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단산업계, 인력난 시달려

학생들은 학과 운영에 만족

전임교수 없는 운영, 지속 어려워

 

  지난 1월, 본교는 2023년 ‘차세대통신학과’를 신설하고 매년 30명의 신입생을 선발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을 통해 신설된 학과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는 대학과 산업체, 정부 등의 협력을 통해 운영되는 학과다. 재학생 대부분은 특수 교육과정을 거친 후 협력 산업체에 취직한다. 삼성전자뿐만 아니라 SK하이닉스, LG디스플레이 등 다양한 기업이 첨단산업 분야에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를 신설하고 있다. 특히 반도체 분야는 그 수가 더욱 많다.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가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해 신설된 본교 공과대 반도체공학과 역시 SK하이닉스와의 협력으로 운영되고 있는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다.

  세계적으로 첨단기술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산업계는 전문 인력 확대를 위해 채용조건형 계약학과의 필요성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계약학과는 운영 전부터 ‘취업양성소’라는 우려를 마주하게 됐다. 깊이 있는 교육을 통해 효율적으로 전문 인력을 양성할 수 있으리란 기대와 운영 안정성에 대한 우려 속, 계약학과는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본교 ‘차세대통신학과’는 삼성전자와의 협력으로 운영되는 계약학과다. 2023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첨단산업 수요 급증에 인력난 심각

  한국 첨단산업계는 현재 인력난을 겪고 있다.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한 반도체, 통신, 컴퓨터, 인공지능, 디스플레이 등 첨단산업에서 인재 확보는 성패를 좌우한다. 현재 배출되는 대졸 인력으로는 인재 확보에 무리가 있다.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안기현 전무는 “2020년 기준 우리나라 반도체 기업의 채용공고 규모는 약 1만 명이었으나 실제 채용 인원은 9000명 정도”라며 “주요 기업을 대상으로 산정한 수치기에 실제로 부족한 인력의 규모는 더욱 클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박재근(한양대 융합전자공학부) 교수 역시 “현재 대학에서 배출되는 반도체 전공자만으로는 필요한 인력의 10%도 충족하지 못한다”며 “전공 지식이 부족한 직원을 대상으로 재교육을 해야 하니 기업이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세계 각국은 첨단산업 인력난을 해결하기 위해 대학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대만은 지난해 5월 첨단기술산업의 규제를 완화하고 지원하는 법안을 마련했고, 대만대를 비롯한 4개 국립대에 반도체 대학원이 새로 설립됐다. 중국 역시 지난해 말 베이징대 등 여러 대학에 반도체 전공과정을 마련했다.

 

  정원 제약 없는 계약학과에 주목

  한국 산업계가 꾸준히 공학계열 학과 정원 확대를 요구했으나 정원 분포를 산업계의 수요에만 맞추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수도권 대학의 정원은 ‘수도권정비계획법’에 따라 제한된다. 관련 학과의 정원을 늘리기 위해서는 다른 학과의 정원을 줄여야 한다. 대학 입장에서는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이에 ‘채용조건형 계약학과’가 인력난의 해결책으로 제시됐다. 계약학과는 대학 전체 정원 제한으로부터 자유롭다. 기업과의 연계를 통한 계약학과는 타 학과와 달리 ‘산업교육진흥 및 산학연협력촉진에 관한 법률’에 따라 운영된다. 별도의 규정을 바탕으로 설치·운영되기 때문에 정원에 포함되지 않는 것이다. 안기현 전무는 “현 인력양성시스템은 비탄력적이라 늘어난 수요를 반영하지 못한다”며 “현재 시스템상에서는 정원 제약이 없는 계약학과가 기업과 사회에 꼭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정철(서울대 교육학과) 교수는 “계약학과는 대학의 보수성 속에서 급변하는 사회적 요구를 반영하기 위한 타협의 결과”라며 “정원외 학생을 선발해 재정적 어려움의 돌파구로 활용할 수 있다”고 했다.

  국내 대학마다 채용조건형 계약학과가 늘어나고 있다. 본교 반도체공학과와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는 지난해 운영을 시작했다. 삼성전자와 협력한 카이스트 반도체시스템공학과, 포스텍 반도체공학과는 2023년부터 신입생을 선발할 예정이다. 서강대 역시 2023년 신입생 선발을 목표로 SK하이닉스와 협력한 시스템반도체공학과를 준비 중이다.

  반도체 분야뿐만이 아니다. 본교 일반대학원 배터리-스마트팩토리학과와 본교 차세대통신학과, 연세대 디스플레이융합공학과도 2023년부터 운영될 예정이다. 삼성SDI는 배터리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 포스텍, 서울대, 카이스트, 한양대와 차례로 협약을 맺었다.

  계약학과는 특정 분야에서의 취업을 목적으로 운영되는 학과기 때문에 집중 학습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다양한 분야를 함께 다루는 기존 공학계열 학과와의 차이점이다. 박재근 교수는 “기존 학과에서는 학부 수준으로 한 가지 분야에 대해 심도 있는 교육을 받기 어렵다”며 “계약학과에서는 학생들이 필요한 공부를 깊이 있게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각종 지원에 학생들은 만족

  계약학과에 진학한 학생들은 취업 걱정 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학과에 대체로 만족하고 있었다. 홍혜진(공과대 반도체공학21) 씨는 “타과에서 1학년 때 듣는 기초 과목이나 실험 과목 없이 커리큘럼이 진행된다”며 “어렵긴 해도 수업 시간에 보충 설명이 되니 효율이 높다”고 말했다. 학생들은 실무진 초청 강의를 통해 학문 외적인 부분도 접할 수 있다. 반도체공학과 재학생인 임모 씨 역시 “전공 분야와 관련 없는 수업을 듣지 않아도 되니 만족스럽다”고 언급했다.

  입사 시험, 취업 시 계약 조건과 같은 구체적인 사항에 대한 안내가 없는 등 아쉬운 점도 있었다. 임모 씨는 “신설학과라서 발생하는 문제라 생각한다”며 “시간이 지나면 해결될 것”이라 기대했다.

  윤혜준(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21) 씨는 “학생 대부분이 2학년 2학기부터 삼성전자 입사 시험 절차를 밟는다”며 “학과 차원에서 각종 특강을 무료로 지원하고, 면접 스터디 및 모의 면접을 관리해줘서 편하다”고 말했다. 성균관대 반도체스템공학과는 2006년부터 운영된 채용조건형 계약학과로, 타 계약학과와 비교했을 때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다. 윤 씨는 “반도체 관련 과목만 집중적으로 배우다 보니 다른 학과라면 석사과정에서야 배울 수 있는 내용을 미리 접할 수 있다”며 심층적인 학습에 대한 만족을 표했다. 5년에 한 번씩 교육과정이 개편되면서 최신 동향을 반영한 기술이나 학문을 배울 수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다.

 

  운영 기반·연구 인력 유실 우려

  학과 운영 안정성에 대한 지적 등 계약학과에 대한 우려 섞인 시선도 존재한다. 황철성(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는 계약학과의 교수 부족 문제를 지적했다. 그는 “계약학과 대부분이 전임 교수 없이 추진되고 있다”며 “전임 교수가 충분히 확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정원외 학부생 수만 늘리는 것은 지속 가능하지 않고, 교육의 질도 담보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서울대는 2019년 삼성전자와 시스템반도체학과의 신설을 논의하다 중단한 바 있다. 서울대 공과대의 경우 약 330명의 교수 중 반도체를 전공한 교수는 10명 내외다. 10명 내외의 교수를 모두 계약학과에 모을 수는 없고, 새로운 교수를 뽑기도 곤란하다. 계약학과는 정해진 계약이 해지되면 사라지는 학과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균관대 반도체시스템공학과를 제외한 대부분의 계약학과에서 교수진의 상당수는 공과대 소속의 겸임교수다.

  계약학과를 졸업한 우수한 학생들이 대학원 진학 없이 바로 취업해 우수 연구 인력이 유실된다는 우려도 있다. 박재근 교수는 “대학은 기업을 위해서만 존재하는 기관이 아니라 과학기술을 연구하는 기관”이라며 “학부생들이 졸업 후 대학원에 진학해야 우수한 석·박사 인력을 양성할 수 있는데 우수한 인재들이 졸업 후 바로 대학을 떠나니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했다. 황철성 교수 역시 “학부생만 있으니 교수가 연구 실적을 낼 수 없다”고 언급했다.

  국내 대학원 진학에 대한 본질적인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다. 소위 ‘우수한’ 학생들이 국내 대학원에 진학하기보다 해외 유학을 선택하는 현실을 고려했을 때 대학원 인력 감소는 계약학과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신정철 교수는 “해외 대학 학위 취득자를 우대하는 등의 관행이나 대학원 교육 수준이 문제일 수도 있다”며 “하루빨리 본질적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국내 대학원 진학을 주저하는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석·박사 과정까지 지원 필요

  점차 늘어나는 첨단산업 인력 수요로 인해 계약학과는 꾸준히 늘어나리라 예측된다. 계약학과 운영의 이로운 방향을 고민할 시점이다.

  박재근 교수는 학부 수준에서의 계약학과를 보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대학과 기업 모두 높은 수준의 연구 인력이 필요하다”며 “기업이 투자를 늘려 학생이 대학원에서 석·박사 과정까지 마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면 양측 모두 만족할 수 있을 것”이라 말했다. 대학은 연구 인력을 확보하고, 기업은 석·박사 수준의 직원을 채용할 수 있는 방안이다. 황철성 교수 역시 “학부 졸업 후 기업에서 직원의 연구 역량을 키울 수도 있겠지만, 기업은 교육 기관이 아니기에 체계적인 교육을 기대하긴 어렵다”고 언급했다. 실제로 본교 반도체공학과는 재학생들에게 졸업 후 석·박사 과정을 마치고 SK 하이닉스에 입사하는 선택지도 제공하고 있다.

  대학 교육과정의 유연화도 선택지 중 하나다. 신정철 교수는 “대학은 사회적 산물”이라며 “대학도 사회 변화에 어느 정도 부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 교육과정이 20~30년 전에 비해 크게 바뀐 것이 없음을 지적하며 “학과 구조를 좀 더 유연하게 바꾸고, 전통적 지식 중심의 교육과정을 변화시킬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안기현 전무는 “첨단산업의 변화는 매우 빠르다”며 “학문과 산업을 잘 연결 지을 수 있는 인재가 양성됐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글 | 엄선영 기자 select@

인포그래픽 | 김연수 기자 lotus@

사진제공 | 커뮤니케이션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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