

주가영 씨는 할러데이 교수에게 고민이 있을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를 물었다. “중국이 아닌 외국에 있는 것이 좋긴 해요. 근데 고민이 생기면 어떻게 해결할지 모르겠어요. 교수님은 한국에 있으면서 고민이 생길 때 어떻게 해결하는지 궁금해요.” 이에 할러데이 교수는 다른 사람과 똑같이 친구 만나서 이야기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저는 국문과 교수님 중에 친하게 지내는 교수님이 있는데 학교 생활하면서 궁금한 점이나 고민이 생기면 항상 그 분에게 가서 이야기해요.”
 

예술에 끌린다면 망설이지 말고 행동하라

 

허준(정경대 경제15) 씨는 이중전공으로 디자인조형학부를 고민하고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미술을 공부했지만 경제학에 관심이 생겨 미술을 그만두고 경제학과에 진학했다. 하지만 입학 후에 그는 본교 중앙 서예·서양화 동아리인 ‘서화회’에 들어가 전시 활동에 참여하는 등 여전히 미술에 대한 관심을 놓지 않고 있다. 허 씨는 순수예술에 대한 관심이 많아 전문적으로 공부를 해보고 싶지만 본 전공인 경제학과와의 괴리로 고민하고 있다. 수많은 갈림길 사이에 서 있는 허준 씨에게 이기봉(디자인조형학부) 교수는 이렇게 말을 남겼다. “하고 싶으면 해라” 4월 18일 저녁 7시 간단한 다과가 차려진 이기봉 교수의 연구실에서, 두 사람은 순수예술을 이야기했다.

이기봉 교수는 고민하는 허준 씨에게 하고 싶다면 하는 게 맞는 것이라고 명쾌한 답을 내놨다. 이 교수는 “마음이 예술에 끌리고 준비가 돼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하라”고 말했다. 허준 씨가 예술과 경제학을 연계할 수 있는 직업에 대해 묻자 이 교수는 말했다. “예술로 직업이나 일처럼 현실의 효율성을 고민하기는 어려워. 예술은 어떻게 하면 멋있게 살 수 있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학문이야.” 인간은 예술을 통해 결핍된 부분을 채워나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인간은 살아가다보면 허무, 허망의 감정을 당연히 느낄 수밖에 없어. 그걸 예술이 채우는 거야.” 예술은 인간에게 정신적 쾌락을 선사하고 이를 통해 인간은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게 된다고 했다.

이기봉 교수는 예술을 하기에 앞서 스스로 거시적인 관점을 만들 것을 주문했다. “지금 우리 사회는 병들어 있어. 인간이 마음의 병이 들면 미술치료를 하잖아. 그것처럼 병든 사회도 예술로 치료해야 해. 어떻게 예술로 사회를 치료할까. 그걸 우선 스스로 고민해보는 시간이 필요하지.” 예술은 사회에 어떤 가치로 살고, 어떤 의미를 찾으며 살아야 할지 제시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어 “예술은 언제나 악하지 않고 선해. 선을 나눔으로써 예술은 사회의 병을 미학으로 전환시킬 수 있다. 남은 것은 어떻게 나눌까에 대한 것이지”라고 말했다.

허준 씨는 사람들의 인식을 바꿀 수 있는 예술을 하고 싶다고 했다. 허 씨는 앤디워홀의 작품을 보고 느꼈던 충격을 회고했다. “앤디워홀의 전시에서 신문 1면이 반복적으로 나열된 작품을 본 적 있어요. 그 작품을 보고 우리가 얼마나 매일 일어나는 비극적 사고에 무뎌지는지 새삼 깨닫고 굉장한 충격을 받았습니다.” 이기봉 교수는 예술이 사회현실에 개입하는 것을 긍정하는 것도 관점의 일부라고 했다. “관점을 어떻게 구성하는가가 옳은가는 아직 현대미술이 풀지 못한 숙제이니 만큼 옮음을 판단할 수는 없어. 하지만 허준 학생의 경우는 경제학도인 만큼 경제학을 계속 하면서 예술을 사회를 변화시키는 도구로 사용하는 것이 여러모로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기봉 교수는 예술을 가까이 할 수 있는 학회나 모임 등에 참석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라는 현실적 조언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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