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그만하고 오빠 시켜, 넌 어차피 시집가서 일 많이 할거잖아.” 일가친척이 모두 모인 자리에서 누군가의 우스갯소리가 들려왔다. 이 말은 남녀차별의 뿌리가 뽑히는가 싶었던 기대를 완전히 부숴버렸다. 기억을 더듬어보면 어렸을 적부터 명절마다 거실에 펼쳐진 식탁의 한쪽에선 남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여자들은 요리를 하고 상을 차렸다.

  내 어머니는 줄곧 “결혼은 서른 살이 되면 하라”고 말한다. 하고 싶은 것 원 없이 하고 시집가라면서. 그보다 더 일찍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면 경력이 단절될 뿐 아니라, 나의 생활이 없어질 거라는 이유다. 결혼과 출산으로 당신이 포기해야 했던 수많은 기회들이 얼마나 큰 아픔으로 남았을지, 가늠조차 어려웠다. 그 회한의 시간이 딸에게만큼은 반복되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일 게다.

  한국은행은 조사통계월보 7월호에서 ‘우리나라 여성 경제활동 참가율은 OECD 최저 수준’이라고 밝혔다. 연령별 경제활동 참가율 통계를 보면 여성의 3, 40대 경제활동 참가율이 같은 연령대 남성들보다 한참 저조하다. 하지만 그보다 놀라운 건 2000년부터 2017년까지 경제활동 참가율을 성별과 혼인상태로 나누어 살펴봤을 때, 20대부터 60대까지의 미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은 일정하게 남성과 균일한 반면, 기혼 여성의 경제활동 참가율과 전 연령대의 남성 경제활동 참가율의 격차는 어마어마하다는 것이다. 달라진 것은 결혼을 했다는 것뿐이다.

  장수연 MBC 라디오 PD는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인터뷰 중 “임신 후 좋아하던 술·담배를 참는 게 너무 힘들었다”라고 말했다가 네티즌들로부터 “정신이 있느냐?”는 등의 비난을 받았다. 한 인간으로서 가질 수 있는 욕망이 ‘엄마’라는 이유로 미친 소리가 돼버렸다. 엄마로 살아가는 것은 어쩌면 ‘나’를 잃어버리는 일일지도 모른다.

  드라마 <아버지가 이상해>에서 변혜영(이유리)은 “난 누구의 아내, 며느리, 엄마로 살아가기보다는 그냥 나 자신을 위해서 살고 싶다”고 외쳤다. 결혼하지 않겠다거나, 아이를 낳지 않겠다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그렇게 살아가야 할 필요는 없다는 것이다. 누군가의 아내, 며느리, 엄마이기보단 ‘나’이고 싶다.

 

김예진 기자 sier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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