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민의 권한을 더욱 확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국민발의제·국민소환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국민발의제는 일정 정도 이상의 국민의 동의를 얻어 법안을 발의하는 것이고, 국민소환제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을 해당 지역 주민의 요구에 의해 공직에서 물러나게 하는 제도이다.

이 제도들은 대의민주주의의 한계를 극복하고 참여민주주의를 이루자는 의미에서 제기됐다. 국민소환제도는 이미 1998년부터 도입 주장이 있었다. 당시 YMCA가 주도했던 국민소환운동은, 정치개혁보다는 비리의원 감싸기 급급한 국회의원의 심판 차원에서 이뤄졌다.

부안에서 벌어졌던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논란에서도 국민발의제와 유사한 주민투표가 실행됐다. 지난 2월 14일 방폐장 유치 문제를 놓고 주민투표를 실시했던 것이다. 이는 법적효력을 지닌 것은 아니지만 주민들의 의사를 전달하는 도구로 이용됐고, 결국 부안 방폐장 건립 문제는 원점에서 다시 논의됐다.

그리고 올해 3월 12일 대통령 탄핵안이 통과되면서 국민소환제와 국민발의제의 필요성은 좀더 적극적으로 제기됐다. 국회가 국민의 의사를 무시한 채 탄핵을 추진하는 과정을 보면서, 의회민주주의에 대한 제도적 보완이 필요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지난 3월 24일 △다른 네트워크 △인권운동사랑방 △전국학생 연대회의 등의 7개 단체들이 모여 ‘국민발의권 국민소환권 쟁취를 위한 네트워크’(www.democracy.or.kr)를 구성했다. 이들은 탄핵반대운동에 참여해 자신들의 목소리를 알려나갔다. 탄핵반대집회에서 피켓과 유인물을 제작해 선전활동을 했다.

또, 명동이나 광화문 등지에서 서명운동을 벌였다. 탄핵반대집회뿐만이 아니라 다른 행사 역시 진행됐다. 지난달 10일 오후 5시에 열린 <만민공동회>는 문화행사와 시민들의 자유발언을 통해 직접민주주의 확장을 요구했다. 운동에 참여했던 김우림 정경대 학생회장은 “단순히 제도를 도입하는 것만이 이번 운동의 목적은 아니다”라며 “현실 상황 속에서 제도 정치권과 민의의 괴리를 해결하는 데 있다”고 말했다.
 
이들은 투표함에 국민발의제와 소환제 요구가 담긴 쪽지를 넣는 운동을 벌였다. 이 운동은 적지 않은 파문을 불러일으켰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이들의 행동을 불법이라고 규정하고  만일 쪽지를 넣다 적발되면 엄단할 것이라고 통보했다.

그때부터 국민발의제, 소환제 운동은 언론의 주목을 받았다. 물론 언론이 주목한 것은 이들 단체의 요구보다는, 행위의 위법성 여부였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허혜영 씨는 “주류언론들은 만민공동회 등의 행사를 할 때는 안보이다가, 투표함 쪽지넣기 운동을 할 때부터 선거법 위반인지 아닌지 관심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국민발의나 국민소환 제도를 공약으로 삼았던 정당들이 17대 총선에서 원내에 대거 진입했다. 이렇게 직접민주주의적인 제도들이 현실화할 조짐을 보이면서, 문제점에 대해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총선 이후 여야국회의원이나 언론에서 제도의 시행을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을 내기 시작했다. 국민발의나 국민소환 제도가 국민들에게 더 큰 권리를 주기는커녕 혼란만 준다는 것이다.

국민소환제도는 정치적 목적에 의해 오남용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된다. 결과에 승복하지 못하는 낙선자들이 국민소환을 통해 결과를 뒤집으려고 할 것이고, 그에 따라 정쟁이 더욱 심해질 것이라는 예상이다. 지역대표가 아니라 비례대표의 경우에는 소환할만한 방법이 없는 것도 문제다. 국민발의제의 경우 일부 이익단체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대중을 선동할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이준한(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이러한 우려에 대해 “우리나라 국민들은 정치적 학습이 빠른 편이므로 좋은 결실을 낼 수 있을 것”이라며 “오남용이 우려되면 그에 대한 제한조치를 두면 된다”고 반박했다. 국민과 정치와의 간극을 줄일 수 있는 제도적 노력과 함께, 제도로 인해 파생되는 부작용을 막기 위한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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