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들 ‘영끌’하는 세태 답답해”

정부는 ‘주택’ 아닌 ‘주거’ 정책을

청와대 이전, 충분한 논의 거쳤어야

 

승효상 건축가는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감정 대신 이성을 동원해 정당한 과정을 밟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승효상 건축가는 청와대 이전을 둘러싼 이슈에 대해 “감정 대신 이성을 동원해 정당한 과정을 밟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승효상 ‘이로재’ 대표는 ‘건축의 공공성’에 천착해 온 건축가다. 2014년부터 2016년까지 서울시 총괄건축가, 2018년부터 2020년까지 국가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019년에는 아시아인 최초로 오스트리아 정부로부터 ‘학술예술 1급 십자훈장’을 받았다.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의 집 ‘수졸당’(1992), ‘노무현 대통령 묘역’(2009) 등이 그의 대표작이다.

  부동산이 국민의 삶을 지배하는 시대, 건축과 집이란 우리에게 무엇일까. 대학로에 있는 승 대표의 사무소를 찾아 건축의 의미와 이를 둘러싼 각종 현안을 물었다. 그는 “건축을 부동산으로 보는 우리 사회는 떠돌이 사회”라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음)’이 유행하는 세태를 두고 “집을 무조건 소유해야 한다는 인식을 버려야 한다”고 말했다.
 

  - 건축의 공공성을 강조해왔다

  “건축은 본래 공공성을 떠날 수 없습니다. 반드시 땅을 점거하고 짓는 게 건축이기 때문이에요. 어느 땅의 소유권은 누구에게 있느냐를 물을 때 저는 개인에게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경에도 ‘땅을 사고팔지 말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땅의 성질은 원래 공유하는 거예요. 돈을 주고 샀다고 하더라도 사람은 영원히 존재하는 게 아니죠. 사람이 죽어도 땅은 남습니다. 그러므로 건축의 가장 중요한 성질은 공공성입니다.”
 

  - 건축 시스템의 문제는 없나

  “우리나라에는 ‘주택’ 정책이 있는지 몰라도 ‘주거’ 정책은 없습니다. 부동산 공급에만 치중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식을 바꿔야 합니다. 정부가 인기를 얻기 위한 공급 정책만 내놓으니, 사람들도 주택 사는 데에 혈안이 돼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대통령이 단임이기 때문에 안 하려 합니다. 장기적인 문제니까요.

  제도적으로는 선분양제(건물이 완공되기 전 분양이 이뤄지는 제도)를 철폐해야 합니다. 정부가 돈이 없던 시절에 건설회사에 준 특혜예요. 이걸 없애고 소비자가 취향에 맞는 집을 살 수 있도록 해야죠. 지금은 캐비닛에 있는 평면도를 꺼낸 뒤에, 똑같이 만들면 그만이에요. 재료만 타일에서 돌로 바꾸고, 주방 기구만 외제로 바꾸고···. 공간은 예전과 그대로입니다. 이래서는 거주의 방식이 바뀌지 않아요. 물건을 만들어놓고 팔아야 소비자들이 ‘이 집은 이렇게 생겼네’, ‘더 좋은 집을 찾아봐야지’ 같은 고민을 합니다.”
 

  - 우리 사회는 건축을 어떻게 인식하나

  “부동산이죠. 집을 자기 존재를 증명하는 무대가 아니라 사고파는 부동산으로 봅니다. 그러니 정주하지 못하고, 정주하지 못하니 존재하지 못합니다. 우리의 정체성을 계속 소모하면서 사는 ‘떠돌이 사회’가 되는 겁니다. 이건 ‘자기 집을 사야 한다’는 인식 때문이에요. 서양은 그렇지 않습니다. 오스트리아 빈의 임대주택 비율은 67%입니다. 원한다면 자식한테 물려줄 수도 있어요. 그러니 집을 소유해야 한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어떤 집이든 안정적으로 거주만 할 수 있으면 되는 것입니다. 왜 많은 힘과 시간을 들여 집에 투자합니까. 집을 무조건 가져야 한다는 의식을 버려야 합니다. 청년들까지 ‘영 끌’해서 자기 집을 사려고 하는 걸 보면 참 답답해요.”

 

  - 청년들에게도 부동산은 중요한 문제인데

  “현대시의 아버지인 랭보가 한 시인에게 말했어요. ‘당신은 시를 어떻게 쓰는지 알지만, 나는 시를 왜 쓰는지 안다.’ 본질을 알고 있다는 거죠. 청년들이야말로 삶에 있어서 본질을 추구했으면 좋겠어요. ‘어떻게 사는 게 더 편할까’는 나중에 얘기해도 되는 것 아닙니까? 많은 힘과 돈을 들여서 소유하고 나면 또 그걸 지키기 위한 불안이 생기게 마련입니다. 그 노력을 다른 곳에 쏟으면 훨씬 많은 걸 얻을 수밖에 없다고요. 조금 힘들더라도 정신이 맑으면 이 험난한 세월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 선생의 청년 시절은 어땠나

  “독재 정권에 대한 분노로 가득했습니다. 이 분노에 저항하기 위해 스스로를 부패시키지 않았죠. 적당한 분노가 자기를 깨어있게 만드는 거예요. 돈은 없었지만, 전혀 문제가 아니었어요. 세상을 바라보는 눈을 정확하게 가는 것이 중요했지, 육신의 편안함 같은 건 취할 바가 아니었죠.”

  부산의 피난민촌에서 태어난 승효상 대표는 금호동의 달동네에서 건축의 이상을 발견하고, 1992년 ‘빈자의 미학’을 주창했다. 1996년 발간한 <빈자의 미학>에서 그는 “가짐보다는 쓰임이 중요하고 더함보다는 나눔이 중요하며 채움보다는 비움이 중요하다”고 썼다. ‘가난한 자’가 아니라 ‘가난하고자하는 자’를 위한 건축 방법론이라는 이 철학은 지난 30년간 그의 건축을 대표해 온 주제였다. 그가 이를 통해 도출한 건축의 사회적 가치가 바로 공공성이었다.

  “처음 빈자의 미학을 말할 땐 선언적 의미가 컸습니다. 내 건축의 진리가 되기를 바랐고, 진리로 만들기 위해 노력한 게 지난 30년이었습니다. 30년이 지난 지금은 제게 진리가 됐다고 할 수 있죠. 당시 물신의 시대에 대항하기 위해 만든 것이지만, 지금은 더 심각한 물신의 시대가 됐기 때문에 여전히 유효합니다.”
 

  최근 서울시는 재개발 활성화와 공급 확대를 목적으로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 재임 당시 보존을 기치로 추진된 도시사업들을 백지화하고 있다. 아파트 재건축 시 일부 동을 남기는 ‘노후아파트 흔적 남기기’ 사업을 재검토 중이고, 지난달에는 도시재생사업 중 하나인 골목길 재생사업의 3번째 제외 지역을 발표했다. 승 대표는 박 전 시장 취임 때부터 2년간 시의 건축 정책을 심의하는 건축정책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고, 2014년부터는 2년간 시의 모든 건축물에 자문 역할을 하는 총괄건축가를 역임했다.
 

  - 서울시의 도시재생·보존 사업들이 백지화되고 있다

  “물신주의의 끝을 보는 듯해요. 철학자 아도르노는 ‘역사적 기억 없이는 어떠한 아름다움도 없다’고 했어요. 건축만큼 중요한 기억 장치가 없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았던가’를 후세에게 전하는 장치죠. 건축을 통해 이전의 생활을 짐작하고 추론하면서 역사를 확장하는 거예요. 그 장치를 남겨서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만드는 것이 곧 우리의 삶을 확장하는 일입니다. 이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여러 사람이 토론과 논쟁을 거쳐서 ‘이것만이라도 남기자’고 결정한 사업들인데, 그것마저 수포가 됐습니다. 물론 자본과 공공의 상충은 불가피하지만, 그걸 조정하는 게 정치의 역할이죠. 자본이라고 무조건 나쁘다는 게 아니에요. 그러나 노동하지 않고 얻은 일확천금, 건전하지 못한 자본에 대해서는 비판해야 합니다.”
 

  - 청와대 이전을 두고 말이 많다

  “얼마든지 새로 만들 수 있죠. 저도 일찍부터 청와대 건축이 좋지 않다고 얘기해왔습니다. 그런데 먼저 ‘어떻게 새로 만들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고 이를 서로가 이해하는 가운데 만들어야죠. 대통령의 집은 개인의 집이 아닙니다. 국가를 상징하는 곳이에요. 시대에 맞는 대통령의 집을 새롭게 지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인데, 석연치 않은 이유를 대면서 갑자기 가겠다고 하는 건 이해할 수 없어요. 감정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죠. 논리와 이성을 동원해서 정당한 과정을 밟아나갔으면 합니다.”
 

  - 좋은 건축이란 무엇인가

  “건축주가 건축을 부동산으로 보고 이익만 얻으려고 하거나 자신을 과시하려고 한다면 좋은 건축이 탄생할 수 없습니다. 건축이 공공성을 가질 때만이 건축 속에 사는 우리가 공동체 의식을 갖고 건강한 사회를 형성할 수 있어요. 윈스턴 처칠은 ‘우리가 건축을 만들지만, 건축이 다시 우리를 만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건축은 참 위험하죠. 사람의 삶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에, 항상 삼가면서 하는 것이 건축입니다.”


글 | 김선규 기자 starry@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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