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일 간의 최저임금 심의가 지난 7월 16일 마무리됐다. 최종 가결된 2017년 최저임금은 올해 대비 440원(7.3%) 인상된 6470원이다.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12일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최저임금 인상 촉구를 위한 전국경실련 합동 기자회견'을 열며 우산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사진제공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결정을 두고 불만은 양 측에서 모두 터져 나왔다. 여러 정당의 공약과 국제 추세에 비춰 최소 두 자릿수 인상을 바랐던 노동계의 기대는 순식간에 사그라들었다. 반면 경영계는 3%대인 경제성장률보다 높은 인상률로 인해 영세기업의 부담이 증가됐다는 반응이다. 역대 최다인 14차례의 전원회의가 열릴 동안 그들이 타협점을 찾지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첨예한 갈등이 지속되는 상황에서, 최저임금의 어제와 오늘을 되짚어봤다.

마지못해 합의된 내년 최저임금
최저임금제는 노동자에게 일정 금액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로, 1988년 처음 시행됐다. 이전 헌법에는 ‘적정임금을 줘야 한다’고 명시했을 뿐, 노동자를 위한 법적 안전망은 사실상 전무했다.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외치며 전태일 열사는 자신의 몸에 불을 붙였고 그의 희생은 70-80년대 노동투쟁의 신호탄이 됐다. 이어 1987년에 일어난 노동자 대투쟁의 영향으로 최저임금제는 시작됐다.

최저임금은 매년 ‘최저임금위원회(이하 최저임금위)’에서 회의를 통해 정하며, 현 방식은 첫 심의가 진행된 1990년부터 유지됐다. 최저임금위는 근로자위원, 사용자위원, 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되고 이 중 과반(14명 이상)이 찬성하면 다음해 최저임금이 결정된다. 매년 3월말 고용노동부 장관이 최저임금 심의를 요청하면, 4월부터 6월까지 최저임금위는 전원회의를 진행한다. 최저임금법 제 8조에 따르면 심의 요청일 부터 90일 이내에 최종안을 의결해야 하지만,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사이의 대립으로 인해 시한을 넘기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올해는 6월 말이었던 시한을 훌쩍 넘겼을 뿐 아니라, 노동부 장관 고시 20일 전에야 간신히 심의가 끝났다. 고시 20일 전을 넘기면 최저임금안은 법적효력을 갖지 못한다. 이처럼 논의가 길게 이어진 이유는 사용자 측의 동결안과, 근로자 측의 1만원 안 사이에서 끝내 타협점이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최저임금위는 “공익위원이 중재하기 전까지 양 측에서 단 한 번도 수정안을 제출하지 않은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밝혔다. 결국 최종 14차 회의에 근로자위원 전원은 불참했고 사용자의원 2명은 도중에 퇴장했다. 타결 이후에는 근로자위원 전원과 공익위원 1명이 의원직을 사퇴하기도 했다.

최종 의결안에 대한 전문가들의 반응은 엇갈린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7월 16일 열린 기자회견에서 “어려운 경제상황으로 가뜩이나 힘든 영세기업의 부담을 한층 더 가중시킬 것”이라며 인상폭에 유감을 표시했다. 반면 일부 전문가는 최저임금 인상이 오히려 경제 상황에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한다. 이광택(국민대 법학부) 교수는 “독일은 지난해 시간당 8.5유로(약 1만1000원)의 최저임금제를 도입한 후 전체 실업률이 지속적으로 감소 중”이라며, “최저임금 인상은 민간 소비를 증가시키고 이는 국내총생산(GDP) 성장으로 이어진다”고 말했다.

논의구조도 위원구성도 폐쇄적
최저임금위가 노사 양측을 만족시키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자, 협상과정과 위원회구조의 문제가 수면위로 떠올랐다. 현 최저임금 협상은 외부인이 참관할 수 없고, 속기록도 작성되지 않아 그 과정이 불투명하다. 이에 참여연대를 비롯한 시민단체들이 회의록을 요구했고, 작년에 최초로 공개됐다. 하지만 개인의 발언이 제외된 요약 형태에 그쳤으며, 방청은 여전히 허용되지 않고 있다.

공익위원이 정부와 경영계의 영향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의견도 있다. 현 공익위원 9명 중 4명은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이고, 4명은 경영학과 교수이다. 최저임금 협상에선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이 9대 9의 팽팽한 균형을 유지하기에 사실상 결정권은 공익위원에게 있다. 실제로 2007년 이래 10번의 심의 중 7번이 공익위원의 제시안으로 결정됐다. 민주노총 송주현 정책국장은 “캐스팅보트 역할을 하는 공익위원을 정부가 기준 공개 없이 선정해 최저임금위의 독립성을 손상시킨다”고 말했다.

위원 구성에 대한 지적은 근로자위원과 사용자위원 측에서도 나온다. 9명의 위원이 다양한 층위를 충분히 대변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관계자는 “근로자위원이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관계자 위주로 이뤄져 있다”며 위원 구성의 다양화를 주장했다. 2년 연속 소상공인 대표로 사용자위원에 위촉된 한국컴퓨터소프트웨어판매업협동조합 김대준 이사장 역시 “사용자 위원 중에서도 소상공인 대표는 둘 뿐”이라며 “사안의 당사자인 소상공인 대표 비중이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최저임금위의 구성 방식을 바꾸거나 새로운 형식의 심의 방법을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비정규노동센터 관계자는 “공익위원을 사회복지학, 노동경제학, 경영학 등 다양한 전공 분야에서 선출하고, 영향력을 분산할 수 있게끔 국회가 위원 임명권을 나눠 가져야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식의 심의 방법으로는 ‘국회의결을 통한 최저임금 결정’이 제기됐다. 실제로 지난 7월 5일에는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의원 주도 하에 ‘최저임금 국회 결정법’ 발의 기자회견이 열렸다.

저소득층 위해서 보완책 필요
전문가들은 노동자의 삶의 질을 일정 수준 이상 보장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 인상에만 기대면 안 된다고 주장한다. 최저임금 미만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 비율, 즉 ‘최저임금 미만율’을 낮추지 않으면 인상이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또한 최저임금제 이외에도 다른 복지정책들을 도입해 총체적인 사회적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최저임금 미만율은 올해 역대 최고인 13.7%를 기록했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3월 기준,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노동자는 총 263만 명에 달한다. 최저임금제가 유명무실해지는 원인은 정부의 방만한 감독과 솜방망이 처벌이다. 고용노동부가 사업장을 감독해 최저임금 미지급을 고발한 건수는 2011년 2077건에서 2015년 919건까지 꾸준히 줄었다. 최저임금법 위반에 대한 제재 역시 미약하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2011년부터 작년까지 적발된 최저임금법 위반 사례 3만 2000여 건 중 사법처리 된 사례는 64건에 그쳤다.

저소득층의 생활안정을 위해서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 복지정책의 확충이 전제돼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따르면 최저임금 수혜자(최저임금의 90~110% 수령 노동자) 중 청년, 고령자, 여성, 비정규직 등 사회적 약자의 비중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들은 낮은 임금 뿐 아니라 고용불안,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로 인한 생활고 등 여러 문제에 노출돼 있다. 한국여성노동자회 관계자는 “여성, 특히 여성 비정규직의 경우 임금 상승 가능성이 없는 경우가 대다수”라며 “여성 외에도 노동구조 속 약자에게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하려면 최저임금 인상은 물론 다른 정책적 대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에 최창규(명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저소득 노동자의 최저수준은 궁극적으로 정부의 다양한 복지정책을 통해 보장해야 한다”며 “근로소득장려세제나 음소득세(negative income tax) 등의 정책들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