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동의 한가운데 있던 그 시절을 떠올리며

고대신문 동인 인터뷰- 통일연구원 성기영(사회학과 87학번) 연구위원 박진웅 기자l승인2018.11.05l수정2018.11.05 1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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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기영(사회학과 87학번) 동인이 대학시절을 회상하며 1980년대 시대상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기사는 제가 고대신문 정기자에 재직하던 시절 작성했던 기사네요. 우리의 목소리를 보다 널리 알리기 위해선 학생운동이 대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선 당시 부상하던 각종 사회운동과 연대해야한다는 주제의식으로 작성했던 기사죠.” 1990년 1학기 고대신문 편집국장 성기영(사회학과 87학번) 동인은 뜨거웠던 그 시절을 회상하며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다. “치열했던 학생운동을 시작으로, 그때껏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소외됐던 계층들도 점차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진실을 담기 위해 밤낮으로 노력했던 학보사의 일원으로서 지금은 역사책 한 부분에 남아있는 그 현장 속을 함께 했다는 사실이 자랑스럽습니다.”

 

  민주화의 열망으로 불탔던 80년대

  “80년대 대학사회는 격동의 중심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한국사회를 지배하던 군사독재를 타도하고 민주화를 뿌리내리기 위한 노력들의 시발점이 대학사회였으니까요.” 특히 성기영 동인이 입학한 1987년은 어느 때보다 학생운동이 활발했다. 그 해 1월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계기로 학생사회를 중심으로 민주화 요구가 거세졌다. “대학에 합격한 후, 2월 예비소집일에 고려대를 처음 방문했어요. 학교에 들어서자마자 민주광장에 크게 놓인 박종철 열사의 영정사진 앞에 수많은 향들이 피워져 있는 광경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날의 생생한 기억은 순진한 신입생이던 성기영 동인이 처음으로 ‘대학생의 시대적 사명’을 자각하게 된 계기가 됐다.

  국민들의 거센 대통령 직선제 요구에도 불구하고, 전두환 정권은 ‘4·13 호헌조치’를 발표하며 개헌논의를 일절 중단했다. 이 사건이 도화선이 돼, 전국의 대학생들이 ‘호헌철폐 독재타도’라는 구호를 외치며 대대적인 시위에 돌입했다. 치열했던 학생운동의 구심점에는 고려대가 있었다. “5월 23일, 수백 명의 고대생들이 일제히 종로2가로 나가 도로를 점거하고 가두시위를 벌였습니다. 공권력에 막혀 학내 위주에서만 행해졌던 이전 시위들에 비해, 이 같은 기습적이고 단독적인 시위는 매우 획기적이고 대담한 시도였죠.” 본교생들의 가두시위는 당시 학생운동에 커다란 자극제가 돼, 전국적인 민주화운동인 6·10항쟁의 중요한 발판이 됐다.

  격동기의 한복판에 서 있던 대학생들의 삶도 지금과 확연히 달랐다. “학업과 취업은 늘 뒷전이었어요. 개인적 출세를 위해 노력하는 것보단, 자주·민주·통일이라는 공동체적 가치를 위해 투쟁하는 것이 훨씬 의미 있고 시급한 일이라 다들 생각했었죠.” 수업에 나가지 않고 시위에만 전념하겠다는, 이른바 ‘수업거부’ 운동도 행해졌다. “감사하게도 교수님들이 우리의 행동을 많이 이해해주셨습니다. 교수님들도 민주주의라는 시대적 사명에 공감하셨고, 실제로 6·10항쟁 때는 본교 교수님들이 대학들 가운데 최초로 시위에 직접 참여하셨어요. 우리학교의 큰 자부심이죠.”

 

  학보사의 일원으로 맞이한 격동의 시대

  입학과 동시에 격동의 한가운데를 몸소 누빈 성기영 동인은 평소 특기였던 글쓰기를 통해 학생운동에 기여하고자 고대신문 입사를 선택했다. “입학하자마자 5월 고대신문 수습기자 모집에 지원했어요. 수백 명이 대강당에 빽빽하게 모여앉아, 마치 과거시험을 보듯 입사시험을 치렀던 기억이 납니다.”

  재수 끝에 11월 모집에 합격한 성기영 동인은 수습과정을 마친 후 정기자 특집부로 발령받았다. 특집부는 학생운동의 여파로 노동과 사회분야에서도 빗발치던 집단행동의 움직임을 취재하기 위한 부서였다. “특집부 기자로 활동하며, 우리 사회에서 소외받고 억눌려왔던 사람들을 직접 만나 그들의 삶을 들을 수 있었어요. 시대에 맞는 문제의식을 기를 수 있는 좋은 경험이었던 동시에, 향후 학생운동의 새로운 방향성을 고민하는 계기가 됐어요.” 그 숙고 끝에 탄생한 결과물이 ‘부문별 자기영역 찾는 학생운동 - 제반 사회운동과의 실질적 연대 이뤄내야(고대신문 1087호(1988년 9월 27일자))’라는 기사였다.

  기성 언론이 보도지침을 비롯한 정부의 언론통제로 발이 묶여있던 시절, 학보사는 각지에서 일어나는 학생운동의 양상과 학생들의 목소리를 온전히 담아내는 중요한 소식통이었다. 성기영 동인은 80년대 대학사회에서 학보사의 영향력은 실로 대단했다고 회상했다. “당시 대학생들에게 학보사는 유일한 진실의 창구였습니다. 기성 언론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한 시절, 순전히 학생들의 힘으로 굴러가는 학보사가 대학 사회에 끼치는 영향은 지대했어요. 학생들 사이에선 말 그대로 ‘없어서 못 읽을 정도’였습니다.”

  학생운동이 시들해지면서, 그 중추에 있던 학보사의 위상도 예전만큼 못한지 오래다. 성기영 동인은 학보사가 학생들과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현재 대학생들의 삶에 다가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학생들의 현실적 고민으로 뛰어들어야 합니다. 주거문제나 취업난 같은 가려운 점을 긁어줄 수 있는 이슈를 모색한다면, 학생들도 자연스럽게 학보를 찾게 될 거예요.”

 

  현실은 달라져도 ‘목소리 내기’는 계속되길

  학생운동이 대학생활의 대부분이었던 과거와 달리, 오늘날은 대학사회에서 이렇다 할 학생운동을 찾기 쉽지 않다. 성기영 동인은 대학사회에서 학생운동이 자취를 감추게 된 것이 어느 정도는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대답했다. “과거에 비해 학생운동이 감소했다는 사실은 사회 전반에 민주화가 실현됐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 과거와 같은 정치적 투쟁과 사회변혁을 위한 집단행동의 필요성이 줄어든 것은 도리어 바람직하죠.”

  그렇지만 대학생들이 지나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을 꺼리는 작금의 현실에 대해서는 우려를 표했다. “학생운동이 사라졌다고 현재 대학생들의 삶이 완전히 행복하고 평탄한 것은 아닐 겁니다. 특히 최근에는 청년취업난의 심화로 많은 대학생들이 힘들어하고 있어요.” 성기영 동인은 취업난과 불합리한 교육제도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을 이야기하는 동시에, 대학생들의 용기 있는 행동을 요구했다. “과거처럼 격렬하고 집단적인 시위는 아니더라도,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못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자발적인 목소리를 내었으면 합니다. 작은 목소리들이 모여 큰 변화를 일으키는 법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성기영 동인은 대학생들에게 각박한 현실 속에서도 주위를 둘러보는 열린 마음을 가질 것을 당부했다. “자기 개인을 지키는 일도 물론 중요하지만, 더불어 사는 것의 가치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누리고 있는 자유도, 나보다는 공동체의 소중한 가치를 위해 투쟁하던 수많은 이들의 피와 땀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요.”

 

글·사진 | 박진웅 기자 quebec@

박진웅 기자  quebec@kunews.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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