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병 예방, 제도 보완이 최우선입니다”

학자와의 티타임 ⑲송재철(한양대 의학과) 교수 정한솔 기자l승인2018.09.04l수정2018.09.04 2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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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재철 교수는 "직업병 관리는 정부와 기업이 함게 해야 할 몫"이라며 직업환경의학의 공공성을 강조했다.

 

  “직업병 예방, 제도 보완이 최우선입니다”

  우리나라 노동자의 작년 평균 근로시간은 2024시간으로, OECD 국가 중 3위를 차지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는 장시간 근로로 피로가 누적되면 뇌심혈관계 질환, 근골격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대한직업환경의학회장을 맡고 있는 송재철(한양대 의학과) 교수는 “직업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제도 개선이 시급”하다며 “주 52시간 근무제도 제도적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 직업환경의학이란 어떤 학문인가요

  “직업환경의학이 무엇인지 이해하려면 우선 의학을 범주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의학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어요. 병원에서 환자를 치료하는 임상의학, 순수한 연구를 통해 질병의 원인과 치료법을 밝히는 기초의학, 사회현상이나 제도를 건강과 연관 지어 연구하는 사회의학이 있죠. 또 사회의학 중에는 질병의 예방법을 연구하는 예방의학이라는 분야가 있어요. 직업환경의학은 예방의학의 한 분야인데 ‘직업의학’과 ‘환경의학’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우선 직업의학은 환자의 질병이 직업으로 인해 발생한 것인지 판단하는 학문입니다. 삼성전자 백혈병 사태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직업환경의학자들은 백혈병이 환자의 선천적인 요인에 의한 것인지, 직장에서 일하다 걸린 병인지 혹은 회사와 관계없는 후천적 요인에 의한 것인지 연구합니다. 환경의학도 비슷합니다. 환경의학은 우리의 일상생활 속 유해인자를 밝히는 학문입니다. 예를 들면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나 생리대 발암물질 검출 사건이 있어요. 어떤 제품이나 생활환경으로 인해 질병이 발생하는 경우에 둘 사이의 인과관계를 평가하는 것이 우리의 역할입니다.”

 

  - 시대에 따라 발병하는 직업병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직업환경의학이 처음 연구를 시작한 병은 진폐증, 소음성 난청입니다. 1980년대 산업화 시기 공장이 많이 들어서면서 유행한 질병이죠. 유기용제나 중금속 중독도 이 시대에 주로 발병했습니다. 1990년대 전후에는 작업장에서 유해요인은 거의 발견되지 않지만 몸을 사용하는 직업이 많아집니다. 건설 노동자도 생겨나고요. 이때는 근골격계 질환이 유행합니다. 현재까지도 우리나라 산재 중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어요. 예방과 치료만 잘 해도 빨리 회복되는 질병이라 학회에서 주목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노동시간이 길어짐에 따라 피로 누적으로 인한 뇌심혈관계 질환도 유행해요.

  2000년대 전후로는 직무 스트레스가 이슈로 떠올랐습니다. 서비스업이 급증하면서 고객을 응대하는 경우가 늘어났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노동자들은 정신 질환은 물론이고 신체 질환까지 얻습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뇌심혈관계 질환에 걸릴 확률이 높아지거든요. 심리적으로 긴장상태가 지속되니 신체도 여기에 반응해 근골격계 질환이 발병할 수도 있죠.”

 

  - 이러한 직업병을 예방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가요

  “의사들이 할 수 있는 건 질병이 발생한 뒤에 진단, 치료하고 원인을 밝히는 게 전부입니다. 법과 사회 안전망이 뒷받침돼야 궁극적으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우선 직업의학의 공공성이 강화돼야합니다. 직업병 관리를 개별 회사의 몫으로 돌리기보다 모두가 함께 책임져야 해요. 노동자는 사회적으로 아주 중요한 위치에 있고, 이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사회가 불안해집니다. 건강검진부터 치료, 보상에 이르기까지 모든 단계는 공공의 영역이어야죠. 정부의 제도 마련이 그 중 첫 번째로 필요합니다. 예를 들면 ‘산업보건 관리자 제도’가 있어요. 일정규모 이상의 공장이나 회사에서는 의사나 간호사 등 전담 의료인이 상주해야한다는 법입니다. 그러나 IMF 당시 ‘기업규제완화 특별조치법(특조법)’이 통과되면서 기업 전담 의료인이 사라졌습니다. 결국 아무도 직업병을 책임 있게 관리하지 않게 됐어요. 산업보건 관리자 제도와 같은 법을 마련해 공공성을 확보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입니다.

 그밖에도 사내에서 건강증진프로그램을 활발히 운영하면 좋겠죠. 금연 및 비만 관리 프로그램이나 스트레칭 교실만 제대로 운영해도 직업성 질환은 충분히 예방할 수 있어요. 심리 상담사를 배치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입니다. 외국의 경우, 경찰을 비롯해 직무스트레스가 많은 직업군을 위해 심리 상담을 지원합니다. 개인정보를 철저히 보호하는 가운데 심리 상담을 진행해 사람들이 스트레스를 조금이나마 해소할 수 있습니다.”

 

  - 2011년 가습기 살균제 사건이 이슈가 된 이후 소비자들의 불안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시 사건 이후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늘어나자 기업들이 제품의 성분을 공개했습니다. 소비자의 알 권리라는 측면에서 보면 필수적인 거죠. 일각에서는 ‘어차피 봐도 모를 텐데 무슨 소용이냐’고 반박합니다. 저는 모든 사람이 제품의 성분과 그 효과를 알 필요는 없다고 생각해요. 한 사람만이라도 잘못된 성분을 발견한다면 결국 모두가 알게 될 거고, 이로 인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으니까요. 중요한 건 리스크 커뮤니케이션, 즉 ‘위험소통’입니다. 현재 기업들이 제품의 성분을 공개하고는 있지만 소비자와의 위험소통은 전혀 안 되고 있습니다. 읽기 어려운 위치에 정보를 표시하거나 보험약관처럼 작게 써놓은 경우가 대다수입니다. 원어로 성분을 표기한 기업도 있죠. 그 결과 제품성분공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합니다.”

 

  - 최근에 위험소통이 부족했던 사건이 있다면 설명해주세요

  “위험소통이란 위험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전문가와 일반인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라돈침대 사태는 위험소통이 제대로 안 된 사례입니다. 정부는 발암물질이 기준치 이상 검출된 라돈침대를 수거해 충남 당진시 고철야적장에 폐기했습니다. 이때 주민들과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소통이 잘못됐어요. 실제로 라돈은 아주 가벼워서 금세 위로 올라가버립니다. 1미터만 떨어져있어도 라돈에 노출될 일은 거의 없어요. 그런데 전문가들이 이런 연구결과를 충분히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주민들이 불안해하는 거죠. 위험소통만 잘 됐다면 정부와 주민들 간 갈등은 해결됐을 거예요.”

 

  -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기 위해서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요

  “똑똑한 소비자, 양심적 생산자, 현명한 규제자가 필요합니다. 소비자들은 본인들이 가진 권리를 인지해야합니다. 그래야만 제품을 사용하면서 문제가 생겼을 때 적절한 대책을 요구할 수 있습니다. 양심적인 생산자도 중요하지만 일반적으로 생산자들은 이윤 추구가 목적입니다. 따라서 환경성 질환을 예방하는 것을 생산자들의 양심에만 맡겨서는 안돼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처럼 강력한 규제를 적용해야합니다. 소비자와 생산자, 규제자가 모두 제 역할을 해야만 환경에 의한 질병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 교수님께서 만들고 싶은 의료 제도가 있나요

  “저는 의료감시체계를 구축하고 싶습니다. 우리나라에서 발생하는 질병 데이터를 감시센터에서 수집하고, 이렇게 모인 정보를 다시 질병 관리에 활용하는 체계입니다. 정년퇴임이 7년 남았는데 그 전까지 시스템을 만들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필요성을 알리고 싶어요. 퇴임 후에는 상담센터를 설립하고자 합니다. 산재를 입는 계층은 주로 생활이 어려운 사람이 많습니다. 그들은 산재 인정기준이나 보상 제도를 잘 몰라 소외되곤 하죠. 기회가 된다면 그런 분들이 의학이나 법, 제도 방면으로 상담할 수 있는 창구를 만들고 싶어요.

 

  -직업환경의학을 전공하는 후배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무엇인가요

  후배들이 직업환경의학을 더 발전시켰으면 하는 바람이 있죠. 지금 40대 초반인 후배들이 이 분야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다들 어디로 가야하는지, 나중에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을 수 있을지 고민합니다. 편하게 일하고 적당히 수입도 보장되는 일을 원하기도 하죠. 그런 갈등이나 유혹에 빠지지 않았으면 해요. 우리는 공인이고 공공의료분야에서 일한다는 의식을 가지기 바랍니다. 또 평범한 의사의 세상은 아니니 인내심을 가지고 다양한 사람들과 어울리며 일했으면 좋겠어요.”

 

  * 송재철(한양대 의학과) 교수는 제15대 대한직업환경의학회 회장을 역임하고 있다. 현재 한양대 직업환경의학교실 주임교수 및 한양대학교병원 직업환경의학과 과장으로 재직 중이다. 대외적으로 고용노동부 산재보상보험 재심사위원, 역학조사 평가위원, 환경분쟁조정위원회 자문위원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글│정한솔 기자 delta@

사진│조은비 기자 juliett@

 

 

 

정한솔 기자  delta@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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