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은 평균적으로 12세부터 50세까지 38년간 월경을 한다. 대한민국에 사는 1300만 명의 여성(한국리서치, 2002)들은 매달 5~7일 정도의 출혈 기간을 감내하며 생활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여성의 일상에 관심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다. 월경 중 여성은 마치 월경을 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야 했으며, 월경에 대한 이야기는 여성들에게마저도 은밀한 대화 주제였다.
 
월경에 대한 이야기가 공론화된 것은 지난 5월 이른바 ‘깔창 생리대’ 사건이 주목받으면서부터였다. 이 사건은 저소득층 여성의 생리대 문제를 지적했고, 각 지방자치단체는 저소득층 가정에 무상으로 생리대를 지급하는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이와 같은 정부의 반응에 일각에선 “일시적인 복지 정책에 불과하다”, “문제의 본질인 사회분위기의 해소에 대한 접근은 없다”고 비판했다. 어째서 그녀들은 “생리 때문에 힘들다”고 말할 수 없었을까.
 
▲ 월경하는 것을 주위 사람들에게 들키지 않게 지나가는 것, 여성들에게는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이다. 사진 | 이명오 기자 myeong5@ 그래픽 | 허윤 기자 shine@
월경을 월경이라 말하지 못하는 사회
A(여·21) : 생리 기간 때 2~3시간마다 생리대를 갈아야 하는데, 그때마다 생리대가 보이지 않게 숨긴다. 주위 사람들에게 내가 생리하는 걸 들키고 싶지 않다. 내가 본 여성 모두 그래왔으니까, 굳이 내가 나서서 생리를 말하기도 부끄럽지 않나.
 
B(남·21) : 생리에 대해선 중학교 보건시간에 배운 것이 전부다. 사전적인 의미만을 교육받았던 나로선 아르바이트 중 여자화장실을 치울 때 느꼈던 불쾌감이 생리와 가장 맞닿아 있다. 구체적인 교육이 부재한 보통의 남성들은 이런 개인적인 경험을 통해 생리를 알게 되고, 그래서 그 가치나 의미에 대한 고찰 없이 생리를 불쾌나 혐오로 받아들이는 것 같다.
 
위 인터뷰는 월경에 대한 여성과 남성의 시각차를 보여준다. 여성은 생리에 대한 보편적인 굴레 속에서 이유도 모른 채 월경을 숨기며 20년을 살아왔다. 반면 남성은 개인적으로 경험한 단면을 통해 월경을 의미 짓는다.
 
전문가들은 시각차의 근본적인 원인으로 ‘여성 신체의 변화를 표면화할 수 없는 분위기’를 꼽았다. 월경을 칭하는 ‘생리’나, ‘그날’이라는 단어는 그러한 분위기를 반영하고 있다. 이안소영 여성환경연대 정책국장은 “‘월경’은 단순히 신체 생리적인 현상만을 부각하는 ‘생리’보단 좀 더 구체성을 띠어 이 과정에서 여성이 자신의 몸을 어떻게 봐야 하는지 등에 대한 논의의 장을 마련할 수 있다”며 “그런 의미에서 ‘생리’를 ‘월경’이라고 칭하는 것은 중요한 명명의 정치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분위기를 가속하는 데에는 대중들이 흔히 접하는 생리대 광고도 몫을 더한다. 생리대 광고에 등장하는 여성 모델은 하얗고 순수한 이미지를 표상한다. 깨끗한 이미지를 강조하기 위해 모델에게 밝은 톤의 의상을 입히기도 한다. 노지은 이화여대 아시아여성센터 수석연구원은 ”이런 광고는 월경하는 여성의 모습을 부정하면서 교묘하게 여성을 억압하고 있다“며 “생리대 흡수력을 실험하면서 월경혈 대신 파란 시약을 쓰는 등 생리대 광고에서 나타나는 월경의 모습 역시 대중들에게 잘못된 이미지를 심어줄 수 있다”고 말했다.
 
은밀한 월경 담론이 만든 악순환의 고리
C(여·17) : 생리에 대한 지식은 모두 어머니로부터 보고 들은 것이다. 어디서도 ‘어떤 생리대를 어떤 식으로 사용해야 하는지’에 대한 교육은 받은 적이 없다. 친구들과도 ‘생리통 때문에 힘들다’ 정도 외엔 생리에 대해 깊게 이야기해본 적이 없다.
 
월경에 대한 교육은 공교육에서도 행해지지만, 여전히 개인과 가정의 숙제로 여겨진다. 월경의 실재와 이에 대한 실질적인 정보는 가정이나 또래집단을 통해 접하기 때문이다. 이안소영 정책 국장은 “근대사회에 들어오면서 재생산과 관련된 돌봄 노동, 섹슈얼리티, 월경은 모두 사적 영역으로 분리됐다”고 말했다.
 
이처럼 월경을 개인의 문제로 여기는 현상은 여성의 신체를 재생산의 기능으로 한정 짓는 데에서 비롯된다. 여경 한국여성민우회 활동가는 “사회적으로 배우는 월경은 아이를 낳기 위한 과정 중 하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며 “이는 여성의 몸을 재생산의 도구로만 인식하는 것의 방증”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월경을 임신 준비단계라고만 인식할 경우, 월경은 성적 프레임에 갇히게 된다. 박이은실 여성문화이론연구소 운영위원은 “월경과 성행위를 연결 지으면, 월경혈이 나오는 질이라는 신체 부위를 성적 대상으로 보게 된다”며 “이는 여성의 몸에서 일어나는 일 자체를 지나치게 단순화하는 시각”이라고 말했다.
 
월경을 개인의 일로 치부할 경우 월경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재생산될 수도 있다. 노지은 연구원은 “충분치 않은 지반 위에서 사적 관계나 은밀한 대화를 통해 정보가 유통되는 것은 월경에 대한 잘못된 지식을 낳는다”며 “개인과 가정 내에서만 정보의 순환이 이뤄진다면, 월경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은 세대를 이어가며 같은 상황을 반복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월경은 개인의 일이 아닌 사회의 일
D(여·21) : 패드형 생리대 이외에는 사용해본 적이 없다. 면으로 만든 대안 생리대를 파는 가게를 본 적 있지만, 구매해 본 경험은 없다. 탐폰이나 생리컵도 듣기만 했을 뿐이다. 지난번에 엄마와 탐폰과 생리컵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성 경험도 없는 네가 그걸 어떻게 쓰니, 너무 위험하다”라는 말을 들어 사용할 엄두가 나지 않는다.
 
월경에 대한 공론화의 부재는 여성들이 월경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습득할 기회를 제거한다. 어떤 생리용품을 선택하는지부터 자신의 몸에서 월경이 갖는 의미에 대해 스스로 고찰할 시간을 박탈당한 것이다.
 
위와 같은 인식은 생리용품에 대한 선택권에 제약을 준다. 한국소비자원의 2013 조사에 따르면 전체 생리 인구의 95.8%가 패드형 일회용 생리대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노지은 연구원은 “여성의 질에 직접 삽입하는 탐폰이나 생리컵은 우리나라 정서상 여성의 순결을 파괴한다고 생각돼 최근 2~3년 전까지 찾아보기 힘들었다”며 “월경에 대한 올바른 인식을 전제한 뒤, 기술개발을 통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넓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낮은 수준의 월경 담론은 생리용품을 기호품으로 보는 시각을 만들어 내기도 한다. 이안소영 정책국장은 “생리대 유해물질, 생리대 가격 등이 공론장에 등장하지 못하면서 월경은 개인이 감수해야 할 일 정도로 치환됐다”고 말했다. 이 경우 ‘빈곤 여성들’의 월경 인권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데, 이들은 건강하게 월경할 권리는 물론 다른 자유 의지마저 침해받는다. 생리대가 없어 등교하지 못한 한 학생의 사연은 교육권이 침해된 대표적인 사례다.
 
실제로 2004년 여러 여성단체의 노력으로 생리대의 부가세는 면세됐지만, 필수품이냐 아니냐에 대한 갑론을박이 지속되면서 언제든지 부가세가 부활할 가능성은 존재한다. 여경 활동가는 “월경을 여성 개인의 위생문제라고 생각하면, 이 담론이 사회적, 문화적, 정치적인 문제로 확장될 가능성이 배제된다”며 “생리대는 사치품인 아닌 여성들의 생필품인 만큼 국가에서 가격 독단적인 가격 인상이나 안전성 등에 대한 감시를 지속적으로 해나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