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총련 이적규정 철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팡질팡은 현실로써의 냉전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의 자유, 두 영역의 경계인 선 위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 여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최근 한총련의 합법화 움직임은 우리가 이데올로기에 쳐놓았던 선(線)을 다시 드러나게 했다.

현실의 냉전 논리와 이데올로기의 자유 사이에 선 위에서 갈팡질팡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 움직임은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선이 돼었다.


지난 1998년 대법원에 의해 이적단체로 규정된 지 4년동안 이데올로기의 마이너리티였던 한총련과 우리 사회 이데올로기의 선에 대한 대학생들의 의식을 알아보고자, 본지는 서울지역 7개 대학 1400명을 대상으로 설문을 실시했다.

(설문 대상 학교 : 본교, 경희대, 서울대, 성균관대, 연세대, 한국외국어대, 한양대 각 200명 설문 일시 : 8월 27일부터 28일까지 이틀 간 설문 방법 : 방문 조사)
 
 

지난 8월 23일 한국프레스센터에서 ‘한총련 합법적 활동보장을 위한 범사회인 대책위원회’(회장=강만길·상지대 총장) 는 한총련 이적단체 규정은 유엔이 보장하는 ‘시민적ㆍ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중 △제18조 사상ㆍ양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19조 표현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2조 제1항 결사의 자유에 대한 권리 △제26조 평등권 등에 위배된다며 유엔인권위원회에 한총련 이적 규정을 제소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그동안 우리 사회 기저에만 흘러 보이지 않던 우리 사회 이념의 선이 드러나게 됐다.

우리 사회가 다원화를 존중하는 민주주의 사회를 근간으로 하는 만큼,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는 그에 근거했을 때, 다수의 지지를 얻을 것으로 보인다. 본지가 서울 소재 7개 대학 1400명에 대해 설문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총련 이적 규정 조치에 대해 찬성 15%, 반대 58%였으며 한총련 이적 규정에 반대한다고 응답한 학생 중, 37.9%와 24.8%가 각각 ‘민주주의는 다원화를 전제로 하기 때문’ 그리고 ‘한총련 또한 학생들의 일반 정치 운동과 다름없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이와 관련, 정현백(성균관대 사학과) 교수는 “건강한 정당문화의 발전과 함께 학생들의 정당을 통한 정치참여가 이뤄줘야 한다”며 “이런 방향으로의 전환을 위한 전제조건은 한총련에 대한 이적규정을 철회하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한총련의 합법화에 일반인들의 이성적인 공감을 얻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이러한 원인으로는 우리 사회 기저에 깔려 있는 피아(彼我) 인식과 안보 이데올로기를 꼽을 수 있다.

먼저 우리 자신이 나름대로 북한과 나 사이에 그은 선 때문이라는 주장에 귀기울일 필요가 있다. 이와 관련, “우리 사회는 아직까지 적이 없으면 나의 존재가 없다고 생각한다”는 홍근수 향린교회 목사의 말은 피아(彼我) 식별이 없어서는 안 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임지현(한양대 사학과) 교수의 지적처럼, ‘우리 안에 파시즘’처럼은 아닐지라도 기저에서 나름의 정치관을 형성한 안보 이데올로기도 한총련 합법화에 심하게 요동칠 것으로 보인다. 

은평구 녹번동의 주부 이 某(45) 씨는 각각 대학교 1학년, 고등학교 2학년, 중학교 2학년인 세 딸을 둔 평범한 주부다. 이 씨는 한총련에 대해 지난 월드컵의 일을 제일 먼저 기억해 냈다. 이 씨는 폴란드 전을 둘째 딸과 광화문에서 응원을 했지만 미국 전은 반미감정을 둘러싼 한총련 학생들의 안 좋은 소문이 돌아 딸이 걱정돼 텔레비전으로 시청했다. 이 씨에게 한총련은 아직까지 1996년과 1997년의 연세대 사태와 한양대 사건을 일으킨, 일만 내는 불안한 단체였던 것이다. “내가 교육받던 시절 반공 이데올로기가 사회에 팽배했던 것은 사실이지만 한총련은 안보를 배제하고 일단 나선다는 느낌을 받는다”는 이 씨의 말은 삶과 연계해 필요성을 느끼는 국가안보에 대한 일반 시민들의 인식을 잘 보여준다.

 또한 설문 조사에서 북한에 대한 신뢰도를 묻는 질문에 ‘매우 신뢰하지 않는다’와 ‘신뢰하지 않는다’가 각각 57.1%와 12.6%가 나왔고, 설문 응답자 중 1146명(81.9%)가 ‘한국 사회 기저에는 아직까지 냉전 이데올로기가 존재한다’고 답했다.

게다가 “내 직업을 떠나 현실적으로 북한이 우리 사회에 우호적이지 않은 것은 서해교전이나 몇몇 사건들을 통해 알 수 있다”라는 정보기관에 근무하는 某 씨의 말에서 엿볼 수 있듯, 아직까지 한국 사회에서 정치적 형세를 감안한 대북관은 한총련 합법화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한총련 이적 규정 문제는 단순히 남과 북 사이에서 보여지는 정치적인 흐름 속에서 풀어나갈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틀 내부의 인간 안에서 기본권으로 사상의 자유을 가진 인간과 국가 체제 안에서의 인간간의 다툼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최근의 한총련 합법화가 예전에 비해, 공감을 많이 얻고 있는 것은 6·15 남북 공동 선언, 경의선 복구 등으로 감성적 측면의 ‘우리’는 우리가 설정해 놓은 선을 한 발짝 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적, 현실적인 문제를 바라봐야 하는 우리의 이성은 쉽사리 선을 넘을 기세를 보이지 않는다.

한총련 이적규정 철회에 대한 우리 사회의 갈팡질팡은 현실로써의 냉전적 사고와 이데올로기의 자유, 두 영역의 경계인 선 위에 서 있는 우리의 모습이기에, 한총련 이적 규정 철회 여부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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