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각·시각·발달 장애장벽 걷어내

무대의 주인공은 ‘수어통역사’

암흑 속 악상 떠올리는 암전공연

 

  둥 둥 둥…. 스피커의 진동이 공연장 전체를 울린다. 박자에 따라 몸을 흔드는 관객들. 관객들의 몸짓을 따라 의자도 흔들리지만 그 어수선함이 오히려 흥겹다. 색색의 조명이 비추는 무대의 정중앙에는 검은 옷의 수어통역사가 서 있다. 무대 뒤편으로는 장애·비장애인 작가가 협업으로 작업한 미디어아트가 음악에 맞춰 흘러나온다. 

  포근한 봄날씨의 지난달 21일과 22일, 서울 서교스퀘어에서 이틀에 걸쳐 열린 ‘페스티벌 나다 2022’ 현장이다. 페스티벌 나다는 장애유형에 관계없이 모두가 함께 문화예술을 즐길 수 있게끔 평등한 기회를 제공하는 다원예술축제다. 2012년 첫 페스티벌을 개최한 이래 매년 최첨단 배리어프리(Barrier Free·장벽 없는) 운영방안을 개발하고 신기술을 접목시키며 국내 최대 배리어프리 문화예술 행사로 성장했다. 오랜만에 활기를 되찾은 페스티벌 현장 곳곳에선 관객 하나하나를 끌어안는 페스티벌 나다만의 특별하고도 세심한 연출이 엿보였다. 

 

  장애의 경계를 넘어 배리어프리

  “탬버린 소리가 이렇게 예쁘네!” 공연이 시작되기 전부터 서교스퀘어 로비 한구석에선 흔들리는 탬버린과 둥둥 울리는 북소리가 어우러진 흥겨운 리듬이 이어졌다. 마이크 앞 노트북이 연결된 화면엔 악기를 다루는 사람들의 손짓을 따라 무지개가 떠오른다. 관객이 내는 리듬, 박자에 맞춰 컴퓨터 그래픽 효과가 그려지는 상호작용예술 체험이다. 페스티벌 나다가 마련한 ‘숨겨진 감각놀이’ 부스에 참여한 관객들은 일상에서 만들어내는 소리가 시각이미지로 변환되는 감각의 전이를 경험한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안내에 따라 체험 부스에서 프로그램을 즐기던 관객들이 공연장으로 들어선다. 어두컴컴한 공연장 아래 무대 앞 관객석의 첫 줄은 휠체어 장애인을 위한 공간이다. ‘지하공연장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불편하진 않았을까’ 하는 우려도 잠시, 휠체어 서너 대가 완만한 경사로를 따라 금세 제자리를 찾았다. 한국장애인문화예술원 김형희 이사장은 “대부분의 공연장이 휠체어 좌석을 맨 뒷줄로 배정한다”며 “페스티벌 나다에선 휠체어 관객도 가까운 자리에서 무대를 즐길 수 있어 색다르다”고 전했다. 

 

  공연 현장서 ‘지금은 연주 중♬’ 

  ‘청각장애인도 음악을 즐길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페스티벌 나다는 청각은 물론 촉각과 시각으로 전달되는 무대 공연을 제안한다. 청각장애인은 우퍼 조끼를 입거나 진동스피커가 장착된 의자에 앉아 공연을 관람한다. 장애·비장애 작가와 미디어아트 감독의 협업으로 음악 심상을 시각화한 무대영상이 실시간으로 송출되고, 미디어아트 위로는 연주되는 곡의 가사가 흐른다. 소리를 문자로 옮겨내는 문자통역사는 공연장의 작은 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는다. 가사 없이 간주가 흘러나올 땐 ‘연주 중(♬)’으로.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질 땐 ‘박수’로. 드럼과 카톡 알림음까지 재치 있는 이모티콘으로 효과음을 표기한다. 페스티벌 공연 중 가장 눈에 띄는 것은 단연 무대 위 ‘춤추는’ 수어통역사다. 가수의 멘트를 차분히 전달하다 음악이 시작되면 표정, 손짓, 발짓을 모두 동원해 안무에 가까운 수어를 선보인다. 송현호 수어통역사는 “수어라는 시각적인 이미지에서 도상성을 주기 위해 표정과 몸짓을 적극적으로 강조한다”고 설명했다.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최황순 수어통역사가 가사에 맞춰 격정적인 날갯짓을 선보인다.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최황순 수어통역사가 가사에 맞춰 격정적인 날갯짓을 선보인다.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비둘기” 크라잉넛의 ‘비둘기’ 무대에서 가사에 맞춰 쉴 새 없이 날개짓을 하던 수어통역사는 무대의 주인공다운 존재감을 뽐냈다. 크라잉넛 박윤식 보컬은 최황순 수어통역사를 향해 “하늘을 나는 비둘기에 빙의된 몸짓을 보여주었다”며 감탄했다. 

  곧이어 귀를 쨍하게 울리는 메탈릭 사운드의 ‘레고’가 흘러나왔다. “뛰~어!” 구호에 맞춰 관객들은 발을 굴렀다. 객석의 통로엔 이미 음악에 몸을 맡긴 관객들이 자신만의 독무대를 선보이고 있었다. “아 힘들다” 신나게 뛰놀던 스탠딩 공연이 끝나고 공연장 한구석에서 볼멘소리가 들려왔다. 찰나의 침묵이 그치고 객석에선 웃음이 터져 나왔다. 페스티벌 나다는 장시간 공연관람이 힘든 일부 관객을 위해 ‘*편안한 공연 (Relaxed Performance)’을 약속한다. 여타 공연장에선 관크(공연 관람을 방해하는 관객의 소음·움직임)로 불리는 행위도 페스티벌 나다에선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진다. 김경민 미디어아트 감독은 “장애인 관객과 보호자가 위축되지 않고 공연을 즐길 수 있는 분위기”라며 “모두의 배려와 이해가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설명했다. 

 

  특별함이 당연함 되기를

  페스티벌 나다의 하이라이트는 암전공연이다. 관객이 온전히 음악과 소리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모두의 시야를 차단한다. ‘소리의 마녀’ 한영애는 한 줄기 빛도 들어오지 않는 암흑 속에서 ‘여울목’을 노래했다. “눈이 자유롭지 않은 분들은 어떤 이미지를 그리며 음악을 들을지 상상하며 자신만의 그림을 그려보길 바란다”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점과 선으로 채워진 흑백의 무대영상과 음악이 어우려진다. (뮤지션 한영애X미디어 아티스트 현지원X장애아티스트 권한솔, 수어통역 송현호.)
“똑똑 거기 누구없소” 점과 선으로 채워진 흑백의 무대영상과 음악이 어우려진다. (뮤지션 한영애X미디어 아티스트 현지원X장애아티스트 권한솔, 수어통역 송현호.)

  목소리와 에너지만으로 관객을 사로잡은 한영애의 뒤로 조명이 켜지자 점, 선, 도형, 그림이 어우러진 무대영상이 펼쳐졌다. 권한솔 발달장애 작가와 현지원 미디어아트 감독이 협업한 미디어아트 ‘꽃을 좋아하는 고양이 애쉬’다. 권한솔 작가는 점과 선의 반복을 통해 여백을 채우고 흑백의 기하학적인 도형으로 꽃과 고양이를 표현한다. “똑똑 거기 누구 없소” 절제된 카리스마를 표현하는 ‘누구없소’의 악상에 신비로움을 더했다. 관객들의 열렬한 환호에 한영애는 즉석에서 수어를 통해 마음을 전했다. 양손 검지로 작은 원을 그리곤, 두 손바닥이 마주 보도록 수평으로 눕혀 빙글빙글 돌렸다. ‘함께 어울린다’는 뜻이다. 이어 공연장 안 모든 관객과 세션이 손을 모아 ‘함께 어울리자’는 뜻을 나눴다. 

  공연이 마치고도 한참을 객석에 앉아 흥얼거리던 리듬을 손으로 따라가며 여흥을 즐기는 이도 있었다. 지적장애 2급의 김예은(여·28) 씨다. 4번째로 페스티벌 나다를 찾은 그녀는 “모든 공연이 최고의 무대였다”며 “온전히 초대받았다는 마음으로 즐길 수 있는 축제는 페스티벌 나다 뿐”이라고 말했다. 페스티벌 나다의 큐레이터이자 사회적협동조합의 대표를 맡고 있는 김지수 씨는 “장애인이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 당연한 존재인 것처럼 배리어프리 공연 역시 당연한 문화로 자리 잡았으면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장애인 행사가 아니라 장애인도 당연히 즐기는 행사’를 목표로 하는 페스티벌 나다 2022는 장애·비장애인 관객 모두에게 예술적 감동과 잔상을 남긴 채 공연의 막을 내렸다. 

 

*편안한 공연(relaxed performance): 장애를 가진 관객들에게 적합하도록 소음이나 조명, 관람 분위기 등을 조성한 공연. 

 

글·사진│장예림 시사부장 yellme@

사진제공│페스티벌 나다 2022 사무국

저작권자 © 고대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