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비윤리적 기업 경영

집단소송제·소비자기금 등

주권확립 지원은 제자리걸음

 

  가습기살균제 파동으로 기업의 비윤리적 경영과 미흡한 정부의 대처가 세상에 드러났다. 생산 주체인 기업, 관리 주체인 국가는 제조물 결함으로 인한 피해를 막지 못했다. 이에 분노한 국민들은 가습기살균제 제조업체인 옥시 제품에 대해 불매운동을 벌였다.

  그렇지만 이 같은 피해는 언제든 재발할 수 있다. 소비자 시민단체와 전문가들은 근본적으로 소비자가 또다른 소비자피해를 막기 위해선 소비자가 온전히 ‘주권’을 행사하도록 변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은 소비자집단 소송법과 소비자권익증진기금 설치,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 도입을 방안으로 제시했다.

 

▲ 11일,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등의 단체가 소비자 주권 확립을 위한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사진제공 |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법으로 보장된 소비자 ‘주권’
  우리나라는 1986년 소비자보호법을 통해 △안전할 권리 △알 권리 등 소비자의 7대 권리를 보장했고 2001년 보호법 개정시 △안전하고 쾌적한 소비생활 환경에서 소비할 권리를 추가해 8대 권리를 규정해 보장하고 있다.

  소비자 권리는 현재 ‘소비자 주권’으로도 해석된다. 생산자가 어떠한 상품을 어느 정도 생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데 있어 궁극적인 권한은 소비자에게 있다는 것이다. 국가 정책의 기조 역시 소비자 주권을 강화하는 ‘주권론적 소비자정책’으로 수립되고 있다. 2006년에 이르러서는 법명 자체가 ‘소비자보호법’에서 ‘소비자기본법’으로 변경되고, 2010년 공정거래위원회가 책임 있는 소비자로서의 역량강화로 소비자주권실현을 정책 방향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주변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소비자 주권 실현 방안으로는 소비자 불매운동이 있다. 헌법재판소는 2011년 언론소비자주권행동단체의 불매운동의 위법성에 관한 헌법소원에서 “불매운동처럼 소비자가 동일한 목표로 벌이는 운동이면 현행 헌법이 보장하는 소비자보호운동에 포함된다”며 “소비자보호운동을 통해 소비자는 생산자 또는 공급자로부터의 부당한 지배와 횡포를 배제하고 소비자의 이익을 수호하는 소비주체로서 지위를 누릴 수 있게 된다”고 판시했다.

 

  집단소송과 기금 설치 모두 무산
  소비자시민단체들은 온전한 주권 실현을 위해 집단소송법과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을 도입해야 한다고 꾸준히 목소리를 내왔다. 집단소송제도는 공통의 원인으로 피해를 입은 다수의 소비자를 대표하는 개인이나 소비자 단체 등이 소송을 수행해 판결이 확정되면, 그 효력이 소송에 참가하지 않은 다른 피해자에게도 미치는 특수한 민사소송제도다. 해당 제도를 담은 법안은 19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논의되긴 했지만, 최종적으로는 안건으로 상정되지 못해 자동 폐기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집단소송 제도를 전면적으로 도입해야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증권 관련 분야에서는 소비자단체 집단소송 제도가 마련돼 있지만, 사실상 개별 소송으로 작용하고 피해 구제는 포함돼있지 않다는 것이다. 오대성(조선대 법학과) 교수는 “일일이 피해자를 찾아서 동의를 구하지 않아도 한 명이 해당 피해 사건을 대표해 소송을 진행할 수 있고 손해배상 역시 청구하도록 법안이 개정돼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의 18대 대선 공약이기도 했던 소비자권익증진기금의 필요성도 대두되고 있다. ‘소비자 피해를 구제하거나 예방하기 위해 조성하는 특별 기금’을 의미하는 해당 기금 설치에 대해 정부기관인 공정거래위원회 역시 동의하고 적극 추진했지만, 결국 국회에서 관련 법률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기금 설치는 무산됐다. 이는 기금의 사용처를 두고 여야의 개정 방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더불어민주당 김기석 의원은 ‘피해구제’를 사용처로 제시한 반면 새누리당 이운룡 의원은 ‘피해예방’을 위한 개정을 주장하다 합의점을 찾지 못했다.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주장도
  악의적이고 반사회적인 행위를 저지른 기업의 책임을 묻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 역시 나온다. 해당 제도는 실제 손해액의 몇 배를 배상하도록 규정해 기업이 해당 부당 행위를 다시 반복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한 영미법체계와는 다른 우리나라에 이를 무작정 도입하기엔 무리가 있다는 주장도 나오는 상황이다.

  전문가들은 이미 해당 제도가 활용되는 부분이 있기에 개별 입법을 통해 우려되는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현재 하도급법, 기간제법, 신용정보법 등에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도입된 상황인 만큼 이를 점진적으로 확대 시행하며 안정적으로 정착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김차동(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이미 하도급법이나 개인정보보호법에서 일정한 유형의 불법행위에 대해서 발생한 손해의 3배까지 배상책임을 지울 수 있는 요소를 도입했다”며 “유형별 개별 입법을 진행한다면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한편 다른 처벌제도에 비해 시행효과가 큰 제도로 정착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등 6개 단체 역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의 전면적 도입을 위해 입법운동과 국민온라인서명을 전개할 것을 11일에 밝혔다. 이들은 기자회견 당시 “기업 측은 지난 수년간 징벌적손해배상제도가 우리나라의 법체계와 맞지 않는다는 주장을 반복해서 하고 있지만 그 사이 기업의 불법행위는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국민의 생명을 앗아가는 불행한 사건이 재발하는 것을 막고 불법행위로 인해 지불해야 하는 사회적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서도 반드시 징벌적 손해배상액은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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