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6-25 13:14 (화)
“농인은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입니다”
“농인은 ‘못 듣는’ 사람이 아니라 ‘잘 보는’ 사람입니다”
  • 전남혁 기자
  • 승인 2019.06.05 00: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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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택진 수어통역사(인천농아인협회 부설 인천수어통역센터 사무처장) 인터뷰

 

  각기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가장 필요한 것 중 첫 번째는 소통일 것이다. 한국어와 영어를 잇는 통역사처럼, 수어(手語)와 음성언어를 사용하는 농인과 청인의 눈과 귀가 돼 이들의 소통과 교류를 돕는 수어통역사가 있다. 농인과 농인 문화에 대한 인식개선을 통해 단순한 언어의 소통이 아닌 장애인과 비장애인 간 문화의 소통을 꿈꾸는 정택진 수어통역사를 만났다.

 

  - 수어통역사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수어통역은 청각 및 언어장애인과 비장애인 사이에 원활한 의사소통을 위해 음성언어를 수어로 변환하거나, 수어를 음성언어로 변환 또는 수어를 필기로 전환하는 것입니다. 수어통역사는 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이고요.”

 

  - 어떠한 계기로 수어통역사가 되셨나요

  “저는 항공사에서 일하던 정비사였습니다. 일할 때 교회에서 율동 교사를 하고 있었는데, 율동을 가르치다 문득 농아인의 언어인 수어를 이용해 율동을 만들면 어떨까하고 생각했어요. 그렇게 수어로 율동을 만들려고 수어를 배웠죠.

  수어를 배우면서 충격적인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농인들이 살면서 수어통역사가 부족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는 일이 잦다는 거죠. 그러다가 청각장애인들의 생활시설인 성동원을 알게 됐고, 당시 원생으로 있었던 지금의 아내와 눈이 맞아 연애하면서 수어에 더욱 깊이 빠졌습니다. 1989, 아내와 결혼하면서 자연스럽게 아내의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수어통역을 시작했습니다. 그때 수어통역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는 아니었어요. 민간 수화통역사 자격증 제도는 1997년에, 국가공인 수화통역사 제도는 2016년부터 시행됐습니다. 결국, 제가 수어통역사가 된 이유는 제 아내였습니다.”

 

  - 수어통역을 할 때, 어떤 점에 가장 중점을 두시나요

  “농인이 수어로 의사를 표현할 때 이야기의 흐름이 끊어지지 않도록 메모를 하거나 요약을 합니다. 그리고 수어의 단어보다는 전체 맥락을 중심으로 파악했다가 중간마다 이야기한 내용을 확인하죠. 또 농인 대상으로 수어통역을 할 때는 대상 농인들의 수준을 빨리 파악해서 그들의 눈높이에 맞춘 통역을 합니다. 통역사는 상대에 따라 달라지는 카멜레온이 돼야 하는 거죠.”

 

  - 농인들과의 소통 과정에서 어려운 점이 있다면

  “농인과 청인들이 모두 통역사를 농인의 편이라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래서 저는 통역을 하기 전에 양쪽에게 통역사는 누구의 편도 아니며, 당사자 간에 의사소통을 위해 왔으니 하고 싶은 이야기를 맘껏 하라는 것을 확실히 고지합니다.

  또, 수어통역사는 수어와 음성언어 모두에 대한 능력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쪽이 부족하면 부족한 영역에서 통역이 부실하게 되겠죠. 음성통역은 한국어 능력과 역량이, 수어통역은 수어 능력과 농문화 이해가 있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는 음성통역이 더 어려운 편이에요. 한국어는 국문과 한문이 섞여 있고, 아주 미려한 언어이기에 수어를 한국어로 변환할 때 짧은 시간에 적절한 단어를 선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죠.”

 

  - 통역을 하시면서, 농인들이 호소하는 불편들이 있다면

  “농인과 청인 간 문화 차이가 큽니다. 청인과 농인의 문화 차이에서 발생하는 오해를 푸는 게 가장 어려워요. 청각장애인의 문화 중 하나가 이름 외에 얼굴이름이 별도로 존재한다는 겁니다. 한 예로, 경찰서에서 조서를 꾸미는데 경찰이 농인에게 그의 친구 이름을 물었어요. 그러자 그 농인은 친구의 얼굴이름은 아는데 이름은 잘 모른다고 하더군요. 그러자 그 형사가 어디서 거짓말이냐고 화를 낸 적이 있습니다.

  이렇게 소수이지만 상대 농인의 얼굴이름은 알면서 실명이름을 모르는 농인들도 있습니다. 이것이 무학 농인입니다. 청인들은 이런 부분들을 이해하지 못해 답답해합니다. 무학이면서 수어를 주() 의사소통 수단으로 사용하는 농인의 경우와 그렇지 않은 농인 등 다양한 변수와 요인들을 고려하거나 배려하지 못하는 거죠.

  결론은 농인의 개인 능력은 아주 다양하고, 똑같은 농인은 한 명도 없다는 겁니다. 서로간에 오해가 생기지 않도록 농인의 문화를 이해하고 수용하며, 또 참여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다양한 농인을 많이 만나야 합니다. 표면적인 만남이 아니라 깊숙이 빠져봐야 해요. 농인과 만남이 없는 통역사는 죽은 통역사입니다. 즉 무늬만 통역사인 셈이죠.”

 

  - 수어 콘텐츠를 활용한 크리에이터 활동도 하고 계십니다

  “아내의 영향이 커요. 예전에 아내가 북한의 장성택 사망에 관해 물어본 적이 있습니다. 이를 수어로 설명해주면서 이런 이야기를 우리끼리만 하지 말고 전국의 농아인들에게 찍어서 보여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됐어요. 그래서 관련 자료를 공부한 후 찍어서 올리게 됐죠. 그 이후로 세월호 사건, 국정농단 등 큰 이슈에 대해 이해를 못 하는 농인들을 위해 유튜브 활동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크리에이터 활동을 하는 또 하나의 목적은 일반인에게 수어의 예술성을 보여주기 위해서입니다. , 노래, 동화 등을 수어를 통해 얼마든지 예술적으로 표현할 수 있어요. 그냥 손으로만 하는 게 아니라 표정을 넣어 그 예술성을 보여주는 거죠.”

 

  - 통역사로 일하면서 가장 보람찬 순간을 꼽는다면

  “청인 아버지와 농인 아들 사이의 통역을 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아버지는 30여 년 동안 아들을 윽박지르고 있었고, 말이 통하지 않는 부자 사이에는 응어리가 가득한 상황이었습니다. 아들이 왜 아버지는 화만 내냐고 물어보니 아버지는 너를 잘 가르치고 싶었다는 식으로 대화가 이어졌어요. 서너 시간 둘의 이야기를 이었는데, 나중에는 세 명 모두 울면서 가족 간의 응어리를 풀었어요. 가족들의 깊은 오해를 해결해줄 때가 가장 보람차죠.

  또 하나, 제가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순간은 지난 2016년 국회 필리버스터(무제한 연설)에 자원한 거였어요. 당시 일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TV로 상황을 보던 아내가 통역이 없어 답답하다고 하더라고요. 알아봤더니 무제한 연설의 경우에는 수어통역이 진행된 전례가 없었고, 예산도 부족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국 통역사들을 모아 자원봉사를 하기로 결심했어요. 이에 관련 글을 페이스북에 올리니 많은 통역사들이 모였어요. 이 소식이 국회에까지 전해져 당시 국회의장의 동의로 수어통역이 진행됐습니다.

  국회 연설을 이해하고 싶다는 제 아내의 소망이 수어통역사로서 저의 소명을 일깨웠고, 또 많은 자원자들이 힘을 합쳐 이뤄낸 결과가 국회 필리버스터 수어통역입니다.

 

  - 2016년부터 한국수화언어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법 시행 이후 농인들의 삶에 변화가 생겼나요

  “아직도 체감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법이 만들어진 지 3년이 됐고 농인의 권리가 향상됐지만, 그 대상인 농인도, 이를 집행하는 공무원도 이를 잘 몰라요. 그래서 그 권리를 요구하지도 않고 있는 상황인 거죠. 법이 있어도 그것을 모르면, 또 운용할 줄 모르면 효과가 없는 거예요. 따라서 이의를 제기하고 홍보를 해야 합니다.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봐요. 이 부분은 농인과 관련된 사람들이 감수성을 갖고 움직여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농인에 대한 인식개선이 필요합니다. 안경을 낀 사람이 안경을 벗으면 눈이 조금 보이지 않는 것처럼, 장애인도 생활하는 데 있어 약간의 핸디캡이 있는 것뿐입니다. 제가 가장 싫어하는 말이 장애인 먼저’, ‘장애인을 위해서예요. ‘장애인이 먼저나서고, ‘장애인이 먼저움직여야 해요. 장애인은 불쌍하다.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아니라 우리는 모두 똑같은 사람이며, 그들을 인정하고 받아들여야 한다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글ㅣ전남혁 기자 mike@

사진ㅣ최은영 기자 emilyc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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