업체에 종속된 '자영업자' 택배노동자
본사의 승인이 없으면 단독으로 계약조차 따낼 수 없다. 

-5년차 택배노동자 김태완 씨
택배노조와 대리기사노조를 비롯한 전국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은 특수고용노동자들에게 노동3권을 부여하라며 8월 28일부터 농성을 이어왔다. 서울고용노동청 앞 농성장에서 5년차 택배노동자 김태완 씨를 만났다.
“택배노동자는 대부분 사업자 등록증이 있어요. 자영업자로 분류되는데도, 회사는 우리의 업무 전반을 관리 감독하고, 우리는 회사에 종속 돼있죠. 회사의 승인을 거친 계약만 거래할 수 있고 부여받은 ‘고유 전산코드(사번)’이 없으면 배송도 집화도 처리할 수 없습니다.”
택배노동자들에겐 배송 한 건당 받는 수수료가 곧 소득이기에, 짧은 시간동안 많이 배송해야 한다. 적은 수수료는 장시간 노동으로 이어진다. “택배노동자들이 생각하는 적정 기대임금이 있는 만큼, 그 소득에 맞는 물량만큼 일을 해요. 흔히들 우리가 돈을 많이 받는다고 하지만 최저임금보다 20만 원정도 높은 수준이에요. 기사들 평균 노동시간이 14시간인 걸 생각해보면, 오히려 낮죠.” 아침 7시에 출근해 오전 분류 작업을 하고, 오후엔 배송을 끝내고 저녁엔 물건을 집하한다. 사업소로 돌아와 상차를 한 뒤 전산업무를 마감하면 하루가 진다. 빨리 끝나면 오후 8시, 늦으면 오후 11시 정도에 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2014년엔 한 달에 만 개의 물량을 소화하던 택배노동자가 과로로 숨졌다. 보통은 한 달에 택배 5000개에서 7000개를 배달한다.
회사들은 택배노동자들에게 차를 소유하라고 요구한다. 차가 없으면 ‘빌려줄 테니 대여료를 수수료에서 제한 채 일하라’고도 한다. 택배회사의 로고를 차에 도색해야만 하고, 차량유지비는 오롯이 기사들의 몫이다. “기사들은 차량 도색을 원하지 않아요. 중고차 값이 100만원이나 떨어지거든요. 도색 비용도 있고, 나중에 도색 지우는 비용도 있어서 선호하지 않죠. 그래도 계약에 포함된 사항이다 보니 해야 해요. 도색비용은 기본적으로 기사 부담이지만, 비용을 일부 지원하거나 전액 지급하는 회사도 생기긴 했어요.”
김태완 씨는 얼마 전 벌어진 택배 회사 블랙리스트 사건의 당사자이기도 하다. 당시 회사가 비용절감을 위해 허브 터미널 운영을 단축시킨 것이 그 시작이었다. “배송지로 물량이 배송되지 않다 보니 일주일간 물량이 폭주했어요. 일요일까지 출근을 해야 했죠. 안정적인 집배송업 무를 위해선 오전에 분류작업이 끝나야 해요. 물량폭주 후로는 오전까지만 분류작업을 했고 나머진 다음날 배송했죠. 회사는 못마땅해 했어요.” 계속 시스템을 유지했더니 회사는 결국 대리점을 폐점시켰다. “갈 데가 없어진 거죠. 보통 대리점이 폐점되면 새로운 사장이 올 때까지 타 대리점에서 일을 하게 해줘요. 그런데 사측에서는 오히려 직영 직원을 써서 우릴 대체했죠.” 4월쯤 복 직 시도를 했지만 회사에서는 김태완 씨를 받아주지 않았다. “이전에 이런 일을 했기 때문에 계약할 수 없다는 거예요. 회사에선 관련자 목록을 소장들에게 돌리면서 알렸어요. 블랙리스트를 만든 거죠.”
김태완 택배노동자는 결국 복직 하지 못해 다른 회사에서 일을 하고 있다. 택배회사 블랙리스트 사건은 현재 소송이 진행 중이다. 김태완 노동자는 불공정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선 택배업 관련법이 제정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택배업이 신산업이다 보니 관련한 법 제도가 없어요. 관련법이 없고 우리는 특수고용노동직이다 보니 사업주들은 이를 악용하죠. 주6일 근무와 낮은 수수료, 회사에 종속되는 관행을 없애기 위해선 관련법을 제정해야 해요. 노동3권을 먼저 보장받는 것이 그 첫 발이죠. 단체교섭을 통해서나마 택배노동자의 권리를 보장받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교사와 영업직원 사이의 학습지교사
학습지 고객 유치를 위한 설명회 비용조차 오롯이 그들의 몫이다.

-23년차 학습지 교사 정난숙 씨
올해로 23년 차, 베테랑 학습지 교사 정난숙 씨의 일과는 오전 10시에 열리는 미팅으로 시작된다. 회사 지점을 방문해 전달사항을 듣기 위해서다. “미팅이라고는 하지만 영업을 위한 교육이 대부분이에요. 말하는 연습을 시키고, 신교재가 나오면 설명을 듣는 등 영업을 더 잘 할 수 있게 만드는 거죠.” 일주일에 두세 번, 한 번에 두 시간은 꼭 지점에서 미팅을 해야 한다. 미팅이 끝나면 점심을 먹고 오후 1시 이후쯤 수업을 나간다. 주로 초등학교 저학년생이나 유치원생을 가르치는 시간이다. 5시 이후에는 학교가 끝난 청소년들 차례다. “요즘엔 11시까지도 수업을 해요. 학원이 보편화되면서 학원이 끝난 후 학습지를 하는 학생들이 많아졌거든요.”
아이가 없어 비는 시간이 곧 쉬는 시간이다. “쉬는 시간은 따로 없고, 하는 수 없이 쉬는 거죠. 그 시간에 아이를 보는 게 좋으니까 어머님들한테 통화를 해요. ‘어머님 좀 일찍 가도 괜찮을까요?’하고 양해를 구하다 보면 어느새 다음 집에 가야 할 시간이 되죠.”
수업이 없는 토요일엔 아파트 단지나 마트 앞에 파라솔을 펼치고 설명회를 연다. 새로운 학습지 회원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학습지 교사는 위탁계약을 맺은 특수고용노동자여서, 추가근무수당과 식사비 지원은 당연히 없다. 장소 대여비 조차 교사들의 몫일 때가 많다. “학습지 교사는 나가는 과목당 수수료를 받기 때문에, 설명회를 연다고 소득이 늘지 않아요. 지점 관리직들이 고객을 한 명이라도 더 유치하라고 하니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인 거죠.”
학습지 회사들이 교사들에게 주는 회원유치 압박은 심한 편이다. 지점들은 고객유치목표를 세우고, 일정 주기마다 ‘마감’을 한다. “‘오늘은 회원 좀 땡겼어요?’ ‘선생님, 이번 주까지 두 명은 해야 돼. 우리 지점 목표가 있어요’라면서 입회 현황이 어떤지 계속 물어보죠. 일마감, 주 마감, 달마감 이렇게 주기별로 마감이 있어요. 매달 15일에는 하프데이라고 마감을 또 하죠. 사실상 매일 쪼이고 있는 거예요.” 수업하고 있는 집에서 학습지를 그만둘 의사를 밝히면 교사의 가슴은 타들어 간다. 그만큼 다시 채우라는 지점의 압박이 눈에 선하다.
실적에 대한 부담감은 기형적인 수익구조로 이어진다. 많은 학습지 교사들이 입회압박에 시달려 거짓으로 보고하기도 한다. 있지도 않은 학생을 새로 가입했다며 회원목록에 넣는 것인데, ‘가라 입회’라고도 불린다. 그만둔 학생을 보고하지 않은 채 그대로 안고 있는 경우도 허다하다. 거짓으로 올린 회원이 내야 하는 돈은 고스란히 교사가 부담하게 된다. “이게 너무나도 악순환인 것을 회사는 알고 있어요. 그런데 모른 척 넘어가요. 자신들의 실적이고 이익이거든요. 회사는 교육 이미지를 강조했고, 우리는 선생님이라고 생각하면서 입사하지만 결국 하는 일은 영업인 거죠. 영업직도 이런 영업직이 없어요. 그런데 또 입회를 안 할 순 없죠, 그게 저희 수수료고, 돈이잖아요….”
“회사는 저희를 개인사업자라고 부르고, 등록증이 있다고는 하지만 본 적도 없고. 본사에서 선생님들을 지시하고 관리도 하고 있는데 왜 노동자가 아니라고 이야기를 하는지 모르겠어요. 뭐든 문제나 비용이 생기면 회사는 빠지고 교사에게 전가하죠. 얼마 전엔 회사에서 인턴을 대거 뽑았어요. 우리 지점에도 20대 젊은 인턴이 왔어요. 새싹이 왔다고 다들 좋아했는데. 두 달이 넘은 오늘 이야기도 없이 안 나왔더라고요. 다른 곳에 면접을 붙었다고요. 아, 이 회사는 이제 새로운 젊은이가 와도 견딜 수 없는 곳이 된 거예요. 악순환을 멈추려면 회사 전체가 멈춰야 하겠죠. 어떨 땐 전부 망해야 뭔가 달라지려나, 싶기도 해요.”

사진 | 구자원 기자 9esource@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