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4-23 13:41 (화)
[시론] 따로 노는 한일관계에 필요한 ‘춘장’의 역할
[시론] 따로 노는 한일관계에 필요한 ‘춘장’의 역할
  • 고대신문
  • 승인 2019.02.02 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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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기영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손기영교수·고려대 아세아문제연구소


 

  한일관계는 양파를 요리하는 것과 같다. 까도 까도 끝이 없이 새로운 속살이 드러나는 양파는 매운 맛 때문에 날로 먹기는 거북하다. 그런데 완성된 자장면에 들어간 달큰한 양파는 아이들의 입맛도 사로잡을 만큼 매혹적이다. 이 양파의 양면성이 한일관계의 현 주소다.

  먼저, 양파의 속살을 한 겹 까보자. 똑 쏘는 매운 맛이 한일관계의 현주소를 시사한다. 바다를 사이에 둔 이 두 나라는 협력할 일 만큼 부딪칠 일도 많다. 최근 한국 함정과 일본 초계기 간의 레이더 조준과 저공근접비행 문제도 이런 연장선상에 있다. 양국의 군 당국과 전문가들이 서로 위협적 행동을 했다고 언성을 높이는 사이에 아베총리와 일본 정치권은 물 만난 고기처럼 이 문제를 이용해 한국을 비난해 왔다.

  양파를 한 겹만 더 까보자. 적국이라면 신경전이 벌어지겠지만 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가치를 공유하면서 유사 동맹관계에 있는 이웃 사이에 레이더조사(照射·겨냥해 비춤)와 저공근접비행은 만원버스 안에서 부딪히는 것과 같고, 서로 미안하다고 하고 넘어가도 될 문제다. 그런데 왜 이렇게 문제가 확대 되었을까? 아베정부는 줄곧 문재인 정부의 태도가 못마땅했다. 대법원의 강제징용 판결에 대해 1

 

965년의 기본조약을 위반하는 행위로 간주했고, 한국의 남북화해정책이나 신북방정책과 신남방정책을 포괄하는 지역협력정책도 군사적 긴장을 필요로 하는 보통국가만들기에 지장이 되었다.

  양파를 또 까보자. 식민통치를 겪은 한국도 늘 앙금이 남아 있다. 위안부 문제는 일본이 부족하나마 사과도 여러 번 하고 보상도 해 온 문제다. 강제징용 문제도 식민 지배에 따른 문제로 큰 틀에서 사과했지만 보상은 1965년 합의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해왔다. 그런데 한국의 사법부가 이런 인식을 뒤엎고 개인 피해자들에 대해 보상을 해야 한다고 판결한 것이다. 한국의 시민사회는 과거 양국 정부의 불완전합의를 가역적합의로 만들기 위해 총력전을 펼치고 있고, 한국의 사법부가 여기에 손을 들어주었다.

  양파를 까기만 하면 어디에도 쓸 곳이 없다. 요리를 해야 한다. 양파로 자장면 요리를 만들기 위해서는 양파를 볶고 면을 준비해야 되는데, 이것을 완성시켜줄 마력의 춘장이 필요하다. 그동안 미국이라는 빅브라더가 춘장의 역할을 해왔다. 따로 노는 한국과 일본 간에 국교정상화나 위안부 합의가 춘장과 같이 걸쭉한 미국의 외교적 압력이 없었으면 가능했을까? 한미, 미일 동맹 속에 안주해 온 이 두 나라에게 보편적 국제주의보다는 자국 우선주의를 추구하는 트럼프의 미국은 짐이 되면서도 기회의 창이 되었다. 미국은 동맹에 대해 더 많은 보상을 요구하고 있지만, 일본은 이것을 기회삼아 미국이라는 족쇄를 풀고 한국이 누렸던 과거사 프리미엄을 걷어내면서 하고 싶은 말과 행동을 하는 나라로 변하고 있다.

  우리의 숙제는 코흘리개 수준의 한일관계를 정상적 대화가 가능한 어른의 관계로 성숙시키는 것이다. 미국을 배제한 상태에서 가까운 이웃처럼 만날 수 있어야 한다. 과거의 한 때 정상간 셔틀외교가 그런 모습이었다. 물론 과거의 잘못에 대한 사과와 보상이 주변국의 기대수준에 못 미치는 일본과 반일주의를 탐닉하는 한국의 일부 정치가들이나 시민사회의 격앙된 목소리 속에서 일정한 해법이 나오기는 쉽지 않다. 드물게 나온 것이 1998년의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총리의 ‘21세기 새로운 한-일 파트너십 공동선언이다. 사실 선언에 들어간 내용보다는 두 정상이 보여준 서로를 존중하고 인정하는 자세와 짧았지만 이러한 리더십에 박수를 보낸 양국의 시민의식이 중요했다.

  지금 악화되고 있는 양국 관계의 해법은 무엇인가? 국가 지도자들 간의 냉기류에도 불구하고 음식과 대중문화를 포함해 서로의 매력을 찾아서 꾸준히 방문하고 좋은 관계를 유지해 온 일반 시민, 학생, 그리고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높일 때다. 이것을 듣고 정치가들도 호응할 것이다. 다시 요리 얘기로 돌아가면 미국이라는 수입춘장이 가미된 인스턴트 자장면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 미국을 대신할 신토불이의 친환경춘장이 필요한데 이것을 만들기 위해서는 양국관계에 대한 성찰, 양심적 행동, 그리고 두 나라 국민들 간의 열린 대화라는 여러 부재료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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