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색 산업으로 자본 흐름 유도

‘가짜 친환경’ 걸러내는 그물망

원자력 포함엔 과학적 접근 필수

“이념 배제된 투명한 도구돼야”

 

  스웨덴의 글로벌 패션 브랜드 에이치앤엠(H&M)은 친환경 캠페인과 마케팅으로 유명하다. 지난해 7월 이들이 친환경이라고 주장한 제품 중 89%가 영국 공정거래위원회의 지침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나 소비자들의 원성을 샀다. 친환경 의류를 홍보하면서도 계절마다 신상품을 대량 생산하는 ‘패스트 패션’의 선두 주자라는 이중성 역시 문제였다.

  친환경 경영을 표방하는 기업들의 ‘그린워싱*’을 걸러낼 그물망이 필요하다는 지적에서 주목받는 제도가 있다. ‘그린 택소노미(green taxonomy)’다. 2020년 6월 EU(유럽연합)에서 최초로 공표된 이래 국내에서도 시행을 위해 지속적인 논의를 이어가고 있다.

 

  탄소중립 기여하면 ‘녹색’ 인정

  녹색(green) 분류체계(taxonomy)라는 뜻의 ‘그린 택소노미’는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녹색 경제활동의 범위에 대한 명확한 원칙과 규정이다. 어떤 산업 분야가 친환경 산업인지 분류해 녹색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산업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인간의 경제활동을 멈추지 않으면서 오히려 경제활동을 통해 기후변화에 대응하도록 투자 자본의 흐름을 유도하는 전략이다. 정범진(경희대 원자력공학과) 교수는 “택소노미는 태양광발전이나 풍력발전과 같이 별도의 지원이나 보조가 없으면 시장에 진입하기 어려운 발전원들에 투자금을 유치해 경제성을 갖추게 한다”고 설명했다.

  2009년 이명박 정부는 ‘클린 디젤’ 정책을 통해 저공해 경유차(클린 디젤)를 환경친화적 자동차 범주에 포함하며 각종 지원 정책을 마련했다. 친환경 차량으로 여겨진 경유차는 주차료·혼잡통행료 감면 혜택을 받으며 소비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고, 국내 경유차 비율은 2011년 36.3%에서 2017년 42.5%까지 뛰었다. 폭스바겐의 배출가스 조작사건으로 ‘가짜 친환경’ 문제가 대두됐고, 곧이어 미세먼지의 주요 발생원으로 경유차가 지목되면서 2018년, 모든 정책이 폐기됐다. 경유차 운전자들에겐 ‘클린 디젤’의 정책 수혜 대신 경유차 폐지 추진 법안에 따른 환경부담개선금 부담만 남았다. 잘못된 친환경 정책에서 발생한 사회적 비용이 고스란히 소비자의 몫으로 돌아간 셈이다.

  이와 같이 녹색인 ‘척’하는 가짜 친환경 ‘그린워싱’을 구분하기 위한 기준이 그린 택소노미다. ESG(환경사회지배구조)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흐름 속에서, 그린 택소노미는 ESG투자를 지향하는 투자자들에게 투자처를 선택하는 기준이기도 하다. 글로벌 기업과 금융기관들 역시 ESG를 기준으로 자본의 흐름을 결정한다. 세계 최대 투자회사 블랙록(BlackRock)에서는 ‘탈탄소 경영’을 투자의 최우선순위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친환경적인 기업과 산업은 더 많은 투자를 받아 경쟁력을 얻고, 녹색 경제활동 활성화에 기여하게 된다.

 

  목표는 하나, 기후위기 대응

  택소노미 논의의 출발지는 EU였다. 기후위기를 완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경제활동을 함께 정의하고자 했다. EU는 2018년 ‘지속 가능한 금융전문가 그룹(TEG)’을 꾸려 관련 논의를 이어왔다. 2020년 6월에 공개된 EU 택소노미의 배경에는 탄소중립이라는 세계적인 목표가 있었다. 탄소중립은 흡수되는 탄소량이 남은 탄소량과 같도록 탄소 배출량을 획기적으로 줄여 탄소 순배출량 ‘0’을 목표로 한다. 택소노미는 이 탄소중립을 실현할 구체적인 방안으로 논의됐다. 정동욱(중앙대 에너지시스템 공학부) 교수는 “택소노미는 강제조항이 아닌 ‘분류체계’지만, 유럽에서는 EU 회원국들이 택소노미에 근거한 경제활동 수행 여부를 보고해야 하기 때문에 그 자체로 국가들에게 부담이 되고 간접적인 강제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국내에서도 한국형 택소노미(K-택소노미)에 대한 논의가 이어졌다. 지난해 12월 환경부는 한국형 택소노미에 관한 지침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을 발표했다. 화석연료 이용 여부에 따라 택소노미를 녹색부문과 전환부문으로 구분해 설명했다. 녹색부문은 탄소중립과 환경개선에 기여하는 진정한 녹색 경제활동을 제시했으며 화석연료를 100% 활용하는 경제활동 및 이와 연계된 경제활동은 제외했다. △온실가스 감축(산업, 발전·에너지, 수송, 도시·건물, 농업, 이산화탄소 포집, 연구개발) △기후변화 적응 △물(수자원 보호) △순환경제(자원순환, 메탄가스 활용) △오염(대기오염 방지 및 처리, 해양오염 방지 및 처리) △생물다양성 등 6개 분야로 구분되며, 총 64개 녹색경제활동이 포함된다. 탄소중립 핵심기술을 활용한 제조나 재생에너지를 생산하는 산업은 온실가스 감축에 기여하는 녹색 경제활동이다.

  전환부문은 화석연료를 이용하지만 탄소중립으로 가는 과도기에 필요한 경제활동이다. 중소기업 사업장의 온실가스 감축 활동, 액화천연가스(LNG) 및 혼합가스 기반 에너지 생산, 블루수소 제조, 친환경 선박 건조, 친환경 선박 운송이 포함된다. 탄소를 배출하는 경제활동이기에 녹색이라 볼 수는 없지만, 현실성을 고려해 한시적으로 택소노미에 포함한다. 앞으로 신재생 에너지 기술개발 동향 등을 고려해 전환부문의 온실가스 감축 수준이 강화될 예정이다.

 

  원전은 2050년까지 ‘조건부 허용’

  원자력이 그린 택소노미에 포함되는 에너지가 될 수 있는가는 꾸준한 논쟁거리다. 원전의 위험성 때문이다. 값싼 전기를 효율적으로 생산해내지만, 방사성 핵폐기물을 처리할 기술이 아직 없기 때문이다. 현재는 폐기물을 지하 깊숙이 묻어 영구 보관하는 방식으로 처리하고 있다. EU에서는 프랑스와 독일이 각각 친원전과 탈원전의 대표주자로 계속 대립했다.

  올해 2월 EU는 원자력을 허용하는 규정을 확정 발의했다. 단, 강력한 조건이 따라붙었다. 2025년부터 사고저항성핵연료(ATF)를 써야 하고, 고준위 방사성폐기물 처분장을 운영할 수 있는 국가 계획을 2050년까지 세워야 한다. 방사성 물질 누출량을 최소한으로 줄이면서 원전의 심각한 손상을 지연시키는 기술을 쓰고, 사용 후 핵연료를 처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는 뜻이다. 정동욱 교수는 “원자력에 대해 100% 신뢰를 주진 않겠지만, 2050년까지 기회를 준다는 뜻”이라며 “대중의 수용성을 높이고, 처분장을 잘 만들어 해결하고, 2050년까지 아무 문제가 없다면 그 후에 다시 원전의 친환경성을 검토해보겠다는 것”이라 설명했다.

  유럽의 원전 포함은 당초 원자력을 제외했던 한국형 택소노미를 재검토하는 기점이 됐다. 윤석열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는 원전을 포함하기로 결정하며 오는 8월까지 한국형 택소노미를 정비할 것을 약속했다. 한국형 택소노미에도 유럽처럼 단서조항이 달릴 전망이다. 국내발전에서 원자력 의존도가 높은 만큼, 전문가들은 택소노미에 원전이 포함되는 것에 일면 의의가 있다고 보고 있다. 안형근(건국대 전기전자공학부) 교수는 “당장 신재생에너지 100%로 전환하기 어렵기 때문에 에너지 전환에 다가가는 과정에도 현실적으로 원자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원자력은 전기를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저렴한 만큼 한 번에 포기하기 어려운 선택지다. 전기 1㎾h(킬로와트시)를 생산하는 데 원자력은 60원, 석탄은 80원, LNG발전은 120원, 태양광은 200원이다. 정범진 교수는 “한국전력에서 보급하는 전력가격이 1㎾h당 110원이므로 원자력전기에는 50원의 이익이 남고, 석탄은 30원이 남는다”며 “남는 돈으로 태양광 발전과 LNG(액화천연가스)를 보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원전 찬반 등 이념에 갇힌 에너지 갈등으로 택소노미의 본질이 흐려진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택소노미라는 도구에 대해 반드시 과학적으로 접근할 것을 강조했다. 정범진 교수는 “택소노미는 과학에 기초한 투명성 도구”라 정의하며 “과학적인 설명을 바탕으로 진정한 녹색 경제활동이 무엇인지 알려주는 지침이 돼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 “정치적 입장에 따른 결정은 결국 잘못된 방향으로 유인해 그린워싱으로 이어지기 쉽다”고 경고했다.

 

  *그린워싱(green washing): 위장환경주의, 실제로는 친환경적이지 않은데도 기업에서 친환경적인 것처럼 홍보하는 것

 

글 | 김영은 기자 zerois@

인포그래픽 | 김연수 기자 lotu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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