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8-06 15:12 (화)
[학자와의 티타임] “음악의 역사를 파고들면 민족의 뿌리가 보입니다”
[학자와의 티타임] “음악의 역사를 파고들면 민족의 뿌리가 보입니다”
  • 박진웅 기자
  • 승인 2019.03.18 01: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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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방송 한예종 명예교수

 

  작년 10월 송방송(한예종 한국예술학과) 명예교수는 국악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제25회 방일영국악상(方一榮國樂賞)을 수상했다. 제 평생을 쏟은 노고를 인정받았다고 생각하니 학문 인생의 보람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나라 음악의 뿌리를 발굴하고 한국음악학의 이론적 토대를 정립하는 데 한평생을 쏟은 송방송 교수는 <한국음악통사>, <한겨레음악대사전> 50여 권의 한국음악 관련 서적·번역서·색인집을 저술했다. 현재까지도 활발하게 학술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송방송 교수를 만났다.

 

  - ‘한국음악학은 어떤 학문인가요

  ‘한국음악학한국음악의 이론적 체계를 세우기 위한 학문적 연구라 정의할 수 있습니다. 한국음악은 한국 전통음악을 총칭하는 국악에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서양음악과의 혼합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근대음악이나, 최근 전 세계적으로 유행하고 있는 K-POP도 한국음악학의 범주에 속하죠. 그 뿌리가 외국에 있더라도 우리 민족이 자주적으로 수용해 우리 것으로 변형하고 재창조했다면 얼마든지 한국음악이며, 한국음악학의 연구대상이에요.

  음악학은 시간적 차원의 연구와 공간적 차원의 연구로 나뉩니다. 시간과 공간이 있어야 물질이 존재하듯이, 음악에 대한 시·공간적 연구가 적절히 조화돼야 음악의 실체를 세울 수 있어요. 공간적 차원의 연구는 현재의 관점에서 음악의 다양한 양상을 탐구하며, 시간적 차원에선 음악의 통시적 역사를 고찰합니다. 제 연구 분야인 음악사학도 시간적 차원의 연구에 속합니다. 고문서 속에 남아있는 음악기록들을 추출하고 분석하거나 고악보를 해독하는 학문인 음악사학은 일반 역사학자들이 할 수 없는 특수한 일이어서 음악학의 갈래에 속하죠.

 

  - 한국음악사를 재정립하기 위해 어떠한 일을 하셨나요

  가장 노력했던 분야는 국역(國譯)입니다. 우리나라는 역사적으로 한자문화권이기에 구한말 이전 사료들은 모두 한문으로 서술돼 있어요. 음악관련 사료들도 마찬가지죠. 번역을 위해선 한자를 열심히 익혀야 할뿐 아니라 음악사·이론 전반에 걸친 해박한 배경지식이 필수입니다. 예컨대 ()비파를 단순히 직역하면 당나라의 비파로 오역하기 쉬워요. 악기 이름 속 ()’은 한국의 고유 악기인 ()비파와 외래 악기를 구분하기 위한 용어로 중국의 비파로 번역해야 맞습니다.

  ‘색인(index) 작업도 중요한 과업이었습니다. 제가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국악에는 완성된 색인 작업이 전무해서 생소한 용어가 나올 때마다 고문서를 뒤져가며 의미를 찾아야했어요. 국악연구의 발전을 위해선 이런 비효율성을 극복해야 했죠. 그래서 엄청난 양의 사료들을 손수 읽으며 색인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깨알만큼이라도 남아있는 음악 기록을 찾기 위해 방대한 조선왕조실록을 혼자서 들여보다며 국역했던 기억이 납니다.

 

  - 2012<한겨레음악대사전>을 발간하셨습니다. 사전을 집필하게 된 배경이 무엇입니까

  서울대 국악과에 입학해 국악이론을 공부하며 가장 뼈저리게 느꼈던 것이 기초 작업의 부재였습니다. 서양은 음악사학의 기초 작업이 매우 잘 돼 있어요. 라틴어로 저술된 엄청난 양의 사료가 각 나라의 언어들로 완벽히 번역돼 있고, 체계적이고 명확한 분류기준도 세워져 있어 연구하기 수월합니다. 하지만 국악엔 이러한 학문적 토대가 전무했습니다. 이러한 여건에서는 제 자신도 제대로 된 연구를 진행하기 어렵고 국악계의 미래도 밝지 않다고 판단했죠. 그래서 서양의 발전된 음악학 체계를 배워 국악연구에 활용하겠다는 일념으로 캐나다 맥길대(McGill University)로 떠났습니다. 서른다섯에 귀국해 국립국악원장으로 일하면서 캐나다에서 익힌 서양음악의 기초 작업의 방법론을 활용해 한국음악의 총체를 담은 대사전을 집필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삼국시대부터 근대까지 이어지는 총 9700명의 우리 음악인들을 정리하고 악학궤범, 악장등록 등 사료에 실린 음악용어들을 모두 총람해 대사전에 담아냈어요. 첫 삽을 뜬지 장장 30년 만에 <한겨레음악대사전> 발간을 완료했죠. 제 인생의 과업을 이뤄냈다는 생각에 무척이나 뿌듯했습니다.

 

  - 서양음악과 구분되는 국악의 음악체계에 대해 여쭙고 싶습니다

  서양음악과 국악의 가장 명확한 차이는 음정을 산출하는 방법입니다. 서양음악에선 현()2분의1 길이로 자르면 한 옥타브가 올라가고 3분의2 길이로 자르면 완전5도 위의 음정이 난다는 점을 착안한 피타고라스음률이 고안됐고, 이를 바탕으로 두 음 간의 진동비를 활용해 12율을 구성한 순정률이 사용됐어요. 하지만 순정률 체계는 일일이 계산하기 번거로운 데다, 협주나 조옮김을 할 때 불협화음을 낳게 되는 문제가 있어요. 그래서 중세 이후부턴 한 옥타브를 1200센트(cent)로 놓고 균등하게 12등분해 반음 사이의 거리를 인위적으로 같게 만든 평균율체계로 전환하게 됩니다.

  반면 국악은 중국에서 유래한 삼분손익법을 활용했습니다. ‘삼분손익이라는 건 삼등분해 빼고() 더한다()란 의미에요. 삼분손익법에선 긴 대나무 율관을 불어 황종()음이 나는 율관을 음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이 율관을 셋으로 나눈 뒤 하나를 빼면 원래음보다 완전5도 높아지고, 하나를 더하면 완전4도 낮아집니다. 이렇게 삼분손일과 삼분익일을 교대로 반복하다 보면 마찬가지로 12율이 산출됩니다. 같은 12율이라도 음정산출의 방법이 다르다 보니 음계엔 차이가 있습니다.

또한, 서양에선 주로 7음계(------)가 사용된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주로 5음계(황종-태주-중려-임종-무역)가 사용돼 악풍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화성학에 기초한 다성음악(homophony)이 주류였던 서양음악과 달리 국악은 단선음악(polyphony) 위주였던 것도 다른 점이죠. 대신 우리 조상은 형식에 구애받지 않는 화려한 즉흥연주로 음악의 멋을 살렸습니다.

 

  - 세종학연구도 활발히 진행하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한국음악학과 어떤 관련이 있을까요

  세종대왕은 한글창제의 업적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 자체로도 물론 대단하지만, 음악사적으로도 세종대왕은 매우 위대한 인물입니다. 대표적인 업적이 한국의 고유악보 정간보의 발명입니다. 정간보는 음의 길이를 처음으로 표현한 가장 오래된 율량(有量)악보입니다. 정간보가 탄생하기 전엔 종이 위에 음이름만 표기된 율자보를 사용했기 때문에 과거 한국음악의 형태를 온전히 보존하기 어려웠죠. 정간보가 탄생하며 과거 한국음악의 온전한 전승이 가능해진 겁니다. 이외에도 음악을 좋아한 세종대왕은 본인 스스로 여민락(與民樂)’ 같은 궁중음악을 작곡하기도 했죠. 한국음악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분입니다.

 

  - 지금의 한국인들은 클래식’, ‘을 비롯한 서양의 음악에는 익숙하지만 오히려 한국음악에는 익숙하지 않아 보입니다. 현대인이 한국음악에 보다 친숙해지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한국음악에 대한 작금의 무관심은 일제강점기가 기원이라 생각합니다. 일제는 우리 민족을 말살하기 위해 우리말을 못 쓰게 하는 동시에, 우리 음악 연주와 연구도 금지했어요. 그만큼 한국음악에는 한국인의 민족정신을 고취시키는 무언가가 강하게 존재하는 거죠. 이로 인해 초래된 국악연구의 부진과 강요된 열등감이 현대인이 국악을 멀리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국악에 대한 무관심을 타개하기 위해선 무엇보다 우리 스스로가 한국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갖는 게 중요해요. 자라나는 세대들이 우리 민족이 이룩한 특별한 예술적 성과를 자랑스러워하는 마음을 갖고 우리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면 국악의 아름다움과 우수성이 널리 재조명받을 거라 확신합니다.

 

박진웅 기자 quebe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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