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읽고, 시대를 그리다
역사를 읽고, 시대를 그리다
  • 윤혜정 기자
  • 승인 2021.11.14 22: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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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시백(경제학과 84학번) 역사만화가 인터뷰

조선왕조실록 탐독하며 공부해

학생운동 경험하며 시야 넓혀

“만화에 올바른 역사 담고 싶어”

 

박시백(경제학과 84학번) 화백은 “정확한 역사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전했다.

  우리는 한국의 역사에서 희로애락을 느끼고 지혜를 배운다. 수많은 인물의 이야기로 수 놓인 역사는 존재 자체로도 웅장한 그림이 된다. 박시백(경제학과 84학번) 교우는 한국 역사의 줄거리를 자신만의 그림체로 그려낸다. 조선의 500년 역사를 담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부터 일제강점기의 아픔을 담은 <35년>, <친일파 열전>까지 그는 만화를 통해 독자에게 역사를 전달한다. 그가 처음 펜을 잡은 시작점부터 그의 발자취를 따라가 보았다.

 

  역사 만화가로서의 발돋움

  박시백 화백은 어릴 적 <주먹대장>, <요철 발명왕> 등의 만화책을 읽으며 만화가에 대한 꿈을 키웠다. 대학에 만화학과가 없던 당시, ‘언젠가 만화를 그려야지’라는 목표를 안고 본교 경제학과에 입학했다. 대학 시절 마주한 학생운동은 그를 역사 만화가로 발돋움시켰다. “사건을 보는 시야라든지 정치적 함의라든지, 이런 것들이 다 학생운동을 하며 형성됐죠.” 박시백 화백은 1980년대 후반 활발했던 학생운동 속으로 뛰어들었다. 1988년, 4학년 당시 그는 광주 5·18민주화운동 진상규명을 위해 적극적으로 운동했다. 미국이 광주 유혈진압을 방조했다며 광주 미국문화원 시한폭탄 사건에 참여하기도 했다. 나아가 광주 5·18 운동과 관련한 대자보 만화를 그려 정경대 복도에 부착했다. 이후 총학생회가 총학생회 회보에 정식 연재를 제의했고, 박시백 화백은 그렇게 인생 첫 만화 연재를 시작했다. 그는 “만화를 통해서도 학생운동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느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박시백 화백은 1996년 한겨레 신문 만평 담당자가 된 이후 신문만평을 통해 당시 김영삼 정부를 포함한 사회적 이슈를 비판적으로 전달했다. 그는 다음 해부터 2001년까지 시사만화 <박시백의 그림세상>을 연재했다. “연재 시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사건을 서민의 눈으로 바라보았고, 그 입장을 만화에 담았어요."

 

  조선왕조의 매력에 빠지다

  박시백 화백은 만화뿐만 아니라 역사에도 관심이 많았다. 2001년 <박시백의 그림세상> 연재가 끝난 후 본격적인 조선사 공부를 시작했다. ‘조선왕조실록’을 연구하며 야사가 아닌 실록에 담긴 사실을 기반으로 한 체계적인 역사 만화를 만들고자 했다. 

  그는 마침내 500년 조선 역사를 담은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 시리즈를 2003년부터 10년간 출간했다. 그는 처음 만화를 그릴 때 ‘재미’에 초점을 두었다. 조선왕조실록을 공부해갈수록 ‘재미’보다는 ‘객관적인 사실 전달에 집중해야겠다’는 생각이 커졌다. 그는 “조선왕조실록은 굉장한 역사적 유산”이라며 “당파로 인한 왜곡 없이 사실만을 기록하려는 사관들의 엄중한 자세와 실록의 기록, 보관 시스템은 대단하다”고 전했다. 조선왕조실록은 왕조차도 볼 수 없도록 만들어 정치적 권력에 의한 왜곡을 철저하게 차단했다. 박시백 화백은 “이러한 엄격한 관리 덕분에 후대 사람들이 그 시대의 역사를 엄정하게 바라보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렇게 만화까지 그릴 수 있다”고 말했다.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그리며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을 묻자 박시백 화백은 고민 없이 ‘세종대왕’이라고 답했다. 그는 세종대왕을 “우리 역사에서 하늘이 보낸 선물”이라 표현했다. 그가 만화를 그릴 당시, 세종대왕의 업적이 가려져 있었다. 박시백 화백은 실록에 적힌 세종대왕의 업적을 있는 그대로 만화에 담기 위해 노력했다. 박 화백은 세종실록을 꼼꼼히 정독하며 그의 업적을 정리했다. “실록을 다 보고서 느꼈던 점은, 우리가 막연하게 생각하는 것보다 세종대왕은 훨씬 뛰어난 사람이라는 거에요.” 

박시백 화백은 2003년부터 10년에 걸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했다.
박시백 화백은 2003년부터 10년에 걸쳐 <박시백의 조선왕조실록>을 출간했다.

 

  근대 역사의 아픔을 담다

  10년에 걸쳐 조선의 역사를 그려낸 후, 박시백 화백은 근대사 공부에 돌입했다. ‘조선왕조실록’이라는 검증된 기본 텍스트가 있는 조선사와 달리, 신문 사료부터 일제 경찰의 수사 기록까지 온갖 자료가 난무한 근대사 공부는 까다로운 일이었다. 그는 왜곡 없는 만화를 그려내기 위해 온갖 노력을 했다. '독립기념관’ 사이트를 통해 신뢰성 있는 사료를 찾았으며 직접 현장 답사를 하기도 했다. 각고의 노력 끝에 2018년,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들의 이야기를 담은 <35년>을 출간했다. 여러 자료에서 뽑아낸 공통된 사실만을 이야기에 담으려니 세세한 재미를 추구하기는 어려웠지만, 덕분에 진실된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 

  조선사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인물로 서슴없이 세종대왕을 뽑던 모습과 달리, 그는 가장 기억에 남는 독립운동가를 물었을 때는 쉽게 대답하지 못했다. “알려진 공의 크기와 무관하게 독립운동가분들 모두가 우리에게 존중받아야 해요.” 친일파는 자신의 친일행적을 정당화하기 위해 ‘그 시절 친일을 하지 않고는 살 수가 없었다’고 말하곤 한다. 친일파들이 말하는 그 시절 독립운동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내놓고 싸웠다. 박 화백은 목숨 바쳐 싸운 독립운동가를 최대한 많이 알리겠다는 사명감으로 1000여 명의 인물을 담아 만화를 집필했다. 

  박 화백은 일제강점기 공부를 하며 독립운동가에게 감사를 느끼며 동시에 친일파 청산에 대해 고민했다. 해방 직후 진행된 ‘반민족행위처벌법’은 흐지부지 끝나고, 친일파 청산의 꿈은 무산됐다. 2000년대가 돼서야 ‘친일인명사전’이 편찬되며 친일파 동상 철거, 친일파 후손의 재산 환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박시백 화백은 친일파 청산에 이바지하기 위해 올해 8월 <친일파 열전>을 출간했다. “독자들이 이 만화를 통해 몰랐던 친일파에 알게 되는 것 혹은 알고 있던 친일파라도 그의 새로운 친일 행위를 알게 되는 것만으로 만족해요.”

 

  역사를 그리는 자의 사명

  사극 드라마나 영화의 역사 왜곡에 대해 박시백 화백은 “너무 답답하다”며 “오히려 역사 판타지 작품이 낫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킹덤>과 같은 작품은 시대 설정을 조선 시대로 했을 뿐, 작품 속에 등장하는 이야기는 모두 판타지이다. 이 경우 작품을 그냥 재미로 볼 수 있지만, 특정 시대와 특정 인물이 등장하는 작품은 그저 즐겁게 볼 수만은 없다. 작품을 그릴 때 정확한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역사 만화가로서 그의 사명이다. 그는 “잘못 알려진 역사를 바로잡고 정확한 역사를 독자들에게 알리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역사 만화가로서 그의 여정은 현재 진행형이다. 만화를 그리기 위해 그는 거의 역사 전문가가 됐다. 인물과 사건, 그리고 시대적 쟁점을 위주로 공부한 역사를 그림으로 표현한다. 조선사와 근대사를 거쳐 이번에는 차기작으로 고려의 역사를 만화로 담기 위해 그는 오늘도 펜을 든다. “지금까지 온 것만으로 행복하지만, 할 수 있는 데까지 역사 만화를 그려내고 싶어요.”

 

글 | 윤혜정 기자 samsara@

사진 | 김예락 기자 emancipate@

사진제공 | 휴머니스트출판그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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