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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을 위해서는 삶의 윤리처럼 개인의 음식윤리도 필요
행복을 위해서는 삶의 윤리처럼 개인의 음식윤리도 필요
  • 이준 기자
  • 승인 2016.05.15 06:5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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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으로 안 되는 일 없다.”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 귓전에 늘 붙어 다니는 말이다. 현대사회는 금융자본주의와 신자유주의가 손을 잡은 사회다. 한마디로 돈이 날개를 달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시대인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자유는 자본을 위한 자유이기에, 법이 장애가 된다면, ‘돈은 법도 이긴다’는 금언처럼 제거하면 그만이다. 신자유주의는 인류의 가치와 규범의 영역까지 이런 시장의 관점으로 접근해 인류공동체의 기본체계를 위태롭게 하고 있다.

인류공동체에서 가치는 행위의 방향을 가리키는 신념이고, 규범은 행위에 지침을 제공한다. 가치를 공유하는 공동체는 규범도 공유한다. 규범에는 관습, 법, 윤리가 있으며, 이 셋이 상호 보완하면서 공동체를 유지한다. 인류공동체의 구조를 원뿔로 가정하면, 원뿔의 아랫부분이 관습, 윗부분이 법, 가운데 부분이 윤리에 해당한다. 관습은 비합리적일 때가 있지만 공동체를 잘 유지해준다. 법은 행위의 외적측면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어기면 강제적으로 규제한다. 윤리는 행위의 내적측면을 합리적으로 판단하며, 어기면 타인의 비난과 내면의 가책을 겪는다.

음식을 먹는 행위는 인간의 행위 가운데 하나이므로 규범의 적용을 받는다. 음식의 경우, 음식관습(예: 금기음식)은 여전히 존재하고, 음식관련법(예: 식품위생법)은 다양하고도 강력하다. 그럼에도 오늘날 음식사고가 끊임없이 일어나는 핵심적인 이유는 음식윤리가 미흡하거나 확립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인류공동체마다 음식관습이나 음식관련법이 다른 것도 불리하게 작용한다. 미니컵 젤리 질식사고에 대한 한국, 미국, 일본의 판결이 서로 달랐던 것이 한 사례이다. 어쨌든 음식윤리 없이 음식관습과 음식관련법만으로는 음식 공동체의 원뿔구조를 바로 세울 수 없다.

신자유주의의 시대, 사람이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 될 수 있는 오늘 이 사회. “사람 나고 돈 났다”는 속담은 시대착오에 불과한 말인가? 어떤 사람들은 돈을 위해서 건강과 생명에 해로운 음식도 만들어 팔 수 있다고 생각한다. 얼마나 무섭고도 터무니없는 생각인가? 음식윤리는 다른 사람과 공동체의 건강이나 생명과 직결된다. 이런 음식윤리를 외면하는, 비윤리적인 무한한 자유가 이 시대를 지배하고 있다. 그러나 과연 돈이 많으면 행복한가? “복은 돈 주고도 못 산다”는 오래된 속담은 말도 안 되는 억지인가?

어느 날 돈 많은 아들딸이 “난 아무렇게나 살 거예요. 날 내버려두세요. 대충 살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살든지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어느 부모든 기가 막혀 쓰러질 것이다. 아들딸이 돈이 많아 더 이상 공부가 불필요하다고 여기어 학교도 안 가고 제멋대로 산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삶의 궁극적 목적이 행복이라면, 그런 삶은 지향 없이 표류하는 삶에 불과하기에 결코 행복하지 않을 것이다. 행복을 위해선 삶의 윤리가 필요하다.

우리는 흔히 “먹고 산다”는 표현을 쓴다. 생명과 음식의 관계에서 보면 “먹어야 산다”는 명제는 의심할 필요 없이 성립하는 명제다. 그 역명제 “살려면 먹어야 한다”, 대우명제 “죽으면 안 먹는다”, 이명제 “안 먹으면 죽는다”도 모두 성립한다. 따라서 먹는 것과 사는 것은 대등한 관계다. 즉, 음식은 생명의, 생명은 음식의, 필요충분조건이고, 음식과 생명은 대등한 것이다.

만약 앞의 돈 많은 아들딸이 “난 아무렇게나 먹을 거예요. 날 내버려두세요. 대충 먹을 거란 말이에요. 내가 어떻게 먹든지 간섭하지 마세요”라고 말한다면, 우린 어떻게 할까? “기가 막혀 쓰러질까?” 쓰러진다면 음식과 생명의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는 것이고, 안 쓰러진다면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대등한 관계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은 먹는 것을 가볍게 여긴다는 말도 된다. 아들딸이 매일 햄버거와 피자만 먹고 비만과 당뇨에 시달려 부모보다 덜 건강하다면? 단언컨대 행복하진 않을 것이다. 행복을 위해서는 삶의 윤리처럼 음식윤리도 필요한 것이다.

인류의 명백한 의무(prima facie duties)는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이다. 지속가능한 생존이야말로 인류 삶의 윤리의 제1 원리이자 궁극적 목적이다. 인류의 지속가능한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이 필수적인데, 생명과 음식은 대등한 관계이므로, 지속가능한 생존은 음식윤리의 제1원리이자 궁극적 목적도 된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자연과의 공생, 둘째, 인간과의 공생, 셋째, 음식의 본질적 요소의 충족이 그것이다. 여기에서 음식윤리의 정언명령(핵심원리) 여섯 가지가 탄생한다. 즉, 생명존중(생명존중), 자연보전(환경보전), 속임수나 가짜가 없는 분배의 정의(정의), 먹는 소비자의 최우선 고려(소비자 최우선), 음식의 양, 맛, 영양의 절제와 균형(동적 평형), 음식의 안전성 확보(안전성 최우선)의 여섯 가지이다.

음식윤리는 음식과 관련된 윤리 또는 윤리적 고려라고 정의할 수 있다. 음식윤리는 여섯 가지 정언명령(핵심원리)의 준수 여부로 윤리문제를 간단하고도 명료하게 실질적으로 해결하는 응용윤리다.

 

김석신 가톨릭대 교수·식품영양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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