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져가는 시대의 발자취를 렌즈에 담다
사라져가는 시대의 발자취를 렌즈에 담다
  • 박다원 기자
  • 승인 2021.04.04 15: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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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욱(국어국문학과 81학번) 사진작가 인터뷰
김동욱 사진작가는 "앞으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되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고싶다"고 말했다.

 

과거와 현재를 잇고

기억을 불어넣는 작업

흐르는 시간을 사진에 담고자

 

  “오래된 것, 사라져가는 것에 대한 애정과 연민. 그게 제가 사진 찍는 이유예요.” 농촌 사람들부터 근대 배경의 영화 세트장, 곧 사라질 도시의 건물들까지. 김동욱(국어국문학과 81학번) 사진작가는 지난 20여 년간 역사 속에서 잊혀 가는 것들을 기록하고 상기시키기 위해 수없이 셔터를 눌렀다.

  1995년부터 <農民 : 또 다른 백 년을 기다리며>, <Picture Postcard>, <Old Photo Album>, <강산무진>, <사진에 관하여>, <서울, 심야산보> 등 사진전을 수차례 개최해왔다. 전국 각지에서 개인전만 총 21번을 열었고, 단체 전시전까지 치면 횟수를 셀 수 없다. 그는 잊혀 가는 기억들을 되새기며 역사를 담아내는 사진작가의 행보를 이어가고 있다.

 

  ‘서울에 대한 각별한 사랑

  그의 작품에는 서울 시리즈가 많다. 조선 후기 화가 겸재의 <경교명승첩>에 나타난 서울의 모습을 사진으로 재현하고, 겨울밤 서울 시내를 거닐며 오래된 건물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 서울에 대한 각별한 애정의 근간에는 그의 유년시절이 있다.

  남산 자락에 있는 해방촌에서 태어나 평생을 서울에서 살아왔다. 학창 시절에는 서울 변두리에서 사대문 안을 매일같이 드나들었다. 국민학교는 남산, 중학교는 동대문, 고등학교는 서소문으로 다녔다. “명동에서 버스를 타면 서대문으로 가서 무악재 건너고 홍제동 건너 녹번동까지 가요. 거기서 또 버스를 타야 집에 도착할 수 있었어요.” 서울 시내 곳곳의 변천사를 두 눈으로 확인해왔던 경험은 2019년 개인전 <서울, 심야산보>의 모티브가 됐다. ‘변해가는 서울을 바라보는 씁쓸한 시선이 고스란히 담긴 전시였다.

 

  - <서울, 심야산보>는 어떤 전시인가

  “태어났을 때부터 봐왔던 서울이 낡아가다 이제는 점점 사라지고 있어요. 재개발을 거듭하며 없어지는 옛 서울의 경관이 안타까워서 곧 사라질 건물들의 초상사진을 찍고, 전시회를 열었어요. 1930년대에 지어진 건물도 그렇고, 서울에는 오래되고 신기한 건물들이 많았습니다. 점차 어린 시절을 보낸 뒷골목과 샛강까지 모두 없어져 가니까 추억이 사라지는 것 같아 애석해요. 예전의 서울을 살았던 사람들은 다 정신적으로 떠돌이가 되어버린 것 같달까요. 그런 감정을 사진으로 담으려 했어요.”

 

  순수한 호기심이 예술이 되기까지

  사진을 좋아하기 시작한 건 고등학교 때부터였다. 배재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 매주 목요일마다 전교생이 정동교회에 가서 채플을 할 때면 김동욱 작가는 동네 구경에 흠뻑 빠지곤 했다. 수업을 땡땡이치고 봄가을 덕수궁 미술관에서 열리는 국전을 보러 다녔다. 고궁과 함께 나란히 자리한 근현대 건축물들의 매력에 집에 있는 카메라가 생각이 났다. 그는 금세 사진 촬영에 재미를 붙였다. “친구들이 잘 찍는다고 칭찬하니까 호기심과 뿌듯함에 시작했어요.”

  사진에 점차 재미를 붙여 사진 전공을 고민하기도 했지만 사진학과가 있는 대학이 많지 않아 본교 국어국문학과에 진학했다. 그럼에도 김동욱 작가의 열정은 그칠 줄 몰랐다. 그는 입학하자마자 곧장 본교 중앙사진동아리 호영회에 들어갔다. 선배들과 외국 사진집을 연구하며 듀안 마이클(Duane Michals)시퀀스 포토를 비롯한 60~70년대 미국 사진을 동경했다. 특정 상황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묘사하는 장면들을 모은 시퀀스 포토는 일반 사진보다 파격적인 이야기를 담을 수 있다는 매력이 있었다. “보기 예쁜 사진만 찍어왔었는데, 호영회에서 현대예술로서의 사진을 처음 접했어요. 사진에 생각을 담는 시도를 많이 했고, 이게 훗날 도움이 됐죠.”

 

  ‘를 위한 작업, 그 여정의 시작

  대학 졸업 후 10년간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활동했다. 월간지와 여성잡지에서 화보 등 다양한 사진을 찍고 출판하는 일이 그의 업무였다. “3년 차쯤 되니까 반복적으로 생산만 해내는 업무가 너무 소모적으로 느껴졌어요.”

  여유를 가지고 자신만의 고찰이 담긴 사진을 찍고자 했다. 창작을 향한 열정 하나로 홍익대 산업미술대학원에 진학해 사진디자인을 전공했다. 1995년 대학원 졸업작품전이자 첫 개인전으로 연 전시회가 <農民 : 또 다른 백 년을 기다리며>였다. “1994년이 동학 100주년이었어요. 그즈음에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으로 농산물 수입개방을 시작했죠. 우리나라 농민들의 경쟁력이 없어진 거예요. 동학농민운동 후 100년이 흘렀는데도 농민들의 삶은 별로 나아진 것 같지 않았어요.” 작가는 동학농민군의 후예인 전북의 농민들을 80년대 민중미술 형식으로 찍어 어려운 농민들의 현실을 표현하고자 했다.

1995년 전시 <농민>의 한 작품으로 동학농민군의 후예인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의 한 농민의 모습을 담았다.<br>
1995년 전시 <농민>의 한 작품으로 동학농민군의 후예인 전라북도 정읍시 이평면의 한 농민의 모습을 담았다.

 

  사진이란 진짜 같은 가짜

  필름 사진이 촬영의 정석이었던 시절은 막을 내리고, 2006년부터 디지털 사진의 시대가 시작됐다. “이젠 포토샵의 성행으로 진짜와 가짜에 대한 논의가 무색해진지 오래지만, 20세기에는 사진이 사실을 기록하는 중요한 매체였어요. 현대에 이르러 더 이상 사진은 진실과 증거의 원본이 아니라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죠.” 이에 2006년 개인전 <Picture Postcard>에서 김동욱 작가는 세계 각국의 랜드마크 미니어처를 실제처럼 보이도록 찍었다. 조그마한 미니어처를 밑에서 위로 촬영해 크기를 속이고, 포커스를 흐렸다. 더이상 가짜로부터 진실을 구별하는 절대적 기준이 있을 수 없다는 작가의 경고였다.

 

  프레임 속 만나는 과거의 기억

  2008년에는 <Old Photo Album>이라는 전시를 개최했다. 김동욱 작가는 1930년대의 상하이 도시 가로와 1950년의 서울을 재현한 영화 세트장을 찍어 기억 저편에 존재했던 역사와 사건을 상기시키고자 했다. “2010년에 6·25 60주년 기념 영화를 촬영하고 있길래 그 세트장을 찍어봤어요. 관광객들과 엑스트라 배우들도 프레임에 넣어보고, 실제 역사 속 한 장면인 것처럼 제목도 마음대로 붙여봤죠. 찍다 보니 마치 50년대를 살아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어린 시절 지겹도록 들었던 6·25 얘기들이 생각나기도 하고.” 김동욱 작가는 작업을 하며 지금 우리의 터전을 만든 옛 세대를 이해하고 그들과 화해하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고 전했다.

  그의 작업들은 하나같이 지난날의 시공간에 대한 시각적 기억을 되살리려는 시도다. “사진은 마치 시간을 잡아놓는 거 같아요. 상대방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않고 나만의 것으로 소유할 수 있어요. 잠시 머물다 사라져버리는 것들을 붙잡아 자기 나름의 시각을 투영한 작품으로 승화시킬 수 있다는 거, 그게 제가 사진을 찍는 이유예요.”

2019년 전시의 한 작품으로 1930년대에 완공된 건물을 사진으로 담았다. <br>
2019년 전시의 한 작품으로 1930년대에 완공된 건물을 사진으로 담았다.
2019년 전시의 한 작품으로 종로 5가에 위치한 일본의 옛 민가 형식 건물을 촬영했다. <br>
2019년 전시의 한 작품으로 종로 5가에 위치한 일본의 옛 민가 형식 건물을 촬영했다.

 

  - 앞으로 어떤 사진을 찍고 싶은가

  “역사는 언제나 바른 방향으로 전진한다고 믿습니다. 다만 우리네 역사는 장강처럼 직선으로 흐르지 않고 굽이굽이 흐르는 것 같아요. 방향은 맞을지 몰라도, 그 수많은 곡절마다 억울하게 빠져 죽는 민중들이 생겨나죠. 그 사람들에 대한 연민이 저를 붙잡는 것 같아요. 앞으로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망각되는 민중들의 이야기를 렌즈에 담고 싶어요.”

 

글 | 박다원 기자 wondaful@

사진 | 서현주 기자 zmong@

사진제공 | 김동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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