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생 해온 연구를 ‘간단히’ 정리했다는 편지와 함께 700여 쪽에 달하는 식물도감이 본지 편집실에 배달됐다. 본교 강병화(생명대 환경생태공학부) 명예교수가 34년간의 연구를 총정리하는 <약과 먹거리로 쓰이는 식물도감>엔 613종에 달하는 식물의 특성과 용법, 그리고 5842장의 생육 시기별 사진들이 꼼꼼히 담겨 있었다. 여전히 야생식물 연구에 매진하고 있는 강병화 교수를 안암초 앞에 위치한 연구실에서 만났다.

 

  - 식물도감을 편찬하신 계기가 무엇인가요?

  “일반 국민들이 식물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마음이 있었어요. 특히 사람들은 약초나 먹거리로 쓰이는 야생식물에는 관심이 많아요. 34년간 현장과 문헌으로 조사한 결과 생활주변식물 3630종 중 2270종의 식물이 약으로 쓰이고, 그중 1647종은 먹거리로 이용되는 걸 확인했어요. 식물도감에는 그 중 613초종을 선별하여 야생하는 초본류(草本類)를 중심으로 편집했죠.

  초본성 식물인 풀은 환경에 따라 식물체와 잎의 크기, 모양이 달라 식물전문가도 개화기나 성숙기를 제외한 생육기간에는 동정(同定, 생물의 분류학상의 소속이나 명칭을 바르게 정하는 것)하기 어려워요. 제 책에서는 일반인들이 식물을 동정하기 쉽게 생육 시기별로 사진을 수록했어요. 문헌상으론 대부분의 작물과 야생식물이 약초로 쓰인다고 기록돼 있지만, 식물은 독성을 가진 경우가 많고 섭취량과 체질에 따라 부작용이 생길 수 있어요. 따라서 오남용을 피하기 위해선 한의사나 식품전문가들의 의견을 들어 이용해야 합니다.”

 

  - 책의 방대한 분량에 놀랐습니다. 교수님이 얼마나 심혈을 기울였는지 느껴집니다.

  “계산해보니 전국을 돌아다니며 지난 연말까지 34년간, 4732일의 야외조사를 했더라고요. 찍은 사진이 50만 장 정도 돼요. 사실 잡초라는 건 없어요. 모든 식물은 다 쓰임새가 있지만 밀밭에 벼가 나면 잡초고, 보리밭에 밀이 나면 잡초인 거죠. 잡초는 초기에 식별하는 게 중요해서 종자의 사진부터 생육 시기별로 촬영했어요. 이런 방식으로 촬영한 사람은 우리나라에 나밖에 없을 거예요, 허허.

  독일 호헨하임 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던 시절 지도교수께서 ‘식물에게는 일요일이 없다’고 자주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일상이 돼 휴일 없이 조사하며 살았어요. 그동안 3000여 초종의 생육 시기별 생태 사진을 찍고, 1700 초종에 속하는 약 7000점의 종자를 수집했더군요.

  현장조사 하는 동안 대부분을 아내와 함께 다녔어요. 현장조사를 다녀온 날은 달력에 기록하고 연말이 되면 컴퓨터로 문서작업을 해 연구일지 데이터를 구축했어요. 식물의 이름이 지역마다 다른 경우가 많아 지역별 이름을 정리하고, 영어명, 일본어명 등 외국 이름도 딸이 도와줘서 정리할 수 있었어요. 온 가족이 연구에 참여한 셈이죠.”

 

  - 오랜 시간 동안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것 같습니다.

  “재배식물인 작물과는 달리, 야생의 초본식물은 발생하는 장소와 시기에 따라 개화기와 성숙기가 달라요. 같은 개체라도 부위에 따라 또 천차만별이라 균일한 종자를 얻기가 어렵지요. 야생 상태에서는 주위의 다른 식물들과 햇빛과 영양분을 두고 경합하기에 꽃이 피더라도 종자가 성숙하지 않는 경우가 많고요. 한 번 갔던 장소를 기록해두었다가 몇 번씩 다시 찾아가서 종자를 받아오기도 했죠. 지금 생각해보면 야생식물에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일이었어요.

  야생종자 채종을 위한 연구비 신청도 몹시 불합리하죠. 1년 단위로 정해진 초종의 종자를 수천 개씩 요구하는 경우가 많은데, 적은 양의 종자를 받아 재배해서 증식하려면 수년이 걸려요. 현실적으로 부당한 부분이 많아서 연구비도 없이 사비로 종자를 수집했어요.”

 

  - 야생식물 연구에 몰두하기까지 교수님의 삶의 과정이 궁금합니다.

  “저는 1947년 농촌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어요. 당시 나라 사정이 어려워 배고픔에 허덕이는 사람들이 많았었죠. 고등학교 때 우연히 남의 무밭에서 몰래 무를 파먹다가 쫓기던 어린아이를 보게 됐는데, 배고픔을 호소하는 듯 하던 그 눈빛을 잊지 못해요. ‘먹으려고 사느냐, 살려고 먹느냐’는 친구의 물음에도 쉽사리 대답하지 못했어요.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결하는 방법이 없을까 밤새워 고민한 끝에 1965년 농학과에 진학해 작물 재배를 공부하게 됐죠.

  학부 졸업 후엔 농업기술 분야 공무원이 되려고 했지만 기술시험에 낙방해서 대학원에 진학하게 됐어요. 대학원에선 경제 성장으로 인한 농촌의 노동력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제초제와 생장 조정제(식물호르몬의 성질을 가진 유기합성물질)를 연구하다가, 대학원 졸업 이후엔 수원 농촌진흥청 연구요원으로 채용돼 잡초방제에 관한 연구를 계속했어요. 이후 독일로 건너가 박사학위를 취득한 후 1984년부터 본교 농학과에서 작물재배학과 잡초학을 강의했죠. 사실 당시 우리나라 작물재배학과 잡초방제학에선 잡초의 종류와 특성을 파악하지 못한 강의가 많았어요. 천연색으로 된 식물도감도 없었고 관련 전문가들은 외국 문헌으로 공부해야 했죠. 우리 작물과 잡초에 대한 강의와 연구가 절실했기에 카메라, 자, 저울 등을 들고 현장조사에 나섰던 겁니다.”

 

  - 일생을 바쳐 모은 종자를 본교에 기증하셨습니다.

  “나는 고려대에 도움만 받고 살았어요. 정년퇴임하고 연구실이 없었는데 당시 김병철 총장이 본인의 연구실을 비워주며 사용하라고 배려해줘서 총장의 퇴임 전까지 3년 동안 사용했던 적도 있어요. 연구에 몰두하며 교수 생활을 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준 것도 고려대학교입니다.

  그런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고 퇴임 후 그동안 수집한 7000점의 종자를 본교 야생자원식물종자은행에 기증했어요. 1700종 중 50%는 식생이 변해서 지금 구하기가 어렵습니다. 채종한 종자는 금액으로 환산하면 44~177억 원의 가치가 있다고 한 매체에서 계산을 해줬죠. 현재는 제자가 잘 관리하고 있어 후학들이 잘 계승 발전시켜 주리라 믿어요.”

 

  - 자연과 환경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본교생들에게 말씀을 전하신다면

  “식물 사진을 찍기 위해 카메라를 들면 식물 주위에 있는 쓰레기가 찍히는 경우가 많았어요. 주변 환경도 온통 쓰레기가 차지하고 있었죠. 쓰레기와 각종 폐수로 국토가 오염되고 있어 생태계도 위협받는 실정이에요. 환경오염으로 인해 초본식물 중에서 멸종하는 종이 늘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자생식물의 종류도 변하고 있어요. 아직 우리나라는 유전자원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환경에 대한 교육도 부족합니다. 모든 본교 구성원들이 환경과 미래를 생각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합니다.”

 

글│엄지현 기자 thumb@

사진│김도희 기자 doyom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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