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재개발. 사전에선 이 단어를 ‘기존 낙후된 지역을 전부 밀어버리고 도로, 상하수도, 주택 등을 새로 지어 주거환경과 도시미관을 바꾸는 사업’이라 정의내린다.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도시미관을 생각한다는 것에서 언뜻 긍정적인 느낌이 들지만 저 정의의 핵심은 사실 “낙후된 지역을 전부 밀어버린다”는 폭력적 전제에 있다. 재개발의 장밋빛 청사진이란 어쩌면 난개발에 따른 잿빛 절망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레인보우99’이라는 음악가가 있다. 그는 화려한 메인스트림보단 숨죽인 언더그라운드에서 자연과 사람을 생각하며 음악을 만들어온 사람이다. 그런 그가 지난 1월 ‘재개발 블루스’라는 앨범을 내며 공익을 앞세운 재개발, 재건축의 명분에 물음표를 던졌다. 지난해 9월과 11월 두 파트로 나눠 발매한 싱글을 한 데 묶은 이 프로젝트는 재개발로 사라질 서울의 옛 공간들을 사진작가와 비주얼 아티스트, 음악가 등이 힘을 모아 아카이빙 하는데 방점을 뒀다. 레인보우99은 그것이 ‘감상보단 경험에 가까운’ 무엇이 되리라 기대했다.

  첫 곡은 ‘청량리’다. 레인보우99이 태어나고 자란 ‘청량리’는 공포 영화처럼 문을 열어 스산하고 비장한 소리의 파도를 4분 넘게 쏟아낸다. 그러다 문득 디페시 모드 같은 신스 사운드를 맞아들이며 곡은 평온과 불안 사이에서 얇게 뒤척인다. 영상을 보라. 레인보우99의 블루스 기타는 한없이 포근하지만 음악을 짓누르는 콘크리트 건물의 괴기스러운 위용과 그 위로 뜬 먹구름의 을씨년스런 침묵은 이내 음악의 온기를 정서적 냉기로 탈바꿈시키고 만다.

 

 

  두 번째 동네는 ‘신림’이다. 낮은 주택들이 에워싼 중앙 텃밭 같은 곳에서 전자음이 꽃을 피운다. 곧이어 흑백 영상 위로 한 음 두 음 떨구는 기타 멜로디. 아래로 순환하는 영상은 사라질 것들과 들어선 것들을 콜라주로 번갈아 채우며 슬픈 대비를 이룬다.

  ‘을지로’는 앨범에서 가장 화가 나있는 트랙이다. 불안한 핸드헬드 카메라와 전자음의 다급한 균열은 그 화의 구체화다. 이번 작품에서 레인보우99의 연주는 모두 즉흥으로 한 번에 녹음한 것들로, 그는 돈 얘기만 하는 ‘을지로 힙스터들의 물결’에 참담함을 느낀 끝에 이 곡을 왜곡(distortion)된 기타를 앞세운 록 성향으로 몰고 갔다.

  일행이 방문한 마지막 동네는 ‘방배’다. 레인보우99은 “집도 길도 좋은데 왜 개발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입장 아래 묵혀두었던 즉흥 연주를 게워 낸다. 카메라는 ‘청량리’와 마찬가지로 레인보우99을 롱숏으로 잡고, 영상 여기저기를 유령처럼 떠도는 레고 덩어리들은 회색빛 개발 예정 지역을 컬러풀 디지털 공간으로 ‘재개발’ 한다. 하지만 이들의 재개발은 자본의 힘 앞에서 무력하다. 증발하고 흐릿해진다.

  나는 얼마 전 제주 여행에서 ‘김택화 미술관’이란 곳엘 들렀다. 김 화백은 90년대 중반 이후 무분별한 재개발로 변해가는 제주의 자연이 안타까워 프레임을 파노라마 형식으로 바꿔 얼마 남지 않은 자연 속 ‘제주다움’을 4000여 점 스케치와 유화로 남겼다. 레인보우99도 2020년 ‘어음케’라는 싱글로 시작해 ‘오몽 X 레인보우99, 구좌’까지 제주를 주제로 전자음악을 선보였다. 그것은 난개발로 신음하는 제주의 자연을 위로하기 위한 한 휴머니스트의 절박한 여정이었다. 파스칼 키냐르였던가. 음악이란 ‘때늦음’으로부터 ‘지금 이 순간’으로 밀어 넣는 예술이라 말한 사람이. 레인보우99의 작업은 난개발로 신음하는 제주의 자연이 때늦은 후회 속에 묻히기 전 ‘지금 이 순간’ 우리 앞에 음악으로 꺼내 보였다. ‘재개발 블루스’는 그것의 서울 버전이다.    

 

김성대 대중음악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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