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사히 전역한 우린 ‘오래된 새내기’
무사히 전역한 우린 ‘오래된 새내기’
  • 조민호 기자
  • 승인 2020.05.25 01: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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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학생의 생활

전역 후 잠깐 의욕 타오르지만

나홀로 대학생활에 외로움

그래도 ‘군 버프’, 전력질주

 새내기들만큼이나 설레는 마음을 안고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이 있다. 군 복무를 마치고 캠퍼스로 돌아온 군 복학생들이다.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느라 단절된 대학생활이 누구보다 간절했을 그들이다. 짧게는 21개월, 길게는 24개월. 군대에서 보낸 시간은 세상 물정 모르고 놀던 풋풋한 남학생들을 어떻게 바꿔놓았을까. 군 복학생 19명과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의 학교생활을 들여다봤다.

 

기억 리셋, 잠깐 새내기처럼

 군 복학생도 새내기처럼 캠퍼스의 낭만을 꿈꾼다. 애인을 만들고, 동아리에 들어가고, 교환학생을 가고, 오랜만에 친구들도 다시 만나고 싶다. 심지어 입대 전에는 좀처럼 신경 쓰지 않던 공부도 하고 싶어진다. 답답한 부대를 떠나 복학만 하면 뭐든지 다 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박현수(정경대 경제16) 씨는 군대에 있을 때는 전역만 하면 매일을 보람차게 보낼 것만 같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모든 게 생각대로 되진 않는다. 연애는 쉽지 않고, 친구들은 졸업·취업을 준비하거나 수업 듣기 바빠 자주 보지 못한다. 동아리도 막상 들어가자니 귀찮다. 전역 직후 충만해진 삶에 대한 열의가 점차 떨어지면서 입대 전의 삶으로 돌아가게 된다. 2년 동안 매일 아침 6시에 기상나팔 소리를 들으며 일어나던 사람은 어디 가고, 늦잠꾸러기만 남는다.

 오랜만에 펜을 잡으니 공부도 쉽지가 않다. 불타는 의지와 달리 수업을 따라가지 못해 애를 먹는다. 강산이 바뀌는 데도 10년은 걸린다는데, 2년 만에 머리가 돌로 바뀐 느낌이다. 입대 전에 배운 내용은 휘발돼 사라진 지 오래고, 전공책을 봐도 내 전공이 맞는지 의심된다. “군대에서 공부를 놓았던지라 머리가 굳진 않았을까 걱정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굳어있었다.” 이동엽(정경대 경제16) 씨가 굳은 머리를 풀어보려 노력 중이라고 덧붙였다.

 

미래에 대한 진짜 고민 시작에 군 복학생들은 학점관리와 자기계발에 열중한다. *해당 사진은 연출된 사진입니다.
미래에 대한 진짜 고민 시작에 군 복학생들은 학점관리와 자기계발에 열중한다.
*해당 사진은 연출된 사진입니다.

교수님, 조는 알아서 짜주세요

 새내기들이 개강 첫날 처음 보는 사람들과 수업을 듣고 누구와 밥을 먹을지 걱정하는 것처럼, 군 복학생들 역시 2년 만에 돌아가는 학교생활이 두려운 건 마찬가지다. 공사 중이던 SK미래관이 완공되고, 홍보관은 빈 터만 남았다. 새내기의 추억이 남아있던 식당과 술집은 자리를 옮기거나 사라졌다.

 학교 모습만 생경한 게 아니다. 사람들도 어색하다. 괜히 고학번이라 불편해할까 눈치가 보이고, 아는 얼굴이 없으니 과 행사에 참여하기 꺼려진다. 한때 내 집 같았던 과방 출입은 언감생심이다. 전덕진(문과대 한국사16) 씨는 복학했을 때 2학년이었는데, 고학번이라 학생사회에 참여하기 부담스러웠다저학번 위주로 진행되는 학생회 행사에 참여할 기회가 많이 없어 아쉽다고 했다.

 알고 지내던 사람들과 다시 어울려보려 해도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여자 동기들은 이미 사회에 진출했고, 남자 동기들은 아직 군대에 있다. 같이 복학한 동기들이 있지만, 각자의 삶에 치여 매일 어울리기 힘들다.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밥 먹고 강의 듣는 대신 혼밥과 독강이 잦아졌다. 예전에는 같이 수업을 듣는 친구들한테 물어봤을텐데, 이젠 독강이 대부분이라 물어볼 사람이 없다. 이재욱(문과대 철학15) 씨는 매 수업마다 수업 공지사항을 놓치지 않으려 긴장하게 된다고 전했다. 특히 아는 얼굴 하나 없는 수업에서 팀플이라도 하면 당혹스럽다. 내심 교수님이 대신 조를 짜주길 바란다.

 

군 버프’, 이제부턴 실전이다

 신성한 국방의 의무지만, 21개월이 넘는 군대에서의 시간은 너무나도 길었다. 그사이에 동기나 후배가 앞서 나가는 모습을 보면, 자연스레 불안함이 고개를 내민다. 나만 아무것도 안한 것만 같다. 임경민(정경대 정외16) 씨는 친구들이 교환학생을 가거나, 자격증을 취득하고 학점을 이수하는 모습을 보며 내가 뒤쳐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이제 더 이상 인생을 즐기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위기의식이 엄습한다.

 불안감은 양분이 된다. 이른바 군 버프. 졸업과 취업이 눈앞으로 다가오자 입대 전보다 더 치열한 삶을 살기도 한다. 고시나 CPA 같은 시험에 도전하거나, 학점 관리와 대외활동에 공을 들인다. 공강 시간에 PC방이 아닌 도서관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술 마시는 횟수도 준다. 자연스레 학점이 오른다.

 오랜만에 친구들을 만나도 대개 취업이나 향후 진로에 관한 이야기가 오르내린다. 이현우(경영대 경영16) 씨는 군대에서의 2년 동안 사회생활을 간접적으로 경험한 느낌이 들어 미래를 고민하게 됐다이제 군대라는 핑계거리가 사라지니 취업에 대한 경각심이 생겼다고 말했다. 그렇게 군 복학생들은 군대라는 큰 산을 넘어, 또 다른 전력질주를 시작한다. “입대 전엔 전역이 끝인 줄 알았지만, 청춘만 바라본다면 아직 한창이더라고요. 아직 시간은 많다고 생각합니다.” 류지흠(문과대 심리16) 씨가 말했다.

 

글| 조민호 기자 domino@

사진 | 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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