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15 11:29 (토)
인도의 작은 마음들과 마주하다
인도의 작은 마음들과 마주하다
  • 나지원 기자
  • 승인 2017.03.06 00: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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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고속도로변, 젊은 남녀가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사진 | 나지원 기자 joy@

 기자는 NGO 단체 써빙프렌즈인터네셔널(SFI)을 통해 2016년 12월 29일부터 2017년 1월 19일까지 인도 하이데라바드로 단기봉사를 다녀왔다. 기자는 주로 현지에서 HIV/AIDS 환자 가정을 방문해 이야기를 나누는 역할을 맡았다. 신비하고 이국적인 나라 인도. 인도에서 만난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에 그들의 하루를 살아가는 ‘보통의’ 사람들이었다.

▲ 3. RPC 친구들과 즐겁게 노는 마하라(가운데 위) 사진 | 나지원 기자 joy@

“제 이름은 마하라에요.”
  작년 11월 24일 인도로 단기봉사를 떠나기로 한 날 미뤄왔던 아동후원을 결심했다. 낯선 나라 인도로 가는 김에 인도 아이를 후원하고 싶었다. 그렇게 방 책장 위에는 마하라(Mahara, 가명)의 사진이 놓였다. 하이데라바드에 사는 아이라는 걸 알았을 때 인도에 가서 만날 수도 있겠단 막연한 기대감을 가졌다. 만남은 급작스럽게 다가왔다.

  “제 이름은 마하라에요.” 놀아주기로 돼 있던 Rainbow Promise Center의 아이들과 자기소개를 하던 중, 아홉 번째 이름을 들었을까. 정신이 번쩍 들었다. 눈을 돌려 누가 말을 하는지 찾아 두리번거렸다. 얼굴을 보니 사진보다 작지만 이 아이가 틀림없었다. 당장 손을 붙잡고 내 소개를 늘어놓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마하라가 놀랄까 차마 다가가진 못했다. 이것이 마하라와 나의 첫 만남이었다. 

  마하라는 Rainbow Promise Center(RPC) 사업 아래서 보호 받고 있다. RPC는 격한 종교박해로 인해 고향 오디샤(Odisha) 주에서 살 수 없게 된 기독교 배경의 남자아이 24명을 데려와 돌보는 사업이다. 2008년 오디샤주에서 힌두교도가 기독교도를 대상으로 폭동을 일으켜 300개의 교회와 6만여 명의 집을 불태운 사건이 사업의 시작점이 됐다.

  마하라도 6년 전 동생과 함께 오디샤 주에서 이곳 하이데라바드로 옮겨 왔다. 목사인 아버지는 계속되는 박해에 마하라의 교육을 위해 아들을 RPC 센터로 보냈다. 마하라의 꿈은 ‘북한 선교사’다. 종교에 대한 정부의 탄압 때문에 지하에서 숨어 예배해야만 하는 북한 교회에 대한 비디오를 본 적이 있는데, 그 후 북한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단다. “북한에 당신들은 가지 못하니 내가 대신 가줄게요.” 마하라의 눈은 빛났고, 목소리는 작지만, 힘이 있었다.

  마하라는 이야기하는 내내 조금 남은 밥을 몇 번씩 쓸고 쥐었다 피며 인도 음식을 처음 먹는 나의 속도에 맞춰줬다. 후원자와 후원 아동의 관계를 넘어 그의 따뜻함을 느낀 순간, 깨달았다. 인천에서 인도로 오는 긴 시간동안 피곤함에 잠시 잊고 있던, 내가 인도에 와야 했던 단 하나의 이유를. 이 작은 아이는 나에게 사랑을 건넸고, 내가 이곳에 사랑을 나누러 온 사람임을 다시 기억하게 해 주었다.

퐁갈을 맞이하는 하이데라바드
  인도의 1월 14일 즈음부터 4일간은 힌두 신에게 바치는 추수감사절인 ‘퐁갈(pongal)’이다. 간간이 지나가는 염소 떼와 거리를 누비는 노란 릭샤(rickshaw) 그리고 위태위태하게 질주하는 오토바이들 가운데, 한 모녀가 골목을 차지하고 남인도의 전통인 ‘랑골리(Rangoli)’를 그리고 있었다. 모녀는 화려한 색의 모레로 대문 앞터에 연꽃 모양의 랑골리를 피어냈다. 인도사람들은 힌두 명절마다 그리는 이 랑골리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믿는다. 무채색의 밑그림이던 랑골리가 색을 하나둘 입을 때마다 랑골리는 모녀의 집에 행운을 안겨다 주는 듯했다.

▲ 2. 색모레로 꾸민 연꽃무늬 랑골리(rangoli) 사진 | 나지원 기자 joy@

  인도의 명절 퐁갈을 그냥 보낼 순 없었다. 한 가정을 방문해 그들과 퐁갈을 함께 보내기로 했다. 단칸방 수십 개가 모여 있는 노랑 건물 앞에서 차가 멈춰 섰다. 16살 아르만(Arman, 가명)의 가족이 사는 집으로 들어가자 아르만의 어머니는 직접 튀긴 전통 과자와 차이(chai)를 내왔다. 아르만의 어머니는 AIDS 환자다. 일을 많이 하지 못하는 어머니를 대신해 아르만은 학교에 다니며 새벽에 우유배달도 한다. 어머니는 아르만이 3개월 전 자전거를 타다가 크게 넘어졌다며 아들을 걱정했다. “열심히 공부만 하면 좋겠는데…….”

▲ 4. 아르만이 연을 매만지고 있다. 사진 | 나지원 기자 joy@

  한국어에서 힌두어로, 힌두어에서 현지어인 뗄루구(telugu)로 이중통역을 거쳐야 소통이 되는 번거로운 상황에 누구도 선뜻 이야깃거리를 내놓지 못하고 있을 때였다. 정적을 견디지 못한 우리 중 누군가 방바닥 한구석에 놓인 연과 얼레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같이 연을 날리자는 제안에 아르만은 흔쾌히 우리를 옥상으로 안내했다. 옥상에 올라서니 원색의 빨래들이 시원한 바람에 춤을 췄다. 옹기종기 모인 아이들의 명절 놀잇감은 높이 날았다. 아르만은 연날리기에 서툰 우리를 묵묵히 도왔다. 연을 날리던 순간만큼은 이방인임을 잊었다. 그저 명절을 소소히 즐기는 아이가 됐다.

  아르만의 집은 한국 대학가 원룸보다 비좁았지만, 가족이 모두 모인 곳에 함께하는 시간은 역시나 따뜻했다. 떠들썩한 대화가 없어도, 값 비싼 음식이 없어도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는 이곳엔 엷은 행복이 수수히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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