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이도역 참사로 시작된 투쟁

이동권서 노동·교육권까지

 

2022년 3월 혜화역. 장애인 활동가들이 ‘장애해방가’ 반주에 맞춰 손을 흔들고 있다.

  “반토막 몸뚱이로 살아간다고 친구여 이 세상에 기죽지마라. 삐뚤어져 한쪽으로 사느니 반쪽이라도 올곧게. 말뿐인 장애복지 법 조항마저 우리의 생존을 비웃고 있다.”

  출근길 인파가 줄을 잇는 11일 오전 8시의 4호선 혜화역 5-3 승강장. 스피커를 타고 흐르는 ‘장애해방가’가 귀를 울린다. 전동휠체어를 탄 장애인과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상임공동대표=권달주, 전장연) 활동가들이 ‘지하철 출근 선전전’을 위해 마이크와 피켓을 들고 모였다. 지난해 12월 6일 시작돼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는 혜화역 지하철 출근 선전전은 ‘장애인 권리예산투쟁 확보’를 목표로 한다. 2001년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의 불씨로 시작된 장애인 이동권 투쟁이 올해로 21주년을 맞이했다. 21년동안 장애인 이동권 투쟁의 시위는 다양하게 전개됐으나 투쟁의 골자는 언제나 하나였다. 장애인 이동권 보장이다.

 

  “왜 우리는 평범한 일상에서도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가”

  2001년 1월 아들 집에서 설을 쇠기 위해 상경한 장애인 노부부가 오이도역의 수직형 휠체어 리프트에서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했다. 당시 휠체어에 타고있던 장애인 박소엽(여·71) 씨가 사망했으며, 남편 고재엽(남·71) 씨는 중상을 입었다. 오이도역 리프트 추락 참사의 대책 마련을 위해 ‘장애인 이동권 쟁취를 위한 연대회의’가 결성됐으나 비극은 되풀이됐다. 이듬해 5월 지체장애인 윤재봉(남·63) 씨가 발산역 계단 난간의 경사형 리프트를 이용하다 목숨을 잃었다. 승강기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서울 시내 역사 곳곳에 설치된 휠체어 리프트는 ‘살인기계 리프트’가 됐다.

  장애인들은 ‘안전한 대중교통을 원한다’며 지하철과 버스를 점거하는 투쟁을 이어갔다. 목에 사다리를 끼우고, 쇠사슬로 휠체어를 감싼 채 지하철 선로에 자리 잡았다. 2002년 국가인권위원회 점거와 39일 간의 단식 농성 끝에 서울시는 △2004년까지 서울시내 모든 역사에 승강기 설치 △시내버스 노선 내의 저상버스 도입 △특별교통수단 도입을 약 속했다. 2005년 ‘교통약자의 이동편의 증진법(교통약자법)’이 제정되면서 비로소 장애인의 이동권이 하나의 권리로 명시됐다.

 

2002년 종로. 오이도역 장애인 추락 참사 1주기 집회에서 휠체어를 탄 장애인 4명이 목 에 사다리를 걸고 행진 대열을 이끌고 있다.

 

2002년 9월 11일 서울 시청역. 장애인 활동가들이 지하철 선로로 내려가 지하철 운행을 막고,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요구하고 있다.

 

2021년 세종시. 활동가들이 장애인은 탈 수 없는 시외버스 차 밑으로 들어가 ‘장애인 이동권 보장’을 촉구하고 있다.

 

  지하철 승강기·저상버스 도입 ··· 얼마나 더 기다려야

  장애인들의 이동권 보장 요구에 정부와 지자체는 꾸준한 약속과 다짐으로 답했다. 그러나 온전히 지켜지는 경우는 드물었다. 서울시는 2004년까지 지하철 전 역사에 승강기를 설치할 것을 약속했지만 이듬해 5월 시내 지하철 역사 46곳에는 승강기의 설치가 불가함을 발표했다. 구조물 특성(19곳), 보도 폭 협소(13곳), 승강장 폭 협소(11곳), 민원 및 도시계획 사업 보류(3곳) 등의 이유였다.

  변화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2021년 기준 서울 시내 지하철 역사 중 16곳을 제외한 모든 역에 승강기가 설치됐다. 91.7%에 달하는 도입률이다. 그럼에도 ‘아직 부족하다’ 답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크리스마스를 맞아 명동을 찾았던 지난 겨울, 4호선 명동역 역무원으로부터 ‘이곳에는 승강기가 없으니 휠체어를 탄 장애인은 내리지 말라’는 안내를 들었습니다. 결국 승강기가 있는 회현역으로 돌아가 20분 가량을 걸은 후에야 명동에 도착할 수 있었죠.” 안일환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활동가는 “비장애인에겐 사소하고 당연한 것이 우리에겐 그렇지 않다”며 ‘2022년까지 모든 지하철역에 승강기를 설치하겠다’는 서울시의 약속 이행을 촉구했다.

  버스의 경우는 갈 길이 더욱 멀다. ‘교통약자법’에 따라 2007년 국가계획으로 수립된 3차례의 ‘교통약자 이동편의 증진 5개년 계획’ 역시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했다. 1차 계획에서 2011년까지 저상버스를 31.5% 도입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실보급률은 12%에 그쳤다. 2020년 9월 기준으로도 전국 저상버스의 실보급률은 28.4%에 불과하다. 1차 계획의 목표(31.5%)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이마저도 지방자치단체의 예산 사정에 따라 차등이 생겼다. 서울시는 2025년까지 시내 저상버스 도입률을 100%로 확대하겠다고 밝혔지만 2020년 9월 충남의 저상버스 보급률은 9.8%, 울산은 12.3%였다.

 

  “예산 없이 권리 없다”

  “2005년 교통약자법이 제정됐을 때만 해도 ‘이걸로 이동권 투쟁은 끝이겠구나, 앞으론 다른 장애인 권리투쟁을 시작하겠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아직까지 이동권 투쟁을 하고 있을 줄은 몰랐네요.” 11일 혜화역 5-3 승강장에 선 이형숙 서울시장애인자립생활센터협의회 회장이 지난날을 돌이켜보며 말했다.

 

2022년 3월 혜화역. 장애인 활동가가 혜화역 5-3 승강장으로 향하고 있다.

 

2022년 3월 혜화역. 장애인 활동가가 발언하고 있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등 장애인 단체들은 지난해 12월 6일부터 장애인 이동권 정책의 실질적 예산 확보를 위해 ‘혜화역 지하철 출근 선전전’에 돌입했다. 투쟁 20일만인 2021년 12월 31일 ‘교통약자법’ 개정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개정 법안은 ‘시내버스 대·폐차시 저상버스 도입 의무화’와 ‘광역이동지원센터 설치 의무화’를 주된 내용으로 한다. 한명희 전장연 조직실장은 “교통약자법의 개정법 통과를 환영하지만, 장애인 이동권을 온전히 보장하기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다”고 지적했다. 법안은 시내버스·마을버스 등을 교체할 때 의무적으로 저상버스를 도입하도록 했지만, 시외버스는 대상에서 제외했다. 도로 구조·시설 등이 저상버스 운행에 적합하지 않다고 승인받으면 저상버스를 도입하지 않는다는 예외 규정도 뒀다.

  개정법을 통해 도입되는 광역이동지원센터는 시·군간 장애인 특별 교통수단의 원활한 환승을 지원하기 위한 시설이다. 그러나 국가가 센터 설치·운영비를 ‘지원할 수 있다’고 규정한 점도 장애인 단체의 지적 사안이다. 특별교통수단에 대한 원안은 ‘해야 한다’로 중앙정부의 예산 책임을 의무로 규정했다. 본회의 통과과정에서 수정된 ‘할 수 있다’의 임의 규정은 예산 반영에서 법적인 강제성이 부과되지 않는다.

  전장연은 혜화역 선전전을 통해 △특별교통수단 운영예산 △장애인 평생교육시설 예산 △탈시설지원 예산 △장애인활동지원서비스 예산을 포함하는 장애인권리예산의 배정을 촉구하고 있다. 장애인 이동권 투쟁은 마무리 되지 않았다. 대신 장애인 노동권과 교육권, 그리고 탈시설 정책 투쟁으로 그 대상이 넓어졌다.

 

글│장예림 시사부장 yellme@

사진│장예림·문원준 기자 press@

사진제공│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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