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녀가 입학했으면 좋겠어요”

“30~63세, 청춘을 보낸 곳”

“졸업하고도 찾아와줘서 고마워요”

 

  지난 5일 본교 개교기념일을 맞아 ‘고대인의 날’ 행사가 열렸다. 학생, 교수 등 고대 구성원뿐만 아니라, 지역 주민, 주변 고등학교 학생 등 다양한 사람들이 행사를 즐겼다. 본교는 개교기념일마다 캠퍼스 주변을 이루는 주민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행사를 열어왔을 만큼, 고려대에게 학교 주변 사람들은 특별한 존재다.

  안암동에 살아 캠퍼스를 자주 산책한다는 오태식(남·71) 씨는 손녀 둘을 데리고 중앙광장을 찾았다. 그에게 고려대는 어떤 의미인지 물었다. “가끔 만나는 학생이 다들 성실하고 예의 발라요. 손녀에게 나중에 꼭 입학하라고 얘기해요. 고려대는 손녀가 입학했으면 하는 곳이죠.” 초등학생인 손녀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고려대가 뭔지는 몰라요. 그래도 오고 싶어요!”

 

초등학생 손녀는 말했다. “고려대가 뭔진 몰라요. 그래도 오고 싶어요!”

  지인을 통해 ‘고대인의 날’ 행사에 참여한 김진숙(여·40) 씨는 고등학교 2학년 때 본교를 처음 방문했다. “제가 좋아하던 수학 선생님이 고대 졸업생이셨어요. 선생님 따라서 학교에 자주 들렀죠.” 김진숙 씨는 4·19민주묘지 근처에 살고 있어 매년 4·18 구국대장정을 지켜봤다. 4·18 의거를 알게 된 것도 이 때문이었다. “4·19 묘비에 다른 학교 학생들도 많이 있지만, 고려대는 선배들의 의거를 더 뜻깊게 기리는 것 같아 좋아요.”

  종암동 소재의 서울대학교사범대부설고등학교에 재학 중인 3학년 이주희, 신다경, 박민채 양은 야간자율학습을 하다 지칠 때면 본교를 산책한다. “고려대는 과잠이 정말 예뻐요. 제가 재학생이라면 여름에도 입고 다닐 것 같아요.(웃음)” “제 남자친구는 고려대를 너무 좋아해요. 어제도 개교기념일 행사에 갔더라고요.” 고려대에 바라는 점은 없는지 묻자 신다경 양은 수줍게 말했다. “입학 장벽을 낮춰줬으면 좋겠어요. 저도 가고 싶거든요.”

 

서울캠 옆 사대부고에 다니는 이주희, 신다경, 박민채 양은 야자하다 지칠 때면 본교를 산책한다.

 

  “지역사회와 더 교감하길”

  가족과 함께 오랜만에 ‘고대인의 날’ 행사에 참석한 김성민(여·40) 씨는 본교에서 여는 행사의 빈도와 규모가 줄어 아쉬워했다. “예전에는 중앙광장에 에어바운스(air bounce)도 설치되고 참석하는 사람도 훨씬 많았는데 오늘은 그렇지 않네요. 이제 사회적 거리두기도 끝났으니 지역사회와 연계한 행사가 활발히 개최됐으면 좋겠어요.”

  인근 지역 소재 초등학교 교사인 김모 씨는 행사뿐 아니라 교육에서도 대학과 지역 간 연계가 활발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학생 멘토·멘티 같은 프로그램이 많아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지역 학생들이 도움을 받았으면 해요. 누군가 롤모델이 있으면 아이들은 꿈과 희망을 갖거든요.”

  10년 전부터 110B번 버스를 운행해오신 정성용 기사도 본교 학생들에 바라는 게 있었다. “학생들이 기사를 버스의 부품으로 생각하지 않으면 좋겠어요.” 그는 “친절히 인사를 건네도 무시하는 학생이 많다”며 “내릴 때까지 인사하는 학생은 정말 드물다”고 전했다. “승객이 내릴 때 ‘수고하세요’ 한 마디 말해주면 정말 기분이 좋아요. 학생들과 서로 더 존중하고 교감할 수 있길 바랍니다.”

 

110B번 버스를 운행하는 정성용 기사는 학생들과 더 친밀한 관계를 맺길 원한다.

  어윤하(연세대 IT융합공학20) 씨에게 본교는 우애와 경쟁 관계의 ‘라이벌’이었다. “고려대와 연세대는 형제처럼 서로를 견제하되 공존한다고 생각해요. 형이 잘 나가면 동생이 시기하고 이기려고 하듯 두 대학은 서로 경쟁하고 협력하며 성장해왔죠.” 그는 일명 ‘코로나 학번’으로서 두 대학 간 관계가 소원해진 게 아쉽다고 했다. “접촉이 적기 때문에 집단적 유대와 라이벌 의식이 많이 흐려졌어요. 학교 차원에서 다양한 접촉 기회를 만들려 노력했으면 좋겠어요.”

 

  “고대생이세요? 공짜로 해줄게요”

  2010년부터 옆살이길에 ‘모리헤어’를 운영 중인 유한균 미용사는 신촌에 미용실을 차릴 생각이었다. 미용실 의자를 사러 지금의 가게를 방문했다가 전 사장이 가게를 싸게 내놓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원래 차리려던 미용실의 1/4 가격이었다. 방문하는 학생 손님은 어떠냐고 묻자 그는 조심스럽게 말했다. “유행을 따라가는 건 느려요. 그런데 다른 지역보다 학생들이 착하고, 편해요. 10년 넘게 일했지만 진상 손님은 만난 적 없어요.” 그는 주 고객층인 대학원생과 얘기를 나누며 특허도 낼 수 있었다. “공대 대학원생이 자주 오는데 얘기를 나누면서 특허 내는 게 어렵지 않음을 알게 됐어요. 지금은 가발 관련된 특허를 갖고 있죠. 아직 돈이 되진 않네요(웃음).” 그에게 일을 하며 보람을 느낄 때가 언제인지 물었다. “가끔 머리해줬던 학생이 기자나 배우가 돼서 TV에 나와요. 그럴 때마다 반갑고 기분이 좋죠.”

 

유한균 미용사는 “머리해줬던 학생이 기자나 배우가 돼 TV에 나오면 기분이 좋다”고 말했다.

 

  안암역 2번 출구 앞에 있는 ‘나포리 안경원’에 들어가자 권태기(남·63) 안경사가 다짜고짜 기자의 안경을 벗겼다. “안경알 좀 닦아줄게요. 아니, 코받침도 하나 없고 테도 삐뚤어졌네! 고대생이죠? 그냥 고쳐줄게요.” 10분쯤 지나니 안경이 새것처럼 고쳐졌다. “일반 사람은 잘 몰라도 안경 맞추는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제 눈에는 다 보여요. 가게 앞에 안경 세척기 있으니까 자주 닦고 다니세요.” 이곳에 터를 잡은 지 어언 20년, 안경사에게는 기억에 남는 학생이 있다. “한 학생이 도수가 꽤 높은 안경을 맞추고는 ‘돈이 없으니 조금 싸게 해달라’고 말했어요. 안쓰러운 마음에 싸게 해줬죠. 그런데 졸업하고는 감사했다며 다시 찾아왔어요. 이제 성공했으니 맘껏, 편하게 돈 받으라고 하더라고요.” 지난 2년간 안경원에 드리웠던 코로나19의 그늘도 서서히 사라지고 있다. “작년, 재작년에는 사람이 아예 없었죠. 요즘에는 사람이 바글바글해요. 활력이 넘치니까 너무 좋죠. 요즘 학생들 보면 안 먹어도 배불러요.”

 

“코받침도 하나 없고 테도 삐뚤어졌네! 고대생이죠? 그냥 고쳐줄게요.”

 

  “우리 집에 있던 학생들은 공부를 다 잘했어요. 다들 기업은행 지점장, 판사, 의사, 변호사됐죠.” 성일이, 홍진이, 진우 등 오춘택(여·85) 씨는 하숙집에 지냈던 학생 이름을 모두 외우고 있었다. “장가 간 사람이 다섯 명인데 아직도 나를 찾아요. 명절 때는 선물도 해주고, 가끔 자식들 데리고 오면 그렇게 기분이 좋죠. 동네 과일 집에서 엄청 부러워해요.” 졸업한 학생들이 하숙집을 잊지 못하고 다시 찾아오는 이유는 오춘택 씨의 사랑 때문이다. “늦게 들어오면 걱정돼서 항상 전화하죠. 지금도 우리 하숙집에 사는 학생들 위해 밤낮으로 기도합니다.”

 

“우리집에 있던 학생은 다 공부를 잘했어. 내가 밤낮으로 기도하지. 학생도 술 조금만 마시고 공부 열심히 해!”

 

  고대인은 학교 밖에도 있다

  종암동에서 10년째 ‘안나공인중개사사무소’를 운영하는 박명화 씨는 몽골 출신 대학원생의 집을 구해준 적이 있다. “월 70만원의 방을 구했어요. 당시에는 꽤 큰 돈이었죠. 그런데 건물주가 외국인이라고 도배·장판을 안 해줬어요.” 몽골에서 보증금을 송금받는 데도 차질이 있었다. “집주인이 갑질하고 까탈스럽게 구는데 보증금도 못 내면 집에 못 들어갈 게 뻔했죠.” 그는 대학원생에게 보증금을 빌려줬다. 인테리어 디자이너인 남편에게 부탁해 도배·장판도 해결했다. “그래도 잘 해결돼서 다행이었어요.” 고대생으로부터 다소 황당한 일을 겪기도 했다. “학생에게 집을 소개해줬는데 수수료를 내기 싫었는지 몰래 집주인과 직접 계약하려 했어요. 그런데 집주인은 저와 잘 아는 사이였죠.” 결국 집주인과 학생이 안나부동산에서 계약서를 작성했다. “괘씸했죠. 그래도 수수료를 많이 깎아줬어요. 안쓰럽기도 하고, 저희 딸도 대학생이거든요. 학생들 보면 자식 같아요.” 이후 그 학생은 계약이 만기 될 때마다 사무실을 찾았다.

 

부동산을 운영하는 박명화 씨는 “학생들을 보면 자식 같다”고 말했다.

 

  “식사를 거르는 학생들이 아침 한 끼라도 균형 잡힌 식사를 할 수 있도록 돕자.” 2013년부터 10년째 계속된 성복중앙교회 ‘새벽만나’는 아침 7시부터 8시 10분까지 지역 청년들에 아침 식사를 제공한다. “아침을 제공하는 데에 다른 목적이 있을 거라고 의심하는 게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절대 전도하지 말자’. ‘종교적인 표현도 하지 말자’고 다짐했죠. 학생들이 그저 든든하고 편하게 식사했으면 좋겠습니다.” 새벽만나를 제공하기 위해 교회 성도들은 2시부터 재료 손질을 시작한다. 하루 평균 80명의 학생이 교회를 찾는다. “권사님들과 저는 학생들을 자식 또는 친한 동생, 조카같이 생각해요. 교회가 있는 한 새벽만나는 계속될 겁니다.”

 

김문진 목사는 “지역청년을 위해 ‘새벽만나’는 계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영철버거’를 운영하는 이영철(남·55) 씨는 “영철버거는 학생들 것”이라고 말했다. “가게에 대통령도 왔다 갔어요. 하지만 대통령 사진은 남아있지 않습니다. 오직 학생들이랑 찍은 사진만 가게에 걸어놨어요.” 그는 이어 2015년 학생들의 크라우드펀딩을 얘기했다. “실패에 실패를 거듭했지만, 고려대 학생들이 있었기에 포기할 수 없었어요. 5000원, 1만 원 펀딩받고 가게를 접으면 학생들에게 상처가 될 것 같았거든요. 지금은 학생들에게 받은 도움을 돌려줘야 한다는 마음으로 장사하고 있습니다.”

 

영철버거 안은 학생들과 찍은 사진으로 가득하다.

 

글 | 류요셉 기자 sonador@

사진 | 문원준 기자 mondlic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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