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담기구로 재외동포청 설치해야”

문제 해결과 업무효율 위한 첫발

외교부·법무부 이견에 차질 우려

 

 

  지난 9일 치러진 20대 대선에서 주요 후보 4인 모두 재외동포를 위한 핵심 공약으로 재외동포청 설치를 내걸었다. 재외동포에 관한 업무를 전담하는 단독기구를 신설해 이들을 체계적으로 지원할 근간을 마련하겠다는 약속이다.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은 17일 미주 한인을 비롯한 재외동포들에 당선 인사를 전하며 재외동포청 설립 약속을 지키겠다는 서한을 띄워 공약 이행을 재차 약속했다. 그간 재외동포청 설립은 18, 19대 대선에서도 공약으로 거론됐지만 실현되지 않아 동포들의 숙원사업으로 남았다또 한 가지는 재외동포기본법 제정이다. 재외동포청 설치 외에도 동포들의 권익 신장에 기여하는 정책을 계획하고 추진하는 데 효과적인 법적 근거로서 기본법을 제정하라는 요구다.

 

  동포들의 문제해결 첫 단추

  국내 재외동포 사회에서는 동포들의 비자 문제가 꾸준히 논의됐다. 법무부에서 출입국관리법 시행령에 따라 외국 국적 동포에게 발급되는 비자는 두 가지로, 재외동포(F-4) 비자와 방문취업(H-2) 비자가 있다. 두 비자 모두 최초 3년까지 국내체류를 보장하지만, F-4 비자는 조건 없이 계속해서 연장할 수 있는 데 반해 H-2 비자는 직장에 따라 1년에서 110개월만 연장할 수 있다. 취업 범위에서도 H-2 비자는 단순노무직으로 한정된다. H-2로 국내에 입국하는 동포들은 F-4 비자로 갱신하고자 하는 경우가 많지만, 비자 변경을 위해서는 국내 기술 자격증을 갖거나 소도시에서 일정 기간 근무하는 등 자격 조건이 따른다. 하지만 재외동포들은 언어 미숙 등의 이유로 자격증 취득이나 취업에 어려움이 있는 게 현실이다. 재외동포와 함께 입국한 미성년자 자녀의 비자 문제도 꾸준히 언급되는 주제다. 지난해 12월 재외동포법이 개정되기 전까지, 재외동포(F-4) 비자로 들어온 동포들의 미성년자 자녀들은 동반입국(F-1) 비자로 들어왔다가 성년이 되면 비자가 만료돼 체류 자격을 잃었다. 하지만 개정 후에는 성인이 된 자녀도 방문취업(H-2) 비자를 얻을 수 있게 됐고, 재외동포의 초중고 재학 자녀에게도 재외동포(F-4) 비자를 부여해 상황이 나아졌다. 물론 F-4 비자를 얻는 것은 한국에서 재학하는 자녀들에게만 해당한다는 점에서 여전히 한계가 있다.

  전문가들은 재외동포기본법이 동포사회의 복잡한 법적 지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실마리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최성구 지구 동포연대 사무국장은 재외동포기본법이 제정되면 동포들을 위한 정책의 기본적인 계획을 수립·시행·평가하는 법적 틀을 갖출 수 있다국내 동포들 사이에서 지적됐던 재외동포(F-4) 비자 단일화나 방문취업(H-2) 비자 폐지에 대해 더 효과적으로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가령 김석기 국민의힘 의원이 대표발의한 재외동포기본법안 제34항에서는 국가는 재외동포가 대한민국에 출입국하거나 대한민국에서 체류하는 경우 편의를 제공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기본법이 제정된다면 이 조항을 근거로 재외동포들의 비자 문제를 해결하도록 촉구할 수 있다.

  해외에 거주하는 동포(재외국민)들에게도 재외동포기본법 제정은 반가운 소식이다. 최근 20대 대선에서 재외선거제도의 불편함이 지적됐는데, 거주국가의 재외공관에서 선거인으로 등록한 뒤 몇 없는 투표소로 장거리를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이었다. 재외동포기본법이 제정되면 이런 문제도 효과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 재외동포기본법안 제16조에서 국가는 재외국민의 참정권 행사를 적극 보장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도록함이 논의의 근거가 되는 것이다.

 

  외교부도 법무부도 아닌 단독기구

  처음 논의된 1997년 이후, 재외동포기본법은 약 30년 동안 법안 통과가 더디게 진행됐다. 점차 속도가 붙기 시작한 것은 202011월에 재외동포기본법안이 발의되면서부터다. 과거에는 추상적인 수준에서 재외동포의 권익 신장을 논했다면, 2020년 이후로는 실질적인 제도화에 초점을 맞춰 논의가 이뤄지기 시작했다. 최성구 사무국장은 과거에는 혈통으로 한인 동포를 우대하는 것이 인종차별로 보일 수 있다는 외교부의 우려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최근부터 외교부에서 적극적인 자세로 임하고 있어 재외동포기본법 제정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하지만 현재 법무부와 외교부 사이 이견으로 인해 논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다. 법무부에서는 동포들의 국내 출입국과 법적지위를, 외교부에서는 동포들의 해외거주 관련 업무를 맡고 있다. 이에 재외동포 관련 업무를 통합해서 관리해야 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됐다. 동포들 사이에서는 재외동포기본법이 단일한 모법이 아니라 외교부와 법무부로 양분되는 모습으로 논의가 이뤄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나온다. 최 사무국장은 재외동포라는 신분에서는 언제든 터전을 옮길 수 있으므로 재외동포를 단순히 국내동포와 해외동포로 구분할 수 없다외교부와 법무부가 법안을 국내와 해외로 나눠 논의할 경우, 기본법의 핵심인 종합성과 체계성이 의미가 흐려질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재외동포기본법은 다른 행정부처에서 독립된 전담기구인 재외동포청을 설치할 것을 주요 내용으로 두고 있다. 재외동포기본법안 제7조에는 재외동포청 설치를 규정하고 있으며, 5년마다 재외동포정책에 관한 기본계획을 수립할 것을 골자로 한다.

 

  국가 업무효율 높일 기본 도구

  재외동포기본법은 동포들의 권익 신장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국가의 효율적인 업무 분담에도 효과적이다. 기본법이 제정되면 정책을 제도화하고 시행할 때 모법으로서 주요한 길잡이가 생기기 때문이다기본법 없이 재외동포 정책을 마련하면 외교부, 법무부, 보건복지부, 고용노동부 등 여러 행정부처가 동시에 관여해 업무가 비대해지고, 이는 비효율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이승우(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부처들의 업무가 서로 겹치는 중복투자를 지양하고 정책 시행의 효율성을 높이는 차원에서도 재외동포기본법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기본법을 통해 제각각 존재하는 재외동포 지원 법률에 체계를 마련해 정책 시행에 효율을 더할 수도 있다. 이승우 교수는 재외동포재단법, 한국국제교류재단법, 재외동포법 등 관련 법들을 묶는 체계가 없지만, 재외동포기본법을 통해 이 체계를 정비할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예로든 재외동포재단법과 재외동포법은 각각 1997년과 1999년에 제정됐지만, 체계적인 집행이 어려울 뿐 아니라 모국과 유대를 강화할 정책은 미미한 상황이다. 고려인 지원 단체 ‘()너머의 김영숙 상임이사는 기존의 재외동포법은 출입국 관리에 관한 내용이고 기본적인 모법이 없어서 동포들을 위해 다양한 사업을 효과적으로 펼치기 어렵다국내 체류 동포들에 대한 정착지원뿐 아니라, 거주국으로 돌아갔을 때를 대비해 모국과의 교류도 포괄하는 전반적인 규정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진영(인하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기본법은 적절한 제도화와 정책 시행에 있어 필수적이라며 재외동포 문제뿐 아니라 모든 사안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라고 강조했다.

 

  법안 심사 계류 중, 동포연대 나서

  2020년부터 현재까지 전해철(2020.11), 안민석(2020.11), 서일준(2021.5), 김석기(2021.9) 의원은 재외동포기본법안을 각각 대표발의해 동포들을 지원하는 법적 장치를 마련하고자 시도해왔다. 재외동포의 권익 향상과 기본법 제정 필요성에 대해서 양당 의원들도 동의하고 있다. 국회에서 법안이 계류 중인 가운데, 지난달 16, 국내외 동포단체 등 총 88개 단체(324일 기준 92)가 참여한 재외동포기본법 제정 100만인 서명 동포시민연대가 출범해 서명운동으로 동포사회의 목소리를 모으기 시작했다. 동포시민연대는 서명문에서 재외동포의 기본권리를 밝히고 통합적 서비스를 제공하며, 체계적인 지원정책을 맡을 독립된 전담기구 설치·운영 규정이 담긴 재외동포기본법을 새로 만들어야 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로부터 한 달 뒤, 지난 24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동포시민연대는 제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재외동포기본법 제정과 재외동포청 설치를 촉구했다. 1997년 재외동포기본법이 처음 제안된 이래 현재 가장 열띠게 논의되고 있는 모습이다.

  재외동포기본법이 동포들에게 실효성이 있냐는 물음에, 전문가들은 재외동포 정책을 제도화한다는 것 자체에서 의의를 찾는다. 이진영 교수는 제도화한다는 것은 구체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예산을 배치해 사업이 가능하도록 하는 법적 토대를 구축하는 일이라며 정책 시행 후에는 그 효과를 검토하고 더 좋은 정책이 되도록 하는 선순환 구조의 시작점에 설 수 있다고 기본법의 효과를 짚었다.

 
글 | 김영은 기자 zerois@
인포그래픽 | 김연수 기자 l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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