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단보도 턱에 막혀 돌아가고

20도 경사로에선 고꾸라지기도

목소리 낼 공식창구는 이름뿐

 

  본지는 지난 1944호에서 보도된 ‘서울캠 장애인 보행환경 점검’의 후속 취재로 세종캠 보행환경 점검을 진행했다. 지난달 20일 현장에서 장애 학생들을 만나 이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을 확인했다. 장애 학생들에게 뜨거워지는 햇볕은 더 원망스럽다. 캠퍼스 곳곳의 보행 ‘장벽’을 피해 가느라 길에서 시간을 배로 보내야 하기 때문이다.

  뇌병변 장애가 있는 장수연(글로벌대 디지털경영20) 씨는 “캠퍼스 안 모든 곳에 접근할 수는 있지만, 문제는 돌아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라 말했다. 교내 관계자들은 문제에 공감했지만, 민원이 있어야 시정이 이뤄지는 행정 절차상 쉽게 고쳐지기 어렵다는 설명이다. 장애인권위원회를 두고 장애 학생 권익을 위해 힘쓰는 서울캠과 달리, 세종캠에는 장애 학생의 의견을 모을 자치기구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등하굣길 학생이 조치원역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내리는 모습. 계단이 있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학생은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등하굣길 학생이 조치원역 정류장에서 셔틀버스를 내리는 모습. 계단이 있어 다리가 불편한 장애학생은 셔틀버스를 이용하지 못한다.

  #등하굣길: 셔틀버스 대신 ‘걸어서 30분’

  목요일 오후 하교 시간, 조치원역에서 학생들이 셔틀버스에서 ‘걸어’ 내렸다. 비장애인 학생들은 조치원역에서 세종캠 학술정보원까지 도보로 30분인 거리를 셔틀버스로 10분 만에 쉽게 오간다. 하지만 다리가 불편한 학생들에게는 남의 얘기다. 휠체어를 타는 학생은 며칠 전부터 예약해둔 장애인 콜택시를 이용한다. 불편함을 감수하고 보행을 택하는 학생도 있다. 비장애인 학생들보다 더 긴 시간이 걸리는 것은 당연하다. 뇌병변 장애로 보행이 더딘 장수연 씨는 “셔틀버스는 타고내릴 때 신경이 쓰여 잘 타지 않는다. 시간이 오래 걸려도 걸어가거나 택시를 탄다”고 말했다.

  셔틀버스를 저상버스로 운행하는 건 현실적으로 어렵다. 저상버스를 운행하는 사설 버스업체가 없기 때문이다. 일반버스보다 세 배가량 비싼 차량의 가격과 높은 유지보수 비용 때문에 국내 저상버스는 대부분 지자체의 지원을 받아 시내버스로 운행한다. 한국환경건축연구원 배융호 책임연구위원은 “저상버스 구입은 사업자 부담인데다 그 부담이 커 저상버스 도입을 꺼린다”고 전했다.

  관련 부서에서도 별도로 조치하고 있는 부분은 없었다. 셔틀버스 이용은 선택지가 막힌 상황이라, 장애 학생들도 민원을 제기하지 않기 때문이다. 세종장애학생지원센터 직원 김종명 씨는 “과거 한 학생이 총장에게 저상 버스를 도입해달라고 편지를 쓴 일도 있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현재는 민원을 넣는 학생들이 없다”고 말했다. 교내 행정절차상 학생들이 학생회 등을 통해 의견을 학교 본부에 전달해야 하지만, 민원이 없어 행정적으로 조치할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휠체어 탑승 시 공공정책관 앞에 무더기로 주차된 전동킥보드 때문에 통행에 방해를 받는다. 시각장애학생도 전동킥보드로 인한 위험을 호소했다.
휠체어 탑승 시 공공정책관 앞에 무더기로 주차된 전동킥보드 때문에 통행에 방해를 받는다. 시각장애학생도 전동킥보드로 인한 위험을 호소했다.

  ‘무더기’ 킥보드 주차도 난관

  강의실로 가는 길, 건물 앞에 마구 주차된 전동킥보드도 장애 학생들에게 골칫덩이다. 모든 단과대 건물 주변마다 전동킥보드를 발견할 수 있었지만,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공공정책관 앞이다. 지체장애 2급으로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손승욱(대학원·컴퓨터정보학과) 씨는 “지뢰밭처럼 느껴진다. 전동킥보드가 건물 출입하는 경사로까지 막아 아예 지나가지 못한 적도 있다”고 밝혔다. 시각장애인도 불편을 느꼈다. 녹내장을 앓는 전상빈(글로벌대 한국학20) 씨는 “시야가 좁아 길에서 자주 부딪힌다. 공공정책관 앞 말고도 기숙사로 올라가는 길에도 전동킥보드가 빼곡해 어두운 밤엔 특히 더 위험하다”고 불편을 호소했다.

  비장애인 학생들도 미관과 안전을 이유로 여러 차례 문제를 제기했다. 세종총학생회 (회장=현진섭, 세종총학)는 전동킥보드 업체와 경찰서, 학교 측과 논의해 전동킥보드 전용 주차 구역을 마련할 계획이다. 현진섭세종 총학생회장은 “교통에 방해가 될 정도로 전동킥보드가 난립해 있는 걸 바로잡고자 협업하고 있다”며 “1학기 중 주차 구역을 마련할 것”이라 말했다.

 

세종캠 학술정보원 2층 출입문에는 장애인경사로가 없다. 1층으로 출입해 위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 탑승 시 직원을 호출해야 한다.
세종캠 학술정보원 2층 출입문에는 장애인경사로가 없다. 1층으로 출입해 위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 탑승 시 직원을 호출해야 한다.

  #교내 건물: 학술정보원 안 이동은 ‘수수께끼’

  세종캠 도서관 ‘학술정보원’은 1층과 2층에 출입구가 있지만, 휠체어를 타는 학생은 1층으로만 들어갈 수 있다. 1층 출입문에는 경사로가 있지만 2층에는 없기 때문이다. 또한 1층에서 위로 올라가려면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직원의 도움이 필수다. 1층 엘리베이터에는 도서분실방지센서가 설치되지 않아, 도서 반출 우려로 관계자 없이는 이용하지 못한다. 엘리베이터에는 직원을 호출하라는 별도의 안내가 없어 혼선을 빚기도 한다. 장수연 씨는 “직원 호출 시스템을 몰라 엘리베이터가 운행하지 않는 줄 알았다”며 “다리가 불편하더라도 계단으로 올랐다”고 전했다.

  2층 출입구에 경사로를 설치해 달라는 민원은 계속 있었지만, 설계상의 문제로 실행되지 못했다. 시설팀 건축 담당 직원은 “법적 기준에 맞춰 완만한(12분의 1) 경사로를 만들려면 공간도 많이 차지하고, 오래된 건물이라 구조상 공중에 다리를 세워야 한다”며 현실적인 어려움을 지적했다. 학술정보원 측도 “예전부터 경사로 설치를 위한 예산을 받으려고 노력했지만, 설계 문제로 예산 배정이 어려웠다”고 밝혔다. 대신 “경사로 설치는 불가하지만, 장애 학생들이 엘리베이터를 편하게 이용하도록 올해 안으로 조치할 예정”이라며 “1층 엘리베이터에도 도서분실방지센서를 설치하는 등의 방법을 고려하며 예산 배정을 요청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농심국제관 쪽 삼거리 횡단보도에는 ‘턱낮춤’이 되지 않아 휠체어 탑승 시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다.
농심국제관 쪽 삼거리 횡단보도에는 ‘턱낮춤’이 되지 않아 휠체어 탑승 시 횡단보도를 이용할 수 없다.

  #눈앞에 두고도 가지 못하는 길: ‘턱’ 막힌 횡단보도에 두 번 고생

  교내 횡단보도에는 차도와 보도의 경계석(연석)이 높아 휠체어의 진입이 아예 불가한 곳도 있었다. 농심국제관과 산학협력관이 위치한 삼거리의 횡단보도와 공공정책관 앞 횡단보도가 대표적이다. 전동휠체어를 이용하는 손승욱 씨와 캠퍼스를 살피던 중에도 공공정책관 앞 횡단보도의 높은 경계석 때문에 왔던 길을 돌아서 가야 했다. 손 씨는 불편이 익숙하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경계석이 높으면 아예 올라갈 수조차 없어요. 답답하긴 한데 그 답답함을 매일 느끼고 있죠.”

  횡단보도에서 ‘턱낮춤’이 되지 않은 경계석은 20cm 높이의 물병과 높이가 같았다. 이는 ‘장애인·노인·임산부 등의 편의증진 보장에 관한 법률(약칭:장애인등편의법)’ 시행규칙에서 규정하는 경계석의 높이 6cm ~ 15cm를 훌쩍 넘는 수치다. 손 씨는 “휠체어는 자동차보다 훨씬 가벼워, 경계석의 턱에서 떨어질 때 힘을 더 강하게 받아 위험하다. 그만큼 턱이 낮아야 하는데 그렇지 않은 곳들은 아예 돌아서 간다”고 말했다. 교내 시설팀 건축 관계자는 “인지하지 못한 문제”라며 “학생들이 의견을 모아 학교 본부에 전달하고 예산이 배정되면 시설팀에서 시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손승욱(대학원·컴퓨터정보학과) 씨가 목발을 짚고 헐떡고개 위에서 벽돌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곧장 상점가가 나오지만, 경사로가 없어 손 씨에겐 있으나 마나다.
손승욱(대학원·컴퓨터정보학과) 씨가 목발을 짚고 헐떡고개 위에서 벽돌 계단을 내려다보고 있다. 계단을 따라 내려가면 곧장 상점가가 나오지만, 경사로가 없어 손 씨에겐 있으나 마나다.

  사유지는 불편해도 손쓸 수 없어

  캠퍼스에서 마을로 나가는 여러 지름길도 장애 학생들에게는 있으나 마나다. 학군단 건물에서 신안리 섭골길로 향하는 ‘헐떡고개’에는 경사로가 없다. 가파른 벽돌 계단이 유일한 통행로다. 손승욱 씨는 “지름길을 이용하지 못해 음식점이 많은 상권에 접근하는데 제한이 있다”고 전했다. 농심국제관에서 서창리 모과나무길로 향할 때도 경사로가 가팔라 오갈 수 없었다. 실제 각도를 측정해보니 20도였다. 장애인등편의법에서 규정한 최소 기울기인 12분의 1(4.8도)의 4배 수준이다. 손 씨는 “가파른 경사에서 전동휠체어 브레이크 작동이 어려워 자주 넘어졌다”고 밝혔다. 그는 2017년 시설팀에 경사로를 보수하도록 건의했으나 5년이 지난 지금도 그대로였다.

 

서창리 모과나무길로 향하는 길은 경사로가 지나치게 가팔라 휠체어 이용 시 넘어지기 쉽다. 부지가 개인 소유인 탓에 학교는 개선할 권한이 없다.
서창리 모과나무길로 향하는 길은 경사로가 지나치게 가팔라 휠체어 이용 시 넘어지기 쉽다. 부지가 개인 소유인 탓에 학교는 개선할 권한이 없다.

  지름길이 개인 소유인 탓이었다. 배융호 연구위원은 “사유지에는 장애인등편의법과 교통약자법 등이 적용되지 않아 토지 소유자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설명했다. 어쩔 수 없는 상황에 시설팀도 난색이다. 관계자는 “위험과 불편을 인지해, 학생들을 위해 고쳐주고 싶다. 하지만 학교는 이를 보수·공사할 권한이 없다”며 “소유자인 주민이 학생들 편의를 고려해 사용료도 받지 않고 땅을 내준 것만으로 고마운데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라고 전했다.

 

세종캠 잔디광장에서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에 난간이 없다. 계단에 손잡이가 없으면 오르내리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장애 학생들은 이런 계단을 피해 돌아서 가야 한다.
세종캠 잔디광장에서 주차장으로 올라가는 길에는 계단에 난간이 없다. 계단에 손잡이가 없으면 오르내리는 게 위험하기 때문에 장애 학생들은 이런 계단을 피해 돌아서 가야 한다.

  #장애학생위원회는 ‘유명무실’ 갈 곳 잃은 장애학생 목소리

  인터뷰에 참여한 장애 학생들은 이외에도 계단의 난간 미설치, 보행로의 어두운 조명, 고르지 않은 자갈길 등 다양한 부분을 지적했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공식적인 경로는 미비했다. 학생자치단체에서 의견을 수렴해 학교에 전달해야 하는데, 장애 학생들의 목소리를 모아야 할 ‘장애학생위원회’가 이번 학기 활동을 중단했기 때문이다. 2020년 세종총학 인권복지위원회 산하에 개설된 장애학생위원회는 정례회의 일정이 정해지지 않는 등 불안정하게 운영되다, 인원 이탈로 이름만 남았다.

  장애학생위원회의 업무는 현재 인권복지위원회가 맡고 있다. 하지만 1학기 월례 업무 보고에 따르면 축제 기간 배리어프리존 운영 외에 장애 학생을 위한 사업은 이뤄지지 않았다. 현진섭 세종총학생회장은 “세종장애학생지원센터를 통해 들어오는 장애 학생들의 지원 요청이 많지 않아 적극적으로 사업을 펼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장애 학생들은 인권복지위원회의 활동에 큰 실효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장수연 씨는 “인권복지위원회는 인권 전반의 문제를 다루다 보니 장애 학생을 위한 활동이 이뤄지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전상빈 씨는 “인권복지위원회에 직접 민원을 넣어서 목소리를 내는 장애 학생은 거의 없다”고 전했다.

  세종총학은 2학기부터 장애학생위원회를 활성화할 방침이다. 현진섭 세종총학생회장은 “여러 문제 상황을 인지하고 있다”며 “소수자인권국을 신설하거나 장애학생 위원회를 정례화하려고 하는 등 노력했지만, 당사자들이 부실한 정책이라고 느꼈다면 반성하고 더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김영은 기자 zeroi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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