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월 25일까지 진행되는 '사전의 재발견' 기획전시에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소개돼있다

  ‘국어사전’이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특성은 규범성과 표준성이다. 이런 인식과 달리 문법적으로 맞지 않더라도 실제 언어생활에서 빈번히 경험하는 단어들을 수록해 우리말의 다양성을 보여주는 사전이 있다. 본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 편찬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바로 그것이다. 2009년에 탄생해 이제 편찬 10주년을 맞이하게 되는 이 사전은 현재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다음’ 사전으로 채택돼 그 우수성을 인정받고 있다.

 

  살아있는 표제어 담은 살아있는 사전

  1992년 본교 김흥규, 정광, 강범모 교수가 대규모 말뭉치를 이용해 사전을 만들자고 합의한 후, 본교에서 한국어 사전을 만들기 위한 여정이 시작됐다. 17년에 걸친 편찬 작업 끝에 본교 민족문화연구원에서는 살아있는 한국어를 적극 반영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2009년 편찬하게 된다.

  표준국어대사전을 위시한 기존 대사전들은 이전에 존재하던 사전들로부터 표제어를 추출했다. 또한 편찬인 개인의 언어적 지식과 경험에 의존해 뜻풀이가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경우 실제로 존재하는 1억 어절 이상의 한국어 말뭉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졌다. 개인의 지식보다 정확하고 풍부한 자료에서 표제어를 추출했고, 생생한 용례나 용법을 사전에 추가해 신어, 틀린 말 등 존재하는 언어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반영했다.

  이용자의 편의를 중요시해 최대한 많은 단어의 뜻풀이를 제공하는 것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의 특징이다.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유의어나 ‘시키다’ 등의 접사가 붙은 동사의 뜻풀이까지 이뤄져 이용자가 사전을 찾았을 때 바로 정보를 획득할 수 있도록 제작됐다.

  다른 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가지는 가장 큰 차이는 형태분석정보를 제공한다는 점이다. 형태분석이란 단어를 형태소 단위로 분석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국밥’이라는 단어에 대해선 [국+밥]이라는 정보를 제공해 분석이 가능한 형태를 제시하는 방식이다. 도원영 본교 민족문화연구원 사전학센터 부소장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복합어 17만4000여 개의 표제어에 대해 공시적인 형태분석을 한 최초의 국어사전”이라며 “이는 전 세계 사전에서도 드문 것이며, 학문적으로도 많이 인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사전 편찬자 양성하는 사전학센터

  2009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만들어졌지만, 이 시기까지는 사전을 편찬하는 데만 역량이 집중돼 사전에 관한 학문적 활동은 부차적으로 이뤄졌다. 사전 편찬 이후 학술, 연구활동을 강화하기 위해 2013년 본교에 사전학센터(소장=최호철 교수)가 개소했다. 사전학센터에서는 사전을 만드는 일과 더불어 각종 프로젝트와 초청강연, 간담회, 학술대회를 열고 있다. 특히 2014년부터 시작된 사전편찬교실은 학자와 대학생 등에게 사전제작 노하우, 기술, 인프라를 공유하고 있다.

  도원영 사전학센터 부소장은 “사전은 전문가만이 만드는 것이 아니다”라며 “특정한 분야에 오랫동안 일하거나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참여하는 사전이 늘어나고 있고, 이런 이들이 사전을 만드는 데 사전편찬교실이 기여하고 있다”고 역할을 설명했다. 실제로 일반인들도 편집에 참여할 수 있는 국립국어원 우리말샘, 몸짓이나 손짓 언어를 다루는 한국수어사전 등 사전 편찬 실무자들뿐만 아니라 일반 대학생들도 사전편찬교실에 참여하고 있다.

▲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포털사이트 네이버와 다음의 국어사전으로 채택됐다

  걸어온 10년과 나아갈 10년

  편찬 이후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다양한 인터넷 플랫폼으로 진출했다. 2011년 ‘다음’을 시작으로 2017년에는 ‘네이버’에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국어사전으로 채택하고 있다. 현재 네이버에서는 표준국어대사전과 고려대 한국어대사전, 그리고 우리말샘을 이용할 수 있고, 다음에서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과 우리말샘을 통한 단어검색이 가능하다. 다음 재직 당시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을 채택한 정철 누리미디어 기획이사는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가장 최근의 성과물이었고, 사람들에게 표준국어대사전 외에도 우수한 사전이 있음을 보여주려 했다”며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실제로 쓰이는 한국어를 반영했다고 판단해 이를 채택하게 됐다”고 밝혔다.

  사전이 만들어진 지 10년이 지나면서 수록된 단어의 변화도 나타나고 있다. 사전에서 명시적으로 드러난 오류나, 지금은 쓰이지 않는 단어들은 수정이 이뤄지고 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인식이 바뀌면서 나타나는 단어의 의미 변화는 쉽게 사전에 반영할 수 없는 부분이다. 사람마다 인식 변화 속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도원영 부소장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이 실제 사용되던 언어를 반영하고자 했기에, 사전에 수록된 차별표현 등에 대한 비판이 들어오고 있다”며 “편찬 1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에 차별표현 전반에 대한 입장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부족하게 수록된 어휘 역사 정보도 보강돼야 할 부분이다. 도원영 부소장은 “고려대 한국어대사전은 다른 사전에 비해 어원정보를 많이 제공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어휘의 사적 정보, 특히 어원에 대한 설명이 충분치 못한 게 사실”이라며 “어원 정보를 확충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사전학센터의 장기적 목표는 영국의 옥스퍼드 사전 같은 통시적 국어사전을 만드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발간된 사전들은 모두 발간 당시의 언어만을 기록한 공시 사전이다. 도원영 부소장은 “현재까지 편찬되지 못한 18세기 사전, 19세기 사전을 만들고, 장기적으로는 한국어의 역사적 변천을 보여주는 통시적 국어사전을 발간하고자 한다”고 앞으로의 계획을 밝혔다.

 

글·사진 | 전남혁 기자 mi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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