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란스런 말소리도 흥겨운 웃음소리도 사라지다
소란스런 말소리도 흥겨운 웃음소리도 사라지다
  • 유승하 기자
  • 승인 2021.09.12 23: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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텅 빈 엠티촌 스케치

 

대형펜션들에 더 큰 타격

매출 없어 일용직으로 일해

그래도 다시 올 학생을 기다려

 

  불과 2년 전까지만 해도 학기를 시작하는 봄과 가을이면 각 학과와 동아리에서는 엠티를 떠났다. 세면도구와 양말 위주의 단출한 짐을 챙겨 엠티를 떠나는 건 대학생들의 연례행사였다. 1980년대부터 지금까지 대성리, 우이동, 을왕리 등의 엠티 명소들은 학생들로 북적였다. 대성리와 우이동은 접근성이 좋다는 점에서 엠티의 성지로 불리며 대학생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화창한 날씨, 푸르른 나무, 지저귀는 산새소리는 이전과 같지만 즐거움에 겨운 학생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는 사라졌다. 이제 낯선 고요가 흐른다.

표지판이 대성리 엠티마을의 초입임을 알린다.
오랜 시간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잡풀이 무성한 대성리 펜션의 모습이다.

 

대성리는 침묵 중

  지난 3, 가을하늘이 청명한 가운데 대성리 엠티촌을 찾았다. 수업이 끝나고 다 같이 엠티를 떠나던 금요일 오후였지만 이날대성리역에 내리는 사람은 주민으로 보이는 열 명 남짓이었다. 역을 나와 10분 정도 걸으면 ‘MT마을이라는 큰 표지판이 보인다. 표지판이 가리키는 곳으로 가는 길엔 강물 흐르는 소리와 함께 펜션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낸다. 대형펜션과 족구장, 야외 바비큐장은 여전히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코로나19 이후 대부분의 상권이 그렇듯 대성리 엠티촌도 큰 타격을 입었다. 대성리에서 2대째 민박집을 운영하는 김종현(·57) 씨는 작년 8월 이후 손님을 하나도 못 받았다“2019년부터 운영한 편의점도 매출이 60% 줄었다고 전했다. 대성리 엠티촌은 엠티를 위한 숙박업체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에 방의 크기가 매우 크다. 많은 사람이 모일 수 없는 코로나19 상황에서 특히 큰 피해를 봤다. 대성리에서 대형 펜션을 운영하는 전용태(·68) 씨는 큰 방은 150명까지 수용한다두 명 이상 모이지도 못하는데 여길 어떻게 오겠냐고 말했다.

 

터전 떠나는 자영업자들

  학생들이 없을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도 마주치기 어려웠다. 곳곳의 펜션들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은 듯 잡풀만 무성하고 천막이 바람에 날린 채 방치되어 있었다. 불이 켜진 펜션은 한두 군데뿐이었다. “웬만한 사람들은 다 장사를 포기하고 떠났지.” 전용태 씨는 말했다.

  코로나19 이후 유지비도 못 버는 상황에 대출은 어쩔 수 없는 선택지다. 김종현 씨는 정부 융자로 5000만 원을 빌렸다이 주변에 있는 사람들 대부분이 대출을 받았다고 전했다. 펜션 수익으론 대출 이자도 못 갚는 사장들은 일용직 노동자로 일하기도 한다. “가만히 있으면 마이너스인 상황에 일당이라도 벌려고 낮에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저녁에 대성리로 돌아오는 사장들도 많아요.” 김종현 씨가 말했다.

  대성리에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그의 얼굴엔 씁쓸한 표정이 스쳤다. “IMF, 금융위기, 메르스 다 버티고 50년째 장사하고 있는데 이제는 진짜 문을 닫을 때가 온 것 같아요.”

 

우이동 펜션의 방이 텅 비어 있다.
우이동 펜션의 방이 텅 비어 있다.

 

등산객만으로는 버티기 힘든 우이동

  가평군에 대성리가 있다면 북한산 언저리에는 우이동 엠티촌이 있다. 우이신설선 종점인 북한산우이역은 주말을 맞아 집을 나선 등산객들이 활기를 더했다. 등산복을 입고 배낭을 멘 등산객들은 함께 온 지인, 가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북한산을 올랐다. 등산로와 인접한 먹거리 마을 쪽으로 걸음을 옮기다 보면 백숙, 닭볶음탕, 파전, 도토리묵 등을 파는 식당들이 나타난다그 위로 조금만 더 가면 바로 우이동 엠티촌이다. ‘△△산장’, ‘○○가든이라는 간판을 단 우이동 펜션들은 대부분 식당과 숙박 시설을 함께 운영한다. 계곡 근처에 자리 잡은 식당에는 종종 식사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간간이 손님이 있었지만 코로나19의 타격을 입은 건 우이동 엠티촌도 마찬가지였다. 우이동에서 식당과 민박을 운영하는 김병민(·57) 씨는 등산객 손님은 주말 점심에만 잠깐 있을 뿐이라며 그것만으로는 가게를 운영하기 힘들다고 전했다. 그는 코로나 이전에는 등산객도 훨씬 많았고, 민박뿐만 아니라 식당 손님도 많이 줄었다며 어려움을 토로했다. 직접 문을 열어 보여준 방은 텅 비어있었다. “민박은 지금이 가장 바쁠 때인데 손님이 아예 없습니다.”

  펜션을 운영하는 사람들은 거리두기 인원 제한이 풀리기만을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다. 3대째 우이동에서 장사를 하고 있는 강병철(·43) 씨는 큰 방은 70, 80명가량 받았었는데 10명만 받을 수 있어도 소원이 없겠다고 말했다.

  강병철 씨는 오랜만에 보는 대학생이라며 기자를 반겼다. ‘고려대학교에서 왔다고 밝히니 사장들은 모두 고대생들 우리 집 자주 왔었지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자주 왔던 고려대 3학년 유진이가 생각난다고 말한 김병민 씨는 다시 만날 학생들을 기다리고 있다. 전용태 씨는 언젠가 다시 올 학생들을 위해 방과 마당을 깨끗하게 관리하고 있었다. “학생들 소리에 잠들기도 힘들었었는데 이제 그 소리를 들을 수 없어서 허전한 느낌이 들어요.” 학생들이 엠티를 그리워하는 것만큼 엠티촌도 학생들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유승하 기자 hahaha@

사진조은진·문도경 기자 pres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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