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재로 점포·창고 20곳 소실

숨 돌릴 새 없이 생업 이어가

  언제 불이 났냐는 듯, 22일 오후 4시경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분주히 움직이는 사람들로 가득했다. “4시부터 꿀배 1개에 3000. 어머니, 한 번 보고 가세요.” 알록달록한 과일들 사이로 행인들을 붙잡기 위한 다급한 목소리가 점포를 따라 줄을 지었다. 바쁘게 갈 길을 가는 인파 사이로 오토바이가 아슬아슬 핸들을 꺾어가며 지나갔다.

  21일 새벽 4시 반, 청량리 청과물시장에 큰불이 났다. 7시간가량 지속된 불길에 점포와 창고 등 20곳이 불탔다.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하지만, 가게는 무너져 내렸고, 추석 대목을 앞두고 잔뜩 내놓은 과일은 바닥에 굴러다녔다. 상인들의 표정은 잿빛이었다.

 

21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창고가 무너지고 점포 내부가 불 타는 등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21일 발생한 대형 화재로 창고가 무너지고 점포 내부가 불 타는 등 청량리 청과물시장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화재 관계로 6000’, 매대 위의 반질반질 닦인 자두와 함께 반듯이 쓰인 글씨가 눈에 띄었다. “명절 선물용으로 준비했던 게다 박살이 났지.” 가게 주인 한태환(·65)씨가 기다렸다는 듯 하소연을 쏟아냈다. 한 씨는 화재로 인해 창고의 과일들을 온통 못쓰게 됐다고 했다. “물에 젖은 박스에서 일일이 꺼내 닦아 놓은 거야. 이것도 원래 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만 원을.” 그는 말끝을 흐렸다.

 

  시장 깊숙이 들어갈수록 매캐한 탄내가 코끝을 스쳤다. 화재 현장은 현장을 감식하러 온 경찰차와 소방차로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겹겹이 쳐진 폴리스 라인 틈새로 형체를 알아보기 힘들 정도로 무너져 내린 건물의 잔재가 화재의 규모를 가늠케 했다. 사람들도 발걸음을 멈추고 삼삼오오 모여 혀를 끌끌 찼다. 현장 앞을 지나가던 한 여성은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래. 다친 사람은 없대요? ?”이라며 안타까워했다.

  화마(火魔)는 주저앉은 냉동 창고를 비롯해 건너편 점포들까지 휩쓸었다. 가게 대부분이 주인도 없이 텅 비어있었다. 잿더미 속에 냄비 뚜껑이 나뒹굴던 내부는 폭탄이라도 맞은 듯했다. “가게 지붕은 없어지고, 천장도 물이 고여 내려앉았어.” 비누 가게 사장 정모 씨가 상점 앞 잿물을 빗자루로 쓸며 말했다. 화재 당시 가게에서 잠을 자고 있어 현장을 직접 목격했다던 그는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았지만, 시장에 나와 물건들을 정리하고 있었다.

  “쉴 틈이 어디 있어. 어제 불 때문에 장사를 못 해서 오늘이라도 해야 하는데, 시끄러워서 통 장사가 안 돼.” 과일장수 백길자(·71) 씨가 말했다. 화재 현장과의 거리는 10미터 남짓, 살아있는 한 멈출 수 없는 게 생업이었다. 그 옆의 족발집도 부지런히 손님을 맞았다.

  검게 그을린 세간을 실은 통닭집 자전거는 사람들로 북적이는 거리를 가로질렀다. 망가진 살림살이를 나르는 아저씨의 표정이 쉬이 읽히지 않는다. 그는 전방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래도 어째. 털고 일어나는 수밖에 없지.” 스쳐가는 행인이 무심코 던진 말이 허공을 메웠다. 시장은 오늘도 내일을 산다.

강민서기자 jade@

사진박상곤기자 octag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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