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급을 받을 수 있는 확실한 방법이 있어. 먼저 1등 할 것 같은 친구를 기준으로 삼아. 그리고 그 친구보다 조금 더 열심히 하면 돼.”

  10년 전쯤, 과외하는 학생들에게 종종 이렇게 말했다. 논리는 간단했다. 1등급을 받으려면 상위 n% 안에 들어야 한다. 1등 할 것으로 예상했던 친구는 (큰 변수가 없는 한) 높은 확률로 n% 안에 들 것이다. 그러므로 그 친구보다 열심히 하면 1등급 받을 가능성도 높아진다.

  학생들은 대단한 비법을 전수받은 듯 눈을 반짝였다. 중학생들은 내신 등급을, 고등학생들은 수능 등급을 고민할 때였다. 아이들은 마음에 찍어둔 친구보다 늦게 엉덩이 떼기, 그 친구의 수행평가 점수를 기록해가며 자신과 비교하기 등 갖은 아이디어를 떠올려냈다. 심지어 이 조언은 초등학생들에게도 유효했다. 이런 마음가짐으로 공부했다는 5학년짜리 학생은 “학원 시험을 잘 봐서 선행학습반에 뽑혔다”라며 어깨를 으쓱했다.

  솔직히 고백하건대 이건 학창시절 내가 공부했던 방식이기도 했다. 내신과 수행평가, 모의고사, 수능까지 중·고등학교 내내 등급과 백분위로 평가받았다. 무작정 열심히 하는 것만으론 불안했다. 급기야는 내가 이기든 지든, 비교 대상이 있어야 안심하는 지경까지 됐다. 부끄럽지만 취업에 성공한 이십대 중반까지도 나는 이 방식이 ‘옳진 않아도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고 믿었다.

  목동 학원 전단지에나 나올법한 싸구려 이야기를 장황하게 늘어놓은 건, 삼십대가 된 지금 이 방법은 틀렸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이 글을 읽을 많은 사람들이 성장하면서 나와 비슷한 생각을 해왔을지도 모른다는 걱정 때문이다.

  밥벌이를 하고 가정을 꾸리면서, 경쟁과 평가에서 (완전히는 아니지만) 조금 자유로워진 뒤에야 수많은 질문과 맞닥뜨렸다. ‘라이벌이 컨디션 난조로 시험을 못 봐서 이겼다면 만족할 것인가?’ ‘1등이 된 뒤엔 더 발전할 필요가 없는가?’ ‘스스로 대견하다고 느꼈던 적이 언제인가?’

  그리고 이제 다시금 생각한다. 상대평가에서 이기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만점’을 받는 것이다. 시험 난이도가 높든 낮든, 다른 사람들이 잘 봤든 못 봤든 상관없다. 공동 1등이 여러 명일지언정 낮은 등급을 받을 리는 없기 때문이다. 정량적 평가가 아니라 정성적 평가여도 괜찮다. 대비하는 마음가짐을 뜻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만점을 받기 위해 넘어야 할 유일한 상대는 본인뿐이다.

  너무 뻔해서 쉽게 외면하지만 세월이 지나 무릎을 탁 치게 하는 말들이 있다. ‘나 자신과의 싸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림이 되자’처럼. 지금 확 와닿지 않는다 하더라도 한구석에 기억해두면 좋겠다. 언젠가 새로운 방식으로 삶에 임하게 될지 모르니.

<김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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