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업-육아 공감대로 만난 모임, 아이 있는 대학 만들다
학업-육아 공감대로 만난 모임, 아이 있는 대학 만들다
  • 이현주 기자
  • 승인 2020.10.11 22:2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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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인스누 서정원 초대 대표·이진화 현 대표 인터뷰

경험 나누며 힘든 시간 견뎌

아이 데려와 학내 환경 바꾸기도

학교 행정의 섬세한 고민 필요해

  2012, 국민권익위원회는 전국 국·공립 대학을 대상으로 부모학생의 임신·출산·육아 휴학제도 도입을 권고했다. 하지만 권고 수준의 내용이었고 그나마 사립대학은 대상에서 제외됐다. 근로여성을 위한 육아휴직 제도가 1987년에 제정된 것을 감안하면부모학생 지원이 나오기까지 25년이 걸린 셈이다.

  서울대의 부모학생협동조합인 맘인스누(Mom in SNU)’는 부모학생의 복지를 위해 노력하는 단체다. 2012, 부모학생들의 소소한 수다모임에서 시작한 맘인스누는 학내 부모학생을 위한 제도 개선에 앞장서며 현재 100명이 넘는 회원이 활동 중이다. 용산구 한 카페에서 서정원 초대 대표와 이진화 현 대표를 만나 이야기를 나눴다.

 

서정원 초대 대표는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대학원생을 모아 맘인스누를 만들었다.
서정원 초대 대표는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는 부모대학원생을 모아 맘인스누를 만들었다.

 

- 부모학생들이 학업과 육아를 병행하며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서정원 대표 |대학공간의 기본적인 규범이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설정돼있는 것이 현실이다.

  엄마들이 육아를 담당하는 경우가 많다보니 돌봐야 할 대상이 있는 여성은 대학 내에서 부적절한 존재라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개인의 가치는 얼마만큼의 경제적 생산물을 도출하느냐에 달려있다. 그러나 부모학생들은 경제활동을 하고 있지 않고 학업으로 인해 육아에만 온전히 집중하지도 못한다. 육아도, 학업도, 커리어도 어중간해지는 상황에서 자기효능감의 저하를 경험하게 된다.”

  서정원 대표는 대학원생 사이에선 육아 고민을, 엄마들 사이에선 학업 이야기를 꺼낼 수 없었다. 대학원생 모임에서 오고가는 연구프로젝트 이야기에 쉽게 끼어들기 힘들었다. 프로젝트를 위해선 저녁에 열리는 스터디를 가야했지만 그 시간엔 아이를 데려가야 했기 때문이다.

  공부와 육아를 병행하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고민을 공유하고 이야기를 나누고픈 마음이 절실했다. 서 대표는 SNS를 통해 자신과 같은 사회적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을 찾아나갔다. 초반에 몇 명이 들어오더니 금세 입소문이 나며 100명이 넘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규모가 커지면서 여러 소모임도 생겼다. 신생아 방, ·유아 방과 같이 아이 연령별로, 재테크 방 등 관심사별로 소모임을 만들며 정보공유가 이뤄졌다. 정보공유를 넘어서 향수·향초 만들기, 아나바다 등의 행사도 진행했다. 무엇 하나 온전히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은 부모학생의 자존감을 떨어뜨리기도 했지만 맘인스누에선 자신이 공동체에 기여한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함께 모여 이야기를 나누고 정보를 나누다보니 대부분 비슷한 경험을 하고 있었다는 걸 느꼈다. 대학이 육아를 병행하는 학생들을 충분히 고려하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학업과 육아를 전부 능숙히 해내고 싶었지만 대학의 환경은 의지만큼 따라주지 않았다. 상황에서 오는 한계를 나만이 아닌 모두가 경험했다는 사실을 느끼는 순간 결심이 섰다.

  ‘우리가 환경을 개선하면 다음 세대는 혜택을 볼 수 있겠구나.’

  - 아이를 일부러 캠퍼스에 데려왔다고 들었다

  이진화 대표 |처음엔 많은 사람들이 대학 내 아이의 존재에 낯설어했다. 학교 건물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처음으로 들렸을 땐 교수님 대여섯 분이 문을 열고 뛰쳐나왔다. 캠퍼스를 아이와 함께 거닐 때면 경비원의 질문을 끊임없이 받기도 했다. 학생이냐, 교직원이냐. 학교에 아이는 왜 데려왔냐. 지금까지 학교에 아이가 온 적이 없기 때문에 나타난 반응이었다. 학교에 아이를 몇 번씩 데려 가다보니 대학도 아이가 올 수 있는 곳이라는 인식으로 점점 바뀌어갔다.”

  - 부모학생을 위한 실질적인 제도 개선에도 힘쓰기도 했는데

  서정원 대표 | 도서관 로비까지 아이가 들어갈 수 있도록 제도개선을 이뤘다. 국공립대인 서울대인 경우, 신분증이 있으면 도서관을 들어갈 수 있지만 아이는 신분증이 없다는 이유로 출입이 불가했었다. 보통 연구의 영감을 도서관에서 많이 얻는데 아이를 데리고 있는 상태로는 도서관 이용 자체가 불가한 상황이었다. 이를 개선해달라고 요청해서 로비까지는 아이의 입장이 허용됐다. 원하는 책을 근로장학생이 찾아주는 것까지 가능하도록 제도가 바뀌었다.”

  이진화 대표 |학생식당에 유아용 식사 의자인 하이체어를 비치해 놓도록 했다. 예전엔 학생 식당에 성인용 의자만 있어서 식탁에 아이를 앉혀놓고 밥을 먹였다. 학교에 하이체어 비치를 요구했더니 영양사 등 여러 사람들이 반대했었다. 왜 학교에 아이를 데려와 밥을 먹냐는 이유에서다. 아동을 위한 시설을 만들어달라는 요청을 끊임없이 한 결과 하이체어를 비치할 수 있었다.”

  눈에 보이는 성과를 내기까지의 과정에서 어려움은 상당했다. 도서관 로비 제도 개선만하더라도 도서관장, 부총장까지 면담을 해야 했다. 그들은 만삭의 몸을 이끌고 부총장에게 제도 개선을 요청했다. 도와주겠다는 답변을 받았지만 제도 마련을 위한 구체적인 지침이 없다는 행정부서의 말이 이어졌다.

  “다른 부서에 연락해보세요. 우리 관할이아닙니다.” “그런 지침이 없어서.”

  행정상으로 제도가 없고 지침이 없다는 소리만 나오는 상황에서 내린 결론은 관련법을 만들자는 것이었다. 법을 만들기 위해선 그 근거부터 명확해야 했고 그 근거 확보를 위해 맘인스누 내에선 스터디가 진행됐다.

  한국연구재단의 연구 공모에도 선정되면서 지원을 받아 국공립 및 4년제 대학의 상황을 조사했다. 또한 하버드, MIT, 시카고, 버클리, 스탠퍼드를 돌아다니며 해외 부모학생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해외 대학에는 부모학생을 위한 어떤 지원책이 있는지 파악했다.

  - 성취를 이루는 과정에서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이진화 대표 |어느 날, 교내 화장실 칸 좌변기 옆에 아기 의자가 생겼다. 처음엔 하이체어 하나 놓는 일조차 무척이나 오래 걸렸다. 맘인스누가 건의를 하지 않았는데도 학교에서 먼저 부모학생을 신경 써줬다니. 우리 아이는 이미 훌쩍 커서 앉을 수 없었지만 감동받았던 기억이 있다. ‘너 이제 학교에 아이 데려와도 돼라고 인정받은 느낌이었다.”

  학내의 육아지원제도가 하나 둘씩 개선되면서 그들은 학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맘인스누에서 박사 학위 수여자가 나오기 시작했고 그 성과가 단체 내에서 공유되며 학위과정을 마치는 회원은 점차 늘어갔다. 몇 년 동안 학교 내 여러 부서를 오고가면서 성과를 이뤄냈지만 아직도 가야할 길은 멀다.

이진화 현 대표는 부모학생 지원 정책이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진화 현 대표는 부모학생 지원 정책이 더 보완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 해외 사례와 비교할 때 부모학생을 위한 제도가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이진화 대표 |실제로 많이 부족한 게 사실이다. 해외 대학은 학생을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경우가 많다. MIT는 아이가 7주 정도가 지나면 학내 데이케어센터에서 아이를 받아준다. 또한, 임신 사실을 학교에다 얘기하면 중간·기말 시험을 미뤄주기도 한다. 하버드 대학의 경우엔 학생이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고 학교 측에서 먼저 면담을 요청해 본인의 시간표와 해외 필드트립 일정을 잘 소화해낼 수 있는지 물어보고 있다. 또한, 수유실이 필요하다면 가까운 동선에 개인을 위한 수유실을 마련한다. 비밀번호가 걸려있는 것은 물론이고 그 수유실 앞엔 보디가드까지 있다. 개별 관리를 통해 육아와 학업 병행이 가능하도록 제도적 지원이 이뤄진다.”

  - 제도적으로 더욱 보완되길 바라는 점은 무엇인가

  이진화 대표 |학점 당 등록금을 매기는 방식으로 전환이 이뤄져야 한다. 현재는 학기 별로 등록금을 납부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학기마다 등록금을 낸다면 보통 네 과목 정도 듣게 되는데 아이를 키우면서 네 과목을 듣기란 쉽지 않다. 한 학기 등록금을 내면서 한 두 과목만 듣기엔 경제적으로 아까운 게 사실이다.

  학점 당 학비 정산제가 내포하는 것은 단순히 돈의 문제만이 아니다. 전공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한 학기만 쉬어도 힘들어지는 학문이 있다. 실험하는 학과들의 경우, 미생물들이 다 죽는 시간이다. 학기 별로 등록금을 납부할 경우, 아이가 어느 정도 클 때까지는 현실적으로 수업을 듣기 힘들어진다. 그렇게 몇 년을 쉬고 오면 배웠던 내용은 잊어버리고 자신감은 바닥을 친다. 몇 년의 휴학보다는 오히려 3학점이라도 들으면서 전공의 감을 놓치지 않길 원한다.”

  서정원 대표 | 제도 개선을 위해선 행정적인 부분도 함께 가야 한다. 학교 행정차원의 도움만으로도 이뤄질 수 있는 복지제도들도 많다. 하지만 담당자들이 이와 관련된 감수성이 없는 경우도 있고, 지원 프로그램을 어떻게 시작하는지 모르는 경우도 있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프로그램 구축을 위한 컨설팅을 진행하고 있기도 하다.”

  “힘든 시간이었지만 함께해서 외롭지 않았던 시절이었어요.” 서정원 대표가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부모이자 대학원생이라는 정체성을 공유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할 사람들을 맘인스누에서 만날 수 있었다. 힘든 시절 버팀목이 됐고 속에만 담아두었던 문제의식을 사회적 범위로 확장하기까지 했다. 서 대표는 부모학생이 제도권 내에 들어오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렸지만 이제는 좀 더 수월해질 것이라 기대해본다고 전했다.

| 이현주 기자 juicy@

사진 | 양태은 기자 aur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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