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산했던 3월 29일 오후, 학생들이 각자의 공부에 집중하고 있다. 책장을 가득 채운 책과 곳곳에 붙은 포스터가 눈에 띄는 이곳은 생활도서관이다.

  여러 동아리방으로 왁자지껄한 본교 학생회관. 정문 계단을 올라 2층 복도 우측으로 쭉 걸어가면 끝자락에 작은 문 하나가 보인다. 1990년 개관해 학생회관으로 옮겨온 이래 같은 자리를 지켜오고 있는 ‘생활도서관’이다.

  문을 열고 걸어 들어가면 오래된 책에 배인 퀴퀴한 먼지 냄새가 풍겨 나온다. 민주화 운동이 활발하던 시절, 선배들이 숨죽여 읽고 주고받은 손때 묻은 책들이 곳곳에서 반긴다. 빠르게 변화하는 바깥세상과는 자못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당대의 열독서’들엔 시대에 대한 고민이 짙게 남아있다. 투박하고 서툴지만, 또 뜨거웠던 본교 학생사회의 기록들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 생활도서관을 파헤쳐봤다.

 

‘금지된 책 보관소’로 시작한 생활도서관

  본교 생활도서관은 1990년 5월 17일 국내 대학 중 최초로 개관했다. 이후 1996년 세종캠퍼스에도 생활도서관이 설립됐고, 2002년 자연계 캠퍼스에 애기능생활도서관이 정식 개관했다. 생활도서관은 자그마치 30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학생사회의 한 자리를 당당히 차지해온 ‘기록보관소’다.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위협받던 80년대에는 금서로 지정된 책들이 많았고, 이는 중앙도서관에선 절대 찾아볼 수 없었다. 생활도서관은 ‘학문 사상의 자유 쟁취와 진보적 사상의 대중화’를 목표로 학생들이 몰래 가지고 있거나 학교에 숨겨 놓은 금서들을 모아서 서관 지하 1층에 개관했다. 도서를 보관할 장소가 부족해 현재 위치로 이전한 후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본교 이외에도 서울대, 서강대, 한국외대를 비롯한 여러 대학이 비슷한 성격의 자치도서관을 운영하고 있다.

 

학생사회 자료수집부터 대자보 아카이빙까지

  생활도서관은 현재 약 2만 권의 도서를 소장하고 있다. 그 중에는 열람실에서 자유롭게 볼 수 있는 책들도 있고, 운영위원과 동행해 보관서고에 가야만 열람할 수 있는 책들도 있다. 분기별로 60권에서 70권 정도의 도서를 구입하며, 운영위원회의에서 대중성과 시의성을 고려해 심사한다.

  생활도서관은 도서들을 소장하고 있을 뿐 아니라 학생사회에서 발생하는 여러 자료를 수집한다. 생활도서관은 총학생회칙에 기록물보관소로 지정돼 있어 총학생회 소속 학생 단체들로부터 자료를 이관 받을 권리가 있다. 학생회 선거, 새내기새로배움터 등 대규모의 자료들이 오갈 때는 학생 단체 대표들에게 일괄적으로 자료를 확보하고, 그렇지 않을 경우 운영위원들이 직접 수집하는 형태로 운영 중이다. 이러한 자료들은 학생사회에서 유용하게 쓰인다. 이승준 전 서울총학생회장은 “선거를 준비하면서 과거 정책자료집이나 리플렛 등을 열람한 적이 있다”며 “선거 자료를 열람하면서 준비에 도움을 받았다”고 밝혔다.

  페이스북 ‘정대후문 게시판’ 페이지 운영도 생활도서관의 주 업무 중 하나다. 2013년 12월 10일 ‘안녕들하십니까?’ 대자보를 시작으로 5년째 꾸준히 대자보 아카이빙을 이어오고 있다. 생활도서관 운영위원 전두영(문과대 심리13) 씨는 “운영위원을 했던 분이 개인적으로 대자보 페이지 운영을 하다가 생활도서관이 그 역할을 물려받게 됐다”고 말했다. 운영위원들이 주기적으로 새로운 대자보가 붙었는지 확인하고, 사진을 찍어 업로드 하는 방식으로 아카이빙이 이뤄진다.

  공간 대관도 생활도서관의 주요 업무다. 학생 단체뿐만 아니라 이외의 여러 단체도 생활도서관을 자주 대관하고 있다. 민주노총 고려대학교분회 서재순 부분회장은 “미화노조 회의 장소가 마땅치 않아 회의 때마다 생활도서관을 대관하고 있다”고 전했다. ‘누구에게나 열려있는’ 개방적인 분위기 덕분에 생활도서관은 자유롭게 의견을 나누는 담론의 장이 됐다. 작년 12월에는 여학생위원회, 중앙성소수자동아리 사람과사람 등과 함께 학내 페미니즘 간담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염동규(국어국문학과 10학번) 교우는 “졸업하고 나서는 학생증이 없어도 출입할 수 있는 생활도서관을 애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관장 없는 특별한 도서관, “더 많은 관심 있었으면”

  십진분류법을 쓰는 일반 도서관과 달리 생활도서관은 카테고리별로 소장 도서를 분류하고 있다. 철학, 역사, 여성·퀴어를 비롯해 크게 24개의 카테고리로 나뉘어 있다. 맑스/레닌주의, 사회구성체론, 현실사회주의, 운동론 등의 분류표는 ‘자유로운 공론장’으로서 생활도서관의 가치를 보여준다. 생활도서관은 <김일성평전>, <북한사회주의구성론>과 같은 책들도 소장하고 있다. 전두영 씨는 “아무도 읽지 않는 책들도 많지만, 이런 분류의 책들을 보관하고 있는 자체가 의미 있다고 생각한다”며 “과거의 정신을 유지하겠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관장이 없는 평의원 체제로 운영되고 있는 점도 생활도서관의 특징이다. 관장이 있을 때도 있지만, 소통 창구의 역할만 담당할 뿐 다른 운영위원들과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10명의 운영위원은 서로를 별칭으로 부른다. 운영위원 정요한(문과대 한국사17) 씨는 “90년대에는 실명을 언급하면 안 됐기 때문에 서로를 별칭으로 불렀지만, 지금은 상하 관계없이 동등한 분위기로 도서관 운영을 해 나가자는 취지에서 별칭을 부르고 있다”고 밝혔다.

  생활도서관이 개관한 이래 등록한 회원 수는 만 명을 넘지만, 하루 평균 방문자는 20명 정도에 그친다. 대출, 반납되는 도서는 하루에 10권을 넘지 않는 경우가 많다. 운영위원 김진혁(문과대 사회13) 씨는 “생활도서관이 단순히 대관 공간, 동아리방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다”며 저조한 사용률에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에 생활도서관은 홍보를 위한 여러 연대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3월에는 민주동우회, 인문학 서점 ‘지식을 담다’와 함께 선착순 100명의 신청자에게 책 <소년이 온다>를 무료로 나눠주는 행사를 열기도 했다. 전두영 씨는 “많은 사람들이 생도에 방문하면 좋겠다”며 “꼭 책을 읽으러 오지 않아도 자유롭게 얘기하는 공간이 되기를 바란다”는 소망을 전했다.

 

 

 

글 | 박연진 기자 luminous@

사진 | 이희영 기자 heezer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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