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 본지 여론 코너에서 기획됐던 ‘교수님은 스무 살’은 본교 교수의 대학 시절 이야기를 담는 코너다. 새로운 공간에서 마주하는 스무 살의 풍광은 낯섦과 동시에 설렘을 가져다 준다. 저마다 겪는 시대는 다를지언정, 누 구에게나 뜨거웠던 스무 살의 기억이 있다. 2020년 ‘교수님은 스무 살’ 코너에 기고했던 김순남(문스대 문화유산융합학부), 안준용(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를 다시 만나 그 시절 스무 살의 이야기를 물었다.


불확실성 포용이 결국 삶

우연의 연속이 현재 만들어

 

안준용 교수의 20대 모습

  “대학 시절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이 무엇이었나요?”

  “솔직히 없습니다.”

  새 학기 개강을 맞아 안준용(바이오시스템의과학부) 교수와의 인터뷰에서 나온 질문과 답변이다. 안 교수는 대학 시절 딱히 기억나는 추억은 없지만, 그래도 그때 못했던 것은 지금도 못했을 거라 아쉬움은 없다고 망설임 없이 말했다. 학생들은 힘든 수험 생활을 견디고 손에 쥔 대학 생활에서 의미 있는 무언가를 만들고, 남겨야만 할 것 같은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그 생각이 자유로운 대학 생활을 옥죄기도 한다2020년 본지의 여론연재면 코너 교수님은 스무 살에 실린 경계인 선언의 필자인 그에게 슬기로운 대학 생활에 대해 물었다.

 

  - 스무 살이 훌쩍 넘어 대학에 들어갔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나

  “인문학을 하고 싶어서 외국어고등학교에 진학했는데 막연히 의료선교사가 되고 싶다는 마음에 자연계로 바꿔서 공부를 다시 시작했어요. 재수했지만 실패했고, 삼수 때는 나름대로 시험을 잘 본 줄 알았는데 수능에서 선택과목 표시를 안해 생각보다 낮은 점수가 나왔지만 그냥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예상치 못하게 다쳐 일찍 제대했어요. 신학에 대한 회의감도 들기 시작해 선교사의 길도 가지 않기로 했습니다. 그러다 몸도 아프고 한국에서 뭘 할지도 몰라 지금의 아내와 호주에 이민을 갔습니다. 그리고 대학원에 진학했어요. 정확하게는 대학원을 가기 위해 이민을 간 게 아니라 이민을 가야 해 대학원에 진학하게 된 거죠.”

 

  - 대학 진학부터 유학 결심까지 지금의 연구 분야와 큰 연관이 없어 보인다

  “호주에서 대학원에 진학하면 교수에게 직접 연락해 지도 학생으로 뽑혀야 했어요. 학문을 깊이 있게 하겠다는 마음으로 유학을 온 것도 아니고, 공부를 엄청나게 잘하는 것도 아니고, 영어를 잘하는 것도 아니라 처음엔 저를 받아줄 것 같은 많이 유명하지 않은 교수님께 연락했어요. 그게 잘 안됐어요. ‘이번 학기는 잘 안되겠구나라고 생각하다가 어차피 떨어졌는데, 진짜 관심 있는 분한테 연락을 해보자고 결심했어요. 운 좋게도 존 마틱이라는 정말 유명한 교수님께서 답장을 주셨어요. 덕분에 유전체 기술이라는 분야를 배우게 됐고 지금까지 몸담고 있습니다.”

 

  - 우연이 모여 지금을 만든 것 같다. 학생들은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재밌는 얘기네요. 불확실성은 계속 등장하잖아요. 저도 제 인생을 예측할 수 없어 혼란스러울 때가 있었어요. 그런데 불확실성을 포용하는 게 결국 삶이잖아요. 사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게 정상이에요. 사람은 깨진 계획에 대처하면서 점점 단단해지니까 마냥 피하려고만 하지는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특히 대학 생활에서 불확실성은 자기만의 선택지를 만들어주는 존재라 생각해요. 2년 전 기고도 학생들이 그 선택지를 스스로 고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썼어요.

  그리고 너무 뻔한 이야기일지는 모르겠지만, 사람이 살면서 한두 번쯤은 기회가 오는 것 같아요. 그게 무엇일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와요. 그러니까 계획대로 되지 않아도 괜찮다고 이야기해주고 싶어요. 기회가 올 때까지 불확실성 속에 사는 자기 자신을 믿어주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해요.”

 

  - 학부생 시절 인상 깊었던 추억이 있나

  “놀랍게도 없어요. 저는 학교를 늦게 들어가기도 했고 소위 말하는 아싸로 지냈거든요. 1, 2학년 때는 선교사를 꿈꾸면서 종교에 몰두했고 그 이후엔 몸이 아파서 학교 생활을 제대로 못 했어요. 그래도 아쉬움은 없어요. 그때 못했던 건 지금도 못 했을 거니까요.”

 

  - 보통 대학생 때 뭔가를 남겨야 한다는 강박감이 생기곤 하는데

  “대학에 와서 많은 사람을 만나고 경험하는 것은 좋다고 생각해요. 하지만 그것에 대한 강박에 빠질 필요는 없어요. 그런 강박감이 이해되긴 합니다. 고등학교 때는 누릴 수 없었던 엄청난 자유에서 오는 무료함이 강박감이 되는 것 같아요. 사람은 고독을 잘 견디지 못하기 때문에 그런 순간들이 더 힘들 수 있죠. 그래서 그 시간을 내면화해 자기만의 시간으로 만드는 게 중요한 것 같아요. 막연히 배낭여행을 가야 한다’, ‘친구를 많이 사귀어야 한다가 아니라 온전히 자기를 알아가는 시간을 써야 하는 거죠.”

 

  - 신입생과 새 학기를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남기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쓰고 정리하는 일을 많이 해봤으면 좋겠어요. 제가 전공하는 과학을 비롯한 많은 분야에서 커뮤니케이션이 정말 중요합니다. 어떻게 하면 의사소통 능력을 늘릴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을 대학 때 많이 해보면 좋을 겁니다.

  대학 시절을 돌이켜 보면 딱히 생각나는 추억은 없어도 교수님들을 많이 찾아다니면서 조언을 구했던 기억이 있어요. 여러분도 부담 없이 고민이 있을 때 교수님들께 조언을 구하고 대화를 많이 해보셨으면 좋겠습니다.”

 
글 | 이정우 편집국장 vanilla@
사진제공 | 안준용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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